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참 방공과장 ④ 한국군 최초로 참석했던 ‘Nimble Titan’ 회의에서 '충격' 받아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그리고 그 자리에는 필자가 연합사에 근무할 당시에 방공처에 근무하던 미군 예비역 방공포병 장교인 Ed가 있었다(공군 이야기 47회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어떤 일로 한국에 왔느냐고 물으니 조만간 미국에서 열리는 TMD 관련 회의 때문에 연합사와 업무 협조차 한국에 왔다고 한다.
처장과 부처장, Ed와 함께 ‘TMD 관련 회의’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고, 대화 말미에 필자가 한국 합참의 방공작전과장이니 한국측 대표로 이 회의에 참석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그러나 현안업무가 산더미 같은데 필자 마음대로 결정할 수도 없고, 그 회의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때까지만 해도 잘 이해가 안갔다. 다소 뜬구름 잡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작전부장에게 보고 및 승인을 기다리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작전부장에게 ‘TMD 관련 회의’에 대해서 보고하고는 다시 현안업무에 매달리면서 ‘국제회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작전부장이 필자를 호출하였다. “미국(하와이)에서 열리는 TMD 관련 회의에 방공작전과장이 다녀와야겠네”. 아마도 연합사에서 국방부와 합참에 요청하여 필자가 이 회의에 참가하게 된 것으로 보였다.
'TMD 관련 회의’의 명칭은 ‘Nimble Titan’으로서 이 회의는 미국이 주관하고 PATRIOT 무기체계를 운용하고 있는 국가들이 참가하여 ‘미래에 예상되는 불특정 불량국가의 탄도탄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폭넓게 토의하는 국제회의로서, 개략적인 회의(토의) 내용은 탄도탄 방어 전술과 이와 관련한 미래의 기술적인 발전방향, 그리고 ‘탄도탄 방어 작전’시 예상되는 외교적 문제(이에 대한 해결책) 등이다.
그러나 필자 입장에서는 ‘Nimble Titan’ 회의 참가만 결정되었을 뿐 위에서 열거한 개략적인 회의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리고 ‘Nimble Titan’은 시작된 지 꽤 오래 되었는데도 한국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참석한 적이 없었다.
필자가 참석하게 되는 이 회의는 한국군으로서는 첫 번째로 참가하는 회의였고, 참가 자격은 ‘참관인’으로 주어졌다. (두 차례 ‘Nimble Titan’ 회의에 참가하고 나서야 위에 열거한 회의 내용들을 이해하고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회의를 마치고서 위 내용의 일부를 이해했는데, 필자로서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 충격이란 ‘대원군의 쇄국정책 이후 외국의 신식 문물이 밀려 들어왔을때 당시 사람들이 받았던 충격’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중요한 회의를 그동안 우리는 왜 등한시 했을까).
'Nimble Titan’ 회의를 앞두고 사전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굴뚝같으나 어디서부터 공부(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한 실정이었고, 각종 현안업무 처리 때문에도 준비할 시간은 없었다. 사실 한국군으로서는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하는 것이기에 주제 발표 등의 준비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탄도탄 방어와 관련하여 질문이나 의견 제시 또는 외국군 참석자들의 질문에 대답할 수는 있기 때문에(그런 면에서는 정식 참가자나 별 차이가 없었지만), 회의 내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대략이라도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시에는 ‘Nimble Titan’은 금시초문이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막막할 뿐이었다.
한미 연합연습이나 세미나에 참가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미군 측의 회의(세미나)는 달랑 슬라이드 한 장에 키워드 몇 개 적어 놓고 회의(자유토론)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 회의의 중심 개념을 모르면 전혀 토론에 참가할 수가 없는 그런 경우를 얘기한다. 필자에게는 ‘Nimble Titan’도 그런 경우였다. Betancourt 대령과 회의내용에 대해서 한두차례 토의를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뜬구름 잡는 기분이었다.
시간은 흘러서 출장일이 되었다. 회의 장소는 하와이. 하와이는 꽤 오래전에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20시간 정도 비행을 한 곳이고, 몇 년 전에 방포사령관을 수행해서 다녀왔기에 낯설지는 않은 곳이다. 그러나 개념이 손에 잡히지 않은 이번 출장은 가기 전부터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게다가 이번 국제회의에는 통역장교도 없이 참석해야 했다. 회의 참석 인원은 합참, 연합사의 한국군 장교 0명과 외무부 인원 등 여러 명으로 구성이 되었다. 한국군 장교 중에서는 필자가 선임장교였다.
하와이로 가는 국적기의 일반석에 앉아서 비행시간 대부분을 회의자료를 보면서 연구를 했다. 하와이 도착 1~2시간 전에야 잠시 눈을 붙였다. (해외출장시 항공권은 대령까지는 일반석이 제공된다. 숙소 비용도 제한되어 있어서 때로는 추가로 자비를 부담할 때도 있었다. 우리의 국력을 감안할 때 이제는 한국군도 이런 사정을 고려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와이에 도착한 날은 토요일이라 주말은 쉴 수가 있었다. 공항에는 얼마 전에 연합사에서 다시 만났던 Ed가 나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 일행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그의 부인이 만들어준 음식을 먹으면서 회의내용에 대하여 토의를 했다. (Ed는 부인이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정서에 대해 이해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고, 나이도 필자보다 훨씬 많기에 나는 그를 Ed 형님이라고 불렀다.)
주말을 푹 쉰 우리 일행은 월요일 아침에 회의 장소로 향했다. 회의 장소는 군부대 시설이 아닌 와이키키 해변의 유명 호텔 세미나실에서 진행이 되었고, 참가자의 복장은 외부 보안상 사복 차림이었다.
우리는 세미나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참가자 등록을 했고, 우리를 본 Ed는 각국의 장교들에게 우리를 소개했다. 모두들 사복 차림이라 국적이나 계급을 알 수 없었는데, 점심때가 되면서 대략 상대방의 국적이나 소속군, 계급을 알게 되었다. 국적, 소속군, 계급, 병과도 다양했다.
특히 법무장교들이 꽤 많이 참석했는데,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회의가 진행되면서 ‘탄도탄 방어 작전’시에 외교적 또는 법무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법무장교들이 왜 참석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구체적인 예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다음에 계속)
◀ 최환종 프로필 ▶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 여단장, 前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