KT, ‘디지코 후계자’ 윤경림 낙점…외국인·소액주주 표심 향방에 촉각
[뉴스투데이=이화연 기자] 구현모 KT 대표 후임으로 윤경림 KT 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이 최종 선정됐다. 윤 사장은 이달 말 KT 주주총회에서 과반 이상 지지를 받으면 3년 임기를 시작한다.
최종 후보로 선정된 윤 사장은 LG, CJ, 현대자동차를 두루 거치며 통신뿐 아니라 KT 미래 먹거리인 미디어와 모빌리티(이동수단)까지 폭 넓은 경험을 갖추고 있다.
KT에서는 신사업 발굴과 글로벌 진출 등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KT 이사회도 윤 후보가 디지코(DIGICO·디지털 플랫폼 기업) 비전을 이끌어 갈 적임자로 판단했다.
다만 여권이 윤 후보가 최종 후보 4인으로 선정된 직후 공개적으로 비판 의사를 드러낸 점은 숙제로 남았다. 여기에 지분율 8.53%의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아 치열한 표 싸움이 예상된다. 주총에서 부결되면 KT는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 황창규 신임 받았던 인재…디지코 전략 이어갈 적임자
KT 이사회는 7일 이사 전원 합의로 윤경림 사장을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확정하고 정기 주주총회에 추천하는 안건을 결의했다.
최종 면접 대상자는 박윤영 전(前) KT 기업부문장(사장)과 신수정 KT 엔터프라이즈부문장(부사장),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 임헌문 전 KT 매스총괄(사장) 등 4인으로 전원 전·현직 KT맨이다.
KT 이사회는 △디지털전환(DX) 역량에 기반한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마련 △변화와 혁신 추구 △기업가치 제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 등에 중점을 두고 면접 심사를 진행한 결과 윤 후보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냈다.
윤 후보는 이달 말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과반 이상 찬성표를 받으면 대표로 정식 임명된다. 임기는 2026년 3월까지 3년이다.
윤 후보는 1963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경영과학 석사,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LG데이콤(현 LG유플러스)에서 경력을 시작하며 통신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하나로통신(현 SK브로드밴드), CJ그룹, 현대차 등을 두루 거치며 ‘개방형 혁신 인재’로 평가 받았다.
윤 후보와 KT의 인연은 그가 2006년 KT 신사업추진본부장(상무)로 합류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2010년 CJ로 자리를 옮겼다가 2014년 황창규 전 KT회장의 러브콜을 받고 KT 미래융합전략실장(전무)로 돌아왔다. 그러다 2019년 3월 돌연 현대차로 이직했지만 2021년 9월 KT가 신설한 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을 이끌 리더로 복귀했다.
윤 후보 복귀 이후 KT는 CJ ENM과 미디어 동맹을 맺고 현대차와 7500억원 규모 지분교환을 성사시켰다. KT도 윤 후보의 이 같은 디지코 추진 의지를 높게 평가했다.
강충구 KT 이사회 의장은 최종 후보 발탁 배경에 대해 “윤 후보는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KT가 디지코로 성장할 수 있는 미래 비전을 명확히 제시했다”며 “이사회는 윤 후보가 궁극적으로 주주가치를 확대할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 정치권 압박·국민연금 반대 가능성…외국인 주주·소액주주 표심에 달렸다
KT는 당초 구현모 현 대표를 최종 후보로 발탁했으나 최대주주 국민연금과 정치권 압박이 지속되자 차기 대표 선임 과정을 공개경쟁 방식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사외에서 전·현직 통신업계 인사와 정치권 인사 등 18명이 지원했다. 사내 후보자는 16명이었으나 구 대표가 연임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15명이 됐다.
당초 업계에서는 정관계 인사 발탁이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최종 4인은 모두 KT 전·현직 인사로 구성됐다. 이에 대해 여당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특히 구 대표와 윤 후보의 연결고리를 문제 삼았다.
국민의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위원들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KT 이사회가 전체 지원자 33명 중 KT 출신 전·현직 임원 4명만 통과시켜 차기 사장 인선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 버렸다”고 밝혔다.
특히 윤 후보가 KT 이사회 현직 멤버이자 현대차 재직 시절 구 대표의 과거 업무상 배임 의혹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출마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결정이 ‘KT 이익 카르텔 형성’이며 ‘사장 돌려막기’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국민의힘 과방위 위원들은 또한 “구 대표가 수사 대상이 되자 갑자기 사퇴하면서 자신의 아바타인 윤경림을 세우고 2순위로 신수정을 넣으라는 지시를 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은 최종 후보 4인에 대한 의견을 별도로 표시하지 않았지만 정치권 의견을 고려해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KT 주요 주주의 보유 지분 현황은 국민연금(8.53%)의 뒤를 이어 신한은행(5.58%), 현대차(4.69%), 현대모비스(3.10%) 순이다.
주총에서 대표이사 선임 안이 부결될 경우 선임 절차가 원점에서 다시 진행되기 때문에 경영 공백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소액 주주와 외국인 주주들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주총 결과에 주요 방향타가 될 전망이다.
다만 기업가치 제고 차원에서 지분 57%가 넘는 소액주주들이 찬성표를 던질 수 있는 만큼 부결 가능성은 높지 않다.
윤 후보가 재임 기간 KT 주가를 끌어올린 구현모 대표의 '디지코' 전략을 계승할 인물이라는 점에서 소액 주주와 외국인들이 주가 상승을 기대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소액 주주 또는 외국인 주주는 개별화한 주주인 만큼 표가 분산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한편 KT 주가는 구 대표 취임 초 1만9000원대에서 지난해 8월 3만8350원(종가 기준)으로 2배가량 급등했다. 하지만 CEO(최고경영자) 선임 리스크가 수 개월 째 이어지면서 KT 주가는 3만원 초반대로 내려왔다. KT는 7일 3만8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번 사태로 KT의 고질적인 경영 시스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KT의 취약점인 과다한 고정비용과 잦은 경영정책 변화로 인한 실적 신뢰도 저하가 멀티플(수익성 대비 기업가치) 할인 요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