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CEO 인사 막바지, ‘관치’ 논란 정점
[뉴스투데이=최병춘 기자] 최근 우리금융‧BNK금융‧기업은행 등 주요 금융사가 최고경영자(CEO) 인선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금융당국 수장이 연이어 관련 발언을 쏟아내면서 ‘관치’ 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2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사 CEO 인사와 관련해 연이어 입장을 내놓았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5차 금융규제혁신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최근 거취 표명을 유보하고 있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CEO로서 라임펀드 사태에 대한 책임이 명확하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당국의 입장은 판결로서 의사결정을 한 것이고, 본인이 어떻게 할지는 본인이 잘 알아서 생각해야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달 손 회장에 대해 라임자산운용 펀드 불완전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향후 3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되는 ‘문책 경고’ 중징계를 내린 바 있다. 내년 3월 임기 종료를 앞둔 손 회장이 별도의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지 않는 이상 연임은 불투명한 상태다.
당시 결정을 두고 업계에서는 사실상 손 회장 퇴임을 압박하기 위한 결정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손 회장은 아직 별도의 거취 표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이사회는 지난 16일 회의에서 금융당국 제재와 관련한 손 회장의 거취 등에 내한 논의를 내년 1월로 미뤄졌다. 결국 김 위원장의 발언은 내년 초 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손 회장의 거취를 압박하는 모양새로 비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차기 기업은행장으로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이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 “후보자 중 하나로 돼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확인해 줬다. 김 위원장은 “복수의 후보자를 검토하고 있다”며 “언제쯤 임명 제청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중소기업은행법상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면한다. 현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임기는 내년 1월 2일까지다. 윤 행장은 이미 연임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 후 지난 6월 자리에서 물러났던 정 전 금감원장이 유력한 후보로 제기됐다. 하지만 노조는 정 전 원장을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고 인선에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직전 금융감독기관장이 이해관계가 직결되는 피감은행장이 되는 것으로 공직자 윤리에 어긋난 인사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이 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 전 원장이 후보자에 포함된 것이 확인되면서 앞으로 기업은행장 인선을 두고 내홍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최근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윤석열 대통령 캠프에 참여했던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낙점되면서 금융권 안팎에서는 당국이 민간 금융사 인사에 외압을 행사하는 이른바 ‘관치금융’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외국에서는 당국이 임원에 대한 적격성 심사를 한다”며 “관치는 무조건 나쁘다고 일률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도리어 “CEO가 주변에 우호적인 세력만 놓고 (이사회를) 운영하는 것은 맞는 것인가”라며 이른바 금융권 내 파벌 인사 문제점을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또 다른 축인 이복현 금감원장도 금융사 CEO 인사 관련 발언을 이어갔다.
이 원장은 지난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사정지정운용제도 현장안착을 위한 퇴직연금사업자 간담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3연임 도전을 앞두고 용퇴한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리더로서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스럽다”고 평가한 반면 손 회장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결정된 징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에 이어 거취를 미룬 손 회장을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이 원장은 기업은행장 인선과 관련해 불거진 ‘관치금융’ 논란에 대해 “본질을 벗어난 이야기”라며 “법에도 이미 제청권자와 임명권자를 금융위원장과 대통령으로 정하고 있는 이상 그 절차에 따라 임명권자가 고려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NH농협금융과 함께 ‘관치’ 논란이 일고 있는 BNK금융 회장 인사에 대해서도 입장을 내놨다.
BNK금융은 김지완 전 회장이 ‘아들 특혜 의혹’으로 불명예 퇴진한 뒤 금융당국 권고에 따라 회장 승계 관련 규정을 변경했다. 당초 계열사 CEO 등 내부 승계로만 회장직을 선임할 수 있었던 규정을 금융당국 권고에 외부 인사까지 후보군에 포함할 수 있도록 변경했다. 이를 두고 외부 인사를 앉히기 위해 당국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와 관련해 이 원장은 “(CEO 선임 등의 방식이) 다소 폐쇄적으로 운영됐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지적을 했을 뿐이고 그룹 측에서 이를 반영해 수정했던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차기 BNK금융 회장 선출 과정에서 사외이사의 ‘검증’ 책임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지금 후보 중에 오래된 인사이거나, 정치적 편향성이 있거나, 과거 다른 금융기관에서 문제를 일으켜 논란이 됐던 인사가 포함돼 있다면 사외이사가 알아서 걸러주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원장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현재 차기 회장 후보 선정작업에 나선 BNK금융 인사에 금융당국 수장이 개입한 것으로 해석돼 관치 비판이 더 거세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금융노조는 두 금융당국 수장이 연이은 발언이 금융사 CEO 인사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22일 성명서를 내고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관치를 옹호하고 나섰다”며 “기업은행장 선임에 있어 ‘관치 낙하산 인사’로 비판받는 정 전 금감원장에 대해서도 이례적으로 제청설을 인정했다. 이쯤 되면 그냥 관치를 하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 원장의 발언과 관련해서도 “손 회장에 대한 이 원장의 사퇴 압박도 상식적이지 않다”며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더니 ‘손 회장에 대한 중징계 조치는 만장일치였다’고 그 수위를 높였다. 민간금융회사 인사에 대한 이 같은 ‘관’의 개입이 ‘관치’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가장 큰 위기는 정권이 금융사의 자율경영에 일일이 간섭하는 ‘관치금융’”이라며 “정부는 관치금융을 포기하고 자율금융을 추진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