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참 방공과장 ② 작전부장이 'UAE 출장'을 통보하면서 미소 띤 까닭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군용 헬기 탑승 얘기가 나왔으니 수송기 탑승 경험도 한마디! 공군 수송기를 처음 탑승한 것은 생도 3학년 시절, 낙하산 강하 훈련을 받을 때였다.
그때 탑승한 기종은 C-123였고, 이륙 후 낙하지점까지 가는 동안은 모두들 긴장한 상태였고 교관 얼굴만 쳐다보느라 서로 얘기할 엄두도 못냈다.
물론 엄청 시끄러운 엔진 소음 때문에 얘기해도 안들렸겠지만. 그때는 시끄러운 엔진 소음 이외에는 모두들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좌석의 불편함 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영화에서나 봤던 그물 의자에 앉아서 수송기에 타고 있다는 것에 내가 군인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을 정도.
대위 때 C-54를 몇 번 탑승해본 적이 있다. 워낙 오래전 기억이라 가물가물한데 C-54는 소음이 적어 비교적 쾌적했던 것(C-123보다는)으로 기억한다. 의자는 예전의 무궁화 기차 좌석 같은 의자로서 C-123의 그물의자보다는 편했다.
C-54, C-123가 퇴역한 이후에는 C-130을 이용했는데, C-130을 이용한 장거리 비행에 대해서는 잔인한(?) 추억이 있다. 필자가 공군대학의 ‘지휘관 참모과정’에서 학생장교(소령)로 공부하고 있을 당시, 학교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학생장교 전원이 동남아 국가(필리핀, 태국 등)를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다.
이때 C-130을 이용하여 갔는데, 민간 여객기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속도가 느리다 보니 비행시간이 꽤 길었다. 민간 여객기로 인천에서 마닐라까지는 대략 4~4.5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당시 C-130으로는 그 두 배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의자는 C-123과 같은 그물의자였고, 이 그물의자는 1~2시간 정도면 그럭저럭 견딜만한데 3~4시간 이상이 되면 앉아 있기가 조금 힘들다.
당시 최장거리 구간은 싱가폴에서 서울로 귀국하는 구간이었고, 중간 급유 때문에 마닐라를 경유해서 서울까지 왔다. 이때 싱가폴에서 마닐라까지 비행시간은 거의 10시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차여행 같으면 중간에 내려서 쉬기라도 하지만 공중에서는 어디 내려서 쉴 수도 없지 않은가.
10시간 정도를 비좁은 수송기 안에서, 그리고 불편한 그물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상상해 보시라. 정말 힘들고 잔인한(?) 비행이었다.(수송기를 생각하면, 전역 이후에 민간 여객기의 일반석에 앉아서 10시간 정도 비행하는 것은 아주 편안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전역한지 꽤 시간이 흐른 요즘에는 민간 여객기의 일반석에 앉아서 4~5시간 가는 것도 힘들어졌다. 체력이 떨어진 것인지 군인정신이 희박해진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다시 서해 5개 도서 지역 부대에 대한 지도방문으로 돌아가겠다. 앞에서 합참 생활 중 기억에 많이 남는 것 중의 하나가 예하부대에 대한 지도방문이었고, 지도방문중에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이 서해 5개 도서지역 부대에 대한 지도방문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섬’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함에도 불구하고 임무수행을 위하여 결연한 의지로 근무하고 있는 해병대원들과의 만남이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서해 최북단에 있는 서해 5개 도서 지역은 섬 특유의 열악한 환경도 있지만 유사시에는 고립될 수도 있는 지역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백령도나 연평도 지역에 대한 지도방문을 마치고 복귀할 때면 고생하는 해병대원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후에 필자가 국방부 전비태세검열실의 검열관으로 해당 지역에 검열을 갔다가 복귀할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검열이 아닌 지도방문이었지만 현지 부대에서는 합참에서 왔다는 것에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백령도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의 방공포병 담당 참모와 부대 전체를 돌아보았다. 대체로 대비태세가 잘 되어 있었고, 간혹 미비한 점은 해당 참모에게 ‘이해’를 시키고 빠른 시간 내에 조치토록 하였다.
인상적인 것은 백령도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원들의 눈빛과 의지였다. 해병대원들은 합참 일행이 현장 확인을 마치고 일어설 때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전투의지를 표현했다. 처음에는 그저 의례적인 행동과 말이라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해병대원들의 이 말과 눈빛에서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백령도와 인근 섬에 대한 지도방문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연평도로 향했다. 헬기로 연평도에 도착 후 부대 상황실로 가는 도중에 우리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시 피해를 입었던 부분(지붕이 무너진 건물 등등, 그때까지도 피폭 지점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을 돌아보았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옛 선인들의 명언이 생각나며 만감이 교차했다.
연평도의 해병대원들도 백령도의 해병대원들과 마찬가지로 눈빛이 살아 있었고 모두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었다. 어느 덧, 초여름이 되었다. 당시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초병의 경계근무중 사격’에 대한 후속조치와 다른 현안업무 때문에 잦은 야근과 이에 따른 스트레스가 많을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00부장실에서 연락이 왔다. 조만간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미국과 UAE와의 연합훈련(우리의 을지 연습과 유사한)이 있는데, 00부장(당시 공군 소장, 후에 공군참모총장)이 합참의 영관급 장교 2명을 선발하여 이 훈련에 참관인 자격으로 같이 갈 계획이라 하고 그중 한 명에 필자를 선발하였다고 알려왔다.
필자는 현안업무 때문에 UAE에 출장을 갈 엄두를 못내던 터였는데, 00부장이 미리 작전부장에게 얘기를 했는지 작전부장은 필자에게 ‘웃으면서’ 단기간 출장이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하였다. 왜 웃으실까 하면서 날짜를 보았다. 출장 기간이 현충일 연휴와 겹쳐 있는 것이 아닌가. 연휴를 빼면 실제 근무일은 하루 정도만 출장 기간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작전부장이 웃을 만도 했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바쁜 와중에 나 혼자 출장을 가서 자리를 비우게 되면 부서원들에게 매우 미안한 노릇인데, 근무일을 하루만 빠지면 되니 그나마 부서원들에게 덜 미안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 해서 말로만 듣던 UAE를 처음 가보게 되었는데, 출장 일정은 정말 빡빡했다.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면 UAE는 처음 가보는 나라이기에 사전에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 정도는 미리 공부하고 갔을 테지만, 당시 업무 여건상 그럴 시간은 전혀 없었고 UAE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UAE의 역사와 문화를 속성으로 공부해야 했다.
출장 첫날 오후 늦게 인천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다음날 새벽에 UAE에 도착을 했고, 두어 시간 눈을 붙인 후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장소로 갔다. 우리로 치자면 육군대학 정도라고 볼 수 있는 시설인데, 부유한 나라답게 그 시설이 어마어마했다. 거의 5성급 호텔 수준의 숙소와 식당, 세미나실 등이 있었다. (다음에 계속)
◀ 최환종 프로필 ▶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 여단장, 前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