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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의 공군(空軍) 이야기 (75)

합참 방공과장 ⑧ 그리고 방포사 참모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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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2.08.19 15:54 ㅣ 수정 : 2022.08.29 18:18

음해성 투서 관련자들은 놔두고 피해자격인 장교들 불이익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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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 예비역 공군 준장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이에 필자는 그 미군 대령에게 “혹시 그 외교부 공무원이 그런 식으로 보고를 하더라도 나는 합참과 국방부에 ‘불특정 불량국가의 탄도탄 공격에 대비하고 국제적인 협조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한국의 Nimble Titan 회의 참가는 당연하고 지속되어야 한다고 보고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한국의 Nimble Titan 회의 참가는 현재까지 지속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편, 나중에 듣기로 그 외교부 공무원은 ‘Nimble Titan 회의 결과’ 보고시에 외교부 상급자로부터 주의를 받았다고 한다. 국제회의에서 그런 식으로 발언하지 말라고.)

 

외교부 공무원 얘기가 나왔으니 당시 상황에 대해서 한마디 더하겠다(시간이 꽤 흘렀으므로). 당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Nimble Titan 회의에는 하와이 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국방부, 합참, 외교부에서 각각 담당 인원들이 참석했다.

 

하와이 회의 때 한국 측 참가자들은 소속에 관계없이 서로 토의를 하며 회의에 임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회의 때는 국방부(합참)측과 외교부 측 인원은 전혀 교류가 없었다. 계급과 직책을 떠나서 이런 국제회의에서는 국익을 우선으로 하여 서로 협조하며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상식일 텐데, 이탈리아 회의 때는 협조나 토의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그 한국 외교부 공무원은 ‘국가 안보’ 보다는 ‘주변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극히 소극적인 생각으로 그런 발언을 하고 있었으니, 필자는 한국 외교부 공무원의 시각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가 하고 실망했다(물론 그 공무원 개인의 발언이었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로마 주재 일본 대사관의 외교관들이 피렌체까지 와서 일본 자위대 장교들과 많은 토의를 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하와이에서도 그랬고) 한국 측과는 많은 비교가 되었다. 탄도탄 방어 작전에 관한 여러 가지 참신한 주제를 가지고 토의를 하는 동안 어느덧 일주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갔다. 귀국 후, Nimble Titan 회의 결과 보고도 끝났고, 그 해의 주요 업무는 대부분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필자의 차기 보직은 방포사 참모장으로 결정되었다. 12월의 어느 날, 1년간 동고동락한 방공작전과 장교들과 소주 한잔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고, 다음날 후임자에게 업무를 인계하고는 방포사로 출발했다. 합참에서의 1년은 폭풍처럼 지나간 1년이었지만 업무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한층 더 성숙해졌음을 느낀 1년이었다. 

 

방포사는 중령 때 작전과장으로 근무한 이래 약 6년 만에 다시 가게 되었는데, 작전과장 때와는 달리 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부임할 수 있었다. 그만큼 그동안에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나 할까. 과거 방포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필자가 바라본 참모장이란 직책은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자리였는데, 방포사 참모장으로 부임하게 되니 만감이 교차했다.

 

당시 방포사령관(P 모(某) 소장, 육공)은 모시기에 꽤 까다로운 장군이었다. 사령관 P 모(某) 장군은 필자가 방포사 작전과장이었을 때 방포사 작전부장(대령)이었고, 그때 1년 동안 직속상관으로 모셨기 때문에 그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같이 근무하기에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관이었기에 다시는 같이 근무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인생이 어떻게 내 마음대로 되는가?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참모장으로 근무한 1년은 깊은 산속에서 수도생활을 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방포사의 일과도 모든 부대가 그렇듯이 참모회의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참모회의 때부터 참모(대령/중령)들의 진이 빠진다. 왠만한 지휘관 같으면 참모들의 보고를 받고 심각한 사안이 아니면 가볍게 참모회의를 마치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 사령관은 작은 것 하나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사령관 본인의 ‘말씀’이 너무 많았다. 참모들이 한마디 보고하면 사령관 본인의 ‘말씀’이 한동안 계속되었고, 각 참모들의 보고가 모두 끝나면 사령관의 지시사항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거의 일주일 내내).

 

보고 과정에서 원활한 보고가 안되거나 사령관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이 안될 경우에 질책은 끝없이 이어졌다. 이러다보니 회의 시간은 매번 길어졌고(효율적인 회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적(또는 질책) 받는 것도 한두번이지 그것이 일상화되면 지적받은 참모는 나중에는 의기소침 정도가 아니라 ‘거의 포기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무거운 분위기에서 오전 회의를 마칠 때가 많았는데, 필자는 참모 장교들을 위로하기에 바빴다(거의 1년 내내).

 

즐거운 일이라고는 거의 없는 생활 속에서 계절은 어느덧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단조로운 일상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7월 중순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해괴한 음해성 투서 사건’이 발생해서 몇몇 고급 장교들이 조사를 받게 되었고, 필자도 그 조사 대상에 포함되었다. 공군본부 감찰실에 접수된 음해성 투서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방포사 내에 사조직이 있다. 그 사조직이 방포사 내의 주요 보직과 진급을 독차지 한다.’

 

어느 누가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만들어서 투서를 했을까?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필자가 대령 진급을 1차로 했어야 하고, 장군 진급도 이미 했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사조직이라는 것도 금시초문인데, 누가 그 사조직을 만들었는지? 그 사조직의 명칭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공군본부 감찰실에서는 투서 내용을 사실로 보았는지 관련자로 생각되는 고급장교(장군도 포함되었다)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공군본부 감찰장교로부터 조사를 받은 필자는 참담한 기분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고 옥고를 치를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런 모함은 조선 시대에나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필자가 그런 모함을 받게 되다니...후에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대략 알게 되었고(진급에 눈이 먼, 일부 몰지각한 영혼이 없는 장교들의 소행이었다. 육공과 오공 장교를 막론하고), 그 음해성 투서에 관련하였던 일부 장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사과를 받았다.

 

그러나 답답한 것은 음해성 투서에 관련된 자들은 처벌받지 않고 애꿎게 조사받은 장교들만 처벌을 받았다. 필자도 공군본부로부터 서면으로 ‘경고’ 조치를 받았다. 그 문서는 한동안 보관하다가 없앴는데, 그 내용(경고 조치를 한 이유) 또한 황당했다... (다음에 계속)

 

 


◀ 최환종 프로필 ▶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 여단장, 前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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