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등장한 ‘금융지주 인뱅 설립설’···회의론도 고개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최근 금융권에서 금융지주 인터넷전문은행(인뱅) 설립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신한금융지주가 제주은행을 인뱅으로 전환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회사 주가가 등락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시장에서 금융지주 인뱅 설립에 관심을 가지는 건 디지털 전환 시대 모바일뱅킹 및 데이터 경쟁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빅테크(IT+금융) 기업의 공습이 거세지는 상황 속 인뱅 설립을 통한 경쟁 환경 조성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미 시중은행을 보유한 금융지주가 인뱅까지 추가하면 인력·사업 재편이 불가피한 만큼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또 시장 참여자들의 반발과 생태계 교란 우려 등도 넘어야 할 산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신한금융 이사회가 제주은행을 인뱅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 이후 제주은행 주가가 등락했다. 지난달 8000원대 초반을 형성했던 주가는 1만3000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신한금융은 제주은행 지분 7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보도는 신한금융이 제주은행을 인뱅으로 전환하고,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가 제주은행 지분 일부를 인수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보도 이후 신한금융과 두나무는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지만, 제주은행 주가는 진정되지 않았다. 지난 21일 한국거래소 요구에 따른 신한금융의 추가 공시 이후 제주은행 주가는 다시 급락했다.
제주은행 인뱅 전환설은 주가 등락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는 모양새지만, 시장의 기대감은 여전히 크다는 걸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실제 금융지주 산하 인뱅 설립은 전국은행연합회가 김광수 회장 취임 이후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이슈 중 하나로 꼽힌다. 은행 이익을 대변하는 은행연합회의 이 같은 행보는 그만큼 인뱅에 대한 니즈(Needs)가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융지주들은 지난해 금융당국에 ‘뱅크 인 뱅크(BIB)’ 형태로 인뱅을 쉽게 설립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해왔다. 기존 은행 계열사로부터 예산·인력 등에서 자율권을 갖는 별도의 조직 형태로 인뱅을 운영하겠단 설명이다.
금융지주 인뱅 설립을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은 크게 ▲100% 비대면 영업을 통한 디지털 금융 경쟁력 제고 ▲비(非)금융 서비스와 플랫폼 결합을 통한 혁신 실험 ▲빅테크와의 공정 경쟁 분위기 조성 등으로 압축된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여건이 갖춰져 인뱅을 설립했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큰 기대점은 비대면 고객 유입과 플랫폼 노하우 습득일 것”이라며 “유통이나 통신 같이 비금융을 결합한 혁심 금융 시도 무대도 그만큼 확대될 수 있다”고 봤다.
또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인뱅에 대한 견제구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기성 금융사들은 인뱅들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제 환경에서 같은 여·수신 영업을 하는 게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특혜 속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성되고 있단 것이다.
다만 금융지주의 인뱅 설립에 따른 부작용 우려와 회의론도 제기된다. 이미 대부분 시중은행들이 모바일뱅킹 고도화로 리테일(소매금융) 디지털화를 전개하고 있는데, 인뱅까지 만들 경우 사업 형태 중복에 따른 비효율화가 나타날 수 있다.
지난해 금융지주들의 구상대로라면 인뱅은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될 텐데, 기존 시중은행의 여·수신 부서나 IT 부서 인력들의 재배치도 불가피하다. 인뱅 사업 초기 투입될 예산 규모에 대해서도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금융지주가 인뱅을 설립하면 계열사 내 기존 은행과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서 고객이 인뱅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한 금융지주 안에서 간섭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로 인한 오프라인 구조조정 등 내부 반발도 잠재워야 한다.
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금융지주 안에서 비중이 가장 큰 은행들은 최대 경영 전략 중 하나로 디지털을 꼽을 만큼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다”며 “은행 안에서도 모바일 쪽이 대세로 기울고 있는데, (인뱅을 설립하면) 서로 경쟁이 될 수 있다. 과연 꼭 필요할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케이뱅크·카카오뱅크·토스뱅크 등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길어야 출범 5년차인 이들 입장에선 금융지주의 시장 진출이 반가울리 없다. 거대 자본의 참전은 인뱅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뱅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뱅들은 기본적인 뱅킹 서비스를 갖추고 출범 5년이 지나야 겨우 플랫폼 효과를 거두고 있는데, 새로운 타이틀까지 얻어 진출하려는 의도를 잘 모르겠다”며 “혁신 시도를 하기 위해서 비교적 몸집이 가벼운 인뱅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고객 입장에선 시중은행이나 인뱅이나 ‘은행’으로 보기 때문에 굳이 인뱅이 더 나와야 되는지는 의문”이라면서도 “현재 인뱅 업계는 3사 체재기 때문에 참여자가 많아지면 시장 확대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금융지주의 인뱅 설립이 가까운 시일 내 가시화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현행 인터넷전문은행법은 IT 기업 등 비금융주력자만이 인뱅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금융지주법·은행법에 따라 금융지주도 인뱅을 가질 순 있지만, 금융당국의 촘촘한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해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인뱅 업계의 신규 진입 필요성에 대해 도입 초기인 만큼 성장세를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경쟁 촉진 정책 필요 시 ‘스몰 라이선스(은행업 인가 단위를 세분화해 개별인가로 내주는 것)’ 도입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