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김태규 기자] 암환자 보험금 미지급 문제로 4년간 갈등을 이어온 삼성생명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에 해당하는 제재인 '기관경고'를 받았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과 자회사는 향후 1년간 금융당국의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신사업에 진출할 수 없게 됐다.
당국의 결정에 불복해 소송에 나설 경우 자회사인 삼성카드의 마이데이터 사업 인허가가 더욱 늦어질 수 있어 대응방안을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26일 정례회의를 열고 삼성생명이 암환자들에게 약관에 따른 입원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 보험엄법을 위반했다며 과징금 1억5500만원을 부과하도록 의결했다.
삼성생명은 2018년부터 암 입원보험금 분쟁을 이어왔다. 암환자들이 요양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보험금을 청구하자 보험사들은 '암 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한 입원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금융감독원은 보험사들에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했지만 삼성생명은 일부만 수용했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2019년 종합검사를 실시하고 암환자들이 청구한 519건에 대해 삼성생명이 객관적인 증거 없이 보험금 총 17억원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과징금 부과와 기관경고 등을 의결했다.
금융위는 금감원이 지적한 519건 가운데 496건에 대해 약관상 '암의 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한 입원'에 해당한다고 보고 보험업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다만 금융위는 삼성생명이 대주주인 삼성SDS를 부당 지원한 사안과 관련해 금감원이 결정한 과징금 부과를 취소했다. 앞서 금감원이 결정한 중징계인 기관경고도 확정됐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제17조에 따르면 금융기관제재는 △인허가‧등록 취소, 영업‧업무 전부 정지 △영업‧업무 일부 정지 △영업점 폐쇄, 영업점 영업의 전부 또는 일부 정지 △위법‧부당행위 중지 △계약이전 결정 △위법내용 공표 또는 게시 요구 △기관경고 △기관주의 △과징금‧과태료 등이다. 기관경고 이상의 제재를 받은 금융회사와 그 자회사는 최소 1년간 신사업 진출을 위한 금융당국의 인허가를 받을 수 없다.
삼성생명은 지난 2015년 삼성SDS와 전사적 자산관리 시스템 구축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생명은 삼성SDS가 계약기간 내에 이를 이행하지 못했음에도 계약상 받게 돼 있는 지체상금(지연배상금) 158억원을 받지 않았다.
금감원은 종합검사에서 삼성생명이 지체상금을 받지 않아 삼성SDS에 부당하게 이익을 제공해 보험업법 제111조를 위반했다고 보고 기관경고와 과징금 119억원 부과를 결정했다.
해당 조항은 보험회사가 대주주에게 직접 또는 간접으로 자산을 무상으로 양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는 지체상금 미청구를 보험업법상 '자산의 무상양도'라고 보기 어렵다며 금감원이 과징금 부과를 취소하고 보험업법상 '조치명령'을 부과했다. 대법원 판례와 법령해석심의위원회 자문내용 등을 고려할 때 현행 보험업법 규정으로는 제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치명령의 주요 내용은 △대주주 등 외주업체와의 용역계약‧검수업무 처리, 지체상금 청구 등이 적정하게 이뤄지도록 업무처리절차와 기준 마련‧개선 △대주주와 체결한 용역계약의 지체상금 처리방안 마련 후 이사회 보고 및 이행 등이다.
금융위는 향후 유사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대주주 거래제한 대상을 확대하는 등 보험엄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기관경고가 확정됨에 따라 삼성생명과 삼성생명이 대주주로 있는 삼성화재‧삼성카드‧삼성증권 등 자회사는 향후 1년간 금융당국의 인허가가 필요한 신사업에 진출할 수 없다. 삼성생명이 최대주주로 있는 삼성카드는 마이데이터 사업 허가를 받기 어려워졌다.
삼성카드의 마이데이터 사업 허가심사는 금감원 제재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20년부터 보류되고 있다. 다른 카드사들이 마이데이터 사업을 통해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뒤처지게 된 것이다.
삼성생명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금융당국의 결정에 불복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경우 제재 확정도 법원의 확정판결 이후로 미뤄지게 돼 신사업 인허가 제한 기간도 늘어나게 된다. 삼성생명이 대응방안을 모색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직 금감원으로부터 최종검사서를 받지 못한 상황"이라며 "최종검사서를 받은 뒤 향후 대응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는 대주주에 대한 제재로 인해 자회사의 신사업 진출까지 막히는 것은 과한 처사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주주에 대한 제재 사유가 신사업과 관련성이 없다면 정상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