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종의 공군(空軍) 이야기 (76)] 국방전비태세검열관 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군생활 마무리하는 심정으로 부임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2.09.01 17:00 ㅣ 수정 : 2022.09.01 17:02
공군본부, 진급심사에서 방공포병 출신 장군 진급자 할당하지 않아 부임 전 아내에게 한 말, "전역하는 날까지 사람답게 살아보자" 전비태세검열단, '무소불위' 아니지만 선후배가 상호존중하는 민주적 조직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공본으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은 것이 그해 9월 경으로 기억한다. 장군 진급 심사가 코앞인데 그런 조치를 받으니 공든 탑이 무너지는 그런 심정이었다. 얼마 후 장군 진급심사가 시작되었고, 공군본부에서는 지난해에 이어서 금년에도 방공포병 장군 진급자를 할당하지 않았다. 이유는 금년 여름의 투서 사건으로 인한 방공포병에 대한 불신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허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아내와 두 딸에게 정말 미안했다. 이제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의 길’만을 걷고자 노력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내 관운(官運)은 여기까지 인가보다 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사령관 이취임식이 있었고 필자는 신임 사령관과 3주 정도를 같이 근무했다. 신임 사령관 이 모(某) 장군은 필자의 공군사관학교 2년 선배로서 상식이 통하는, 본인의 언행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선이 굵은 강직한 군인이었다.
필자의 차기 보직은 국방부 전비태세검열단의 검열관으로 결정되었고(전비태세검열단은 그해 말까지 합참 소속이었으나 해가 바뀌면서 국방부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이하 검열단), 방포사를 떠나기 하루 전에 방포사령관은 필자를 위하여 참모 회식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임지에 가서 최선을 다하라는 사령관의 말이 그저 귓가에 맴돌았다. 필자는 방포사령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와 참모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을 남기고 숙소에 와서 짐을 챙겼다.
그리고 며칠 후, 연말을 앞두고 필자는 전비태세검열단으로 부임하였다. 검열단은 흔히들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군 최고 수준의 검열 기구로 알려져 왔는데, 과거에 어떠했는지는 몰라도 필자가 부임해서 업무를 해보니 그 전문성에 있어서 군 최고 수준의 검열 기구라는 표현은 맞지만 소문과 같이 ‘무소불위’의 조직은 아니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많은 부분이 과장되게 부풀려져서 소문이 났던 것 같았다. 검열관들은 전역을 몇 년 남겨두지 않은 각 군의 고참 대령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검열관들은 풍부한 업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소신껏 그리고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며 검열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한편 필자로서는 ‘검열관으로 부임한다는 것은 이제 군생활을 마무리하는 과정에 들어간다는 의미’였기에 쓸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검열단으로 부임하기 전에 필자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울로 갑시다. 그동안 이래저래 마음고생 많이 했는데, 서울에 가서는 전역하는 날까지 대방동 공군 아파트에서 마음 편하고, 사람답고, 여유있게살면서(?) 주말에는 영화도 보고, 서울에 살면서도 가보지 못한 경복궁, 덕수궁도 가보고, 청계천을 복원했다는데 거기도 가봅시다.......”
연말을 며칠 앞두고 필자는 전비태세검열단장(해병대 이 모(某) 소장)에게 부임 신고를 하였다. 당시 전비태세검열단장은 필자가 합참대에서 학생장교로 교육을 받을 때 합참대 교수로 있었던 분인데, 교수와 제자가 10여 년이 지나서 다시 만나게 된 셈이었다.
검열관 사무실은 여러 개로 나뉘어 있었고, 인원이 많은 관계로 5~6명이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필자는 사무실 한쪽 구석의 비어있는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책상 앞쪽이 창가라서 비교적 덜 답답했다. 지난해에 방포사에서 근무할 때에는 참모장실에서 혼자 근무했는데, 검열단에 와서는 여러 명이 같이 사용하는 사무실에 있으니 처음에는 다소 불편했다. 청소도 검열관들이 직접 했는데, 막내인 필자에게 미루지 않고 모든 검열관들이 분담해서 했다.
검열관들은 대부분 필자보다 군 선배이자 각 군의 고참 대령들이었지만 선후배를 막론하고 서로 존중해 주는 모습이 보였다(당시 필자와 임관년도가 같은 동기생은 육군, 해군에 2~3명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선배 장교들보다는 이들과 잘 어울리게 되었다. 몇 개월 후에는 검열단에 사무실이 몇 개 더 할당되어서 필자를 비롯한 임관 동기 3~4명이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 사무실은 합참 건물의 꽤 높은 층에 자리 잡고 있었고 창문을 통하여 북한산 방향을 볼 수 있어서 전망이 매우 좋았다).
검열단의 임무는 합참과 육. 해. 공군, 해병대, 국방부 직할부대의 전비태세를 종합적으로 검열하는 것이다. 따라서 1년간 검열하는 부대는 정기 검열 부대 이외에도 불시 대비태세 검열 등 대상부대가 상당히 많았다. 해당 부대는 1년에 한번 뿐이지만 검열단 입장에서는 거의 1년 내내 검열업무가 부여되었다. 그동안 군 생활을 하면서 ‘합참 검열단이 불시 검열에 나섰다’는 소문이 돌면 많이 긴장했었는데, 이제 필자가 그 검열관 임무를 수행하게 되다니 만감이 교차했다.
검열단에 부임하고 불과 1~2주일이 지난 후에 필자에게 대비태세 점검차 불시 검열이 할당되었다. 부대 명칭이나 장소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서해 5개 도서 지역 중의 한 곳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검열단장을 비롯하여 검열관 0명이 헬기를 이용하여 해당 지역까지 이동했다. (다음에 계속)
◀ 최환종 프로필 ▶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 여단장, 前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