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가상자산 한파’에 투자 숨 고르기
신한금융, 코빗 법인계좌 발급 이어 투자 잠정 중단
루나 사태 등 가상자산 가치 폭락, 규제 논의 등 악재
가상자산 제도화 급물살, 금융사 시장진출 속도 조절 예상
[뉴스투데이=최병춘 기자] 최근 루나-테라 가치 폭락사태 등으로 가상자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일부 금융사가 투자계획을 접는 등 시장 진출 속도 조절에 나섰다.
1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신한금융그룹은 최근 가상자산거래소 코빗에 대한 지분 투자 검토를 중단했다. 앞서 신한금융은 신한캐피탈이 운용하는 펀드를 통해 코빗에 대한 지분을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적게는 200억원 많게는 500억원 가량의 투자 검토가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빗은 국내 4대 가상자산 거래소 중 하나로 현재 넥슨 지주사인 NXC(48%)와 SK스퀘어(35%)가 대부분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신한지주가 실제 투자에 나설 경우 NXC가 소유한 코빗의 지분 약 20%를 확보, 3대 주주로 올라설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 신한금융, 가상자산 시장 악화에 투자 보류
신한금융은 투자 검토를 중단한 배경으로 최근 가상자산 시장의 악화를 꼽았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루나 등 관련 사고가 터지면서 가상자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누가 봐도 투자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에 당장은 투자를 잠시 보류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최근 신한은행의 코빗 법인계좌 발급도 중단해 신한금융이 코빗 또는 가상자산 시장과의 거리두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물가 상승 기조에 금융 시장 자본 유동성이 떨어지면서 전 세계 가상자산 가치가 급락했다. 국제 가상자산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한국시각으로 지난 13일 오후 9시 기준 세계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9605억6000만달러(약 1237조원)으로 전날(24시간 이전) 시세보다 12.88% 감소했다. 가상자산 시가총액이 1조달러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21년 1월 이후 처음이다.
이 같은 불황에는 지난달 불거진 한국산 테라-루나 사태도 영향이 컸다. 지난달 루나와 스테이블 코인 테라의 폭락으로 예금 인출이 이어지면서 전 세계 가상자산 시가총액 2000억 달러(약 258조원)를 증발시키는 등 시장에 큰 타격을 줬다. 또 코인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투자 심리도 얼어붙으며 불황을 가속화시켰다.
루나-테라 사태로 금융당국의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 논의도 촉발됐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루나-테라 사태로 인해 열린 ‘가상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투자자 보호’ 당정 간담회에서 13일 “앞으로 루나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부족함을 메우고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회와 함께 ‘디지털자산 기본법’(가칭) 제정 등 가상자산 규율체계 마련을 위한 입법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금융당국의 압박이 당분간 거세질 것이란 전망 또한 가상자산시장에 대한 투자를 쉽게 단행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이 같은 기조는 일시적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현재 시장 상황이 좋지 않지만 여전히 막대한 자금이 몰려있는 매력적인 투자처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국내 가상자산 시장 규모는 55조2000억원, 하루 평균 거래액은 11조3000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올 5월까지 늘어난 은행 수신 잔액 증가분인 51조1000억원보다 많은 규모이다. 또 가상자산 사업자를 이용하는 국내 이용자만 전체 인구의 약 30%인 1525만명에 달했다.
신한금융 또한 가상거래소 투자 검토를 중단했지만 지난달 말에는 디지털자산 공시 및 평가 정보를 제공하는 ‘쟁글(Xangle)’의 운영사인 크로스앵글에 지분투자를 하고 사업협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하는 등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분야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 금융 규제 완화, 가상자산 생태계 변화 변수
게다가 금융당국은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규제뿐 아니라 금융사의 시장진출을 위한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철폐하기 위해 이달 중 ‘경제 분야 규제혁신TF’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규제 혁신안에는 금융 부문도 포함, 금융당국은 은행 등 금융기관의 가상화폐 진출을 가로막았던 ‘금산분리’ 원칙까지 재검토할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시중에서 암호화폐, 가상화페 등으로 불리고 있는 가상자산은 현행법상 금융자산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현행법상 금융업으로 분류될 수 없는 만큼 금산분리 원칙이 적용되는 금융사의 직접적인 시장진출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에 금융사들이 거래 계좌 발급 등 제휴 성격의 연계 사업을 진행하거나 계열사를 통한 지분 투자 등 간접적인 시장진출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최근 금융위가 은행법 개정을 위해 금융 전문가들이 참여한 TF를 구성하는 등 본격적인 규제 개선 작업에 나섰다. 이번 은행법 개정안에는 은행 등 금융사의 부수 업무 및 자회사 투자범위 확대, 금융사의 IT 및 플랫폼비즈니스 시장진출 방안 등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법 개정이 이뤄지면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시장 진출 길이 열릴 수 있다.
다만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관련 정책이 구체화되지 않은데다 가상자산시장의 제도 정비도 아직 진행중인 만큼 시장의 불확실성은 여전한 상황이다.
이에 금융사 또한 현 시점에 무리하게 투자에 나서기 보다 금융 환경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당분간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지금 당장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투자는 리스크가 크지만 언제든지 시장이 다시 활성화될 수 있고 가상자산이 제도권에 들어와 안정화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 금융사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고 전했다.
신한금융 관계자 또한 “당장 (가상자산거래소)투자 진행 여부를 확답할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장 상황 변화에 따라 투자를 다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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