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몽니' 조선업 이어 대한항공-아시아나 M&A도 재뿌릴까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최근 국내 조선업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M&A)이 유럽연합(EU) 반대로 물거품이 된 가운데 EU의 몽니가 국내 항공업계 M&A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M&A가 EU의 견제구로 조선업계 처럼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EU가 그동안 전 세계 항공업계 M&A에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온 만큼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사례에도 합병 불허 카드를 만지작 거릴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기존 사례만으로 EU의 결정을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희망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 캐나다·스페인 EU에 부딪혀 합병 불발, 한국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이 결정된 후 대한항공은 2020년 11월 아시아나항공 주식 63.88%를 취득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이듬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를 비롯해 미국, EU 등 9개 필수 신고국가 경쟁당국에 인수와 통합 필수 선행조건인 기업결합신고 승인을 요청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대한항공은 지난해 6월 30일 아시아나항공 주식을 취득했어야 했다. 그러나 선결 조건인 기업결합 승인이 속도를 내지 못해 같은 해 12월 31일까지 6개월 연장됐다. 1차례 연장 결정에도 경쟁당국 승인이 나지 않아 대한항공은 오는 3월 31일까지 다시 또 3개월 연장하는 결정을 내렸다.
현재까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결합을 승인한 필수신고국가 경쟁당국은 한국 공정위와 터키, 태국, 대만, 베트남 등 5개국에 그친다. 나머지 미국, EU, 일본, 중국 등 4개국이 남아있는 상태다. 임의신고국가 영국, 호주, 싱가포르 3개국에서도 아직까지 승인이 나지 않은 상태다.
특히 EU, 일본, 영국 등은 서류 미제출로 정식 신고가 접수되지 않아 아직까지 본심사 이전 단계인 사전심사가 진행 중이다. 다만 신고 전 사전협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협의 종료 후 신고만 빠르게 진행하면 결론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두 항공사 결합이 성공할 지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가 점차 까다로워지고 있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승인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이하 집행위)는 지난해 항공사간 합병을 수포로 만든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전력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캐나다 1위 항공사 ‘에어캐나다’와 3위 ‘에어트랜젯’의 합병을 비롯해 스페인 1위 항공그룹 ‘IAG’와 3위 항공사 ‘에어유로파’ 합병에 모두 반대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EU가 이처럼 항공업계 '몸집 키우기'에 반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독과점' 등 항공업계 공정경쟁을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전 세계 항공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진퇴양난에 빠져 기업간 M&A가 해법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이후 재도약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항공업계 M&A에 따른 독과점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게 EU 입장이다.
이에 따라 EU는 국제선 여객 기준으로 세계 18위 대한항공과 32위 아시아나항공이 통합해 세계적인 대형 항공사로 거듭나면 독과점 논란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앞서 예를 든 캐나다나 스페인 항공사 합병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에어캐나다와 에어트랜젯은 유럽∼캐나다 간 중복노선이 30여개다. 즉 장기적인 측면에서 항공업계가 회복세로 돌아섰을 때 두 기업의 독과점 가능성이 크다. 이에 비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유럽 중복 직항 노선이 4개에 불과해 다른 항공사 진입 가능성도 활짝 열려있다.
또 IAG와 에어유로파는 대서양 구간 시장을 꽉 잡고 있는 상위 항공사다. 이에 따라 두 항공사의 합병이 다른 유럽 항공업체에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러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한국 항공사이기 때문에 EU가 반대할 명분이 크지 않다는 게 항공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에 EU가 반대 카드를 내밀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스페인은 대서양 구간의 시장 지배자 간 합병이기 때문에 EU가 반대할 수 있지만 한국은 해외 시장에서 지배자 입장이 아니다”라며 “몇 건의 사례만으로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현재로서는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 공정위, 국내 항공업계 합병에 조건부 승인해 ‘시끌’
한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에 대한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공정위는 1년여 간에 걸친 고민 끝에 지난해 12월 ‘일부 슬롯 반납’, ‘운수권 재배분’ 등을 전제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승인한다는 취지의 기업결합심사 심사보고서를 대한항공에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건이 전제돼 아쉬움은 있으나 대한항공은 승인 자체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승인 조건을 그대로 수용하면 국내 항공업계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단거리 노선은 운수권과 슬롯(시간당 이착륙 허가 갯수)을 회수하는 노선 규모가 확대돼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로 재분배돼 독점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LCC가 운항하지 못하는 장거리 노선에 대한 운수권이 외국 항공사에 넘어가면 통합 항공사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공정위의 잠정 결론을 토대로 정부 당국과의 조율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무조건 승인이면 가장 좋았겠지만 조건부 승인이 나온 상황"이라며 "이에 대한 의견서를 준비 중이며 조율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