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과 정의선이 '사익편취' 걱정하는 나라...'모건스탠리의 역설'을 깨라
ESG경영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과 같은 재무적 지표뿐만 아니라 E(환경), S(사회), G(지배구조)와 같은 비재무적 지표에 대한 국제적 기준(Global standard)을 충족시켜나가는 게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좌우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예컨대 유럽연합(EU) 플라스틱 규제, 제품 생산과정에서의 인권기준 등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EU수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고생해서 만든 제품이 ESG기준에 걸려서 제대로 팔리지 못할 경우, 기업의 재무적 지표는 악화되게 마련이다. 그런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브랜드 가치는 추락한다. ESG 투자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투자대상에서 제외되면 제품을 만들 자본력도 취약해진다. 요컨대 ESG경영이 불량하면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는 시대가 도래중이다. 따라서 ESG경영 성공전략은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치열한 생존전략으로 추구돼야 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모든 주체 간에 손발이 맞아야 한다. ESG가이드라인을 제작하는 정부, 그 가이드라인에 따라 경영하는 기업, 경영의 비전을 바라보는 투자자가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한국기업의 ESG경영이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첫 단추는 정부가 끼워야 한다. 글로벌 시장을 움직이는 선진국 정부와 기업 그리고 투자자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기준을 정립해 나가는 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가이드라인’을 제정, 우리 기업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엉뚱한 곳에 초점을 맞추면 헛수고를 하거나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비극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특히 정부의 기업정책 및 ESG가이드라인이 글로벌 가이드라인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글로벌 ESG가이드라인과 어긋나는 정부 정책은 ‘자해 행위’이다.
■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산업부의 G(지배구조) 부문 가이드라인은 한국기업 발목 잡기?
G(지배구조)와 관련된 정부 정책이 그렇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산업통상자원부의 ESG가이드라인은 글로벌트렌드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 지난 해 12월 30일부터 시행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대기업 총수의 사익편취 규제 대상기준은 지분 30%이상을 보유한 계열사에서 지분 20%이상을 보유한 계열사로 좁혀졌다.
국내 대표적 대기업 집단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리스크가 커졌다. 계열사 지분율을 낮추고, 계열사 간의 협력을 가급적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익편취라는 불법을 자행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산자부가 지난 12월 1일 발표한 ‘K-ESG 가이드라인’은 61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지배구조(G) 부문은 ▲사외이사 비율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 ▲이사회 성별 다양성 ▲윤리규범 위반사항 공시 ▲지배구조 규제 위반 등 17개 항목이다. 지배구조 규제 위반을 하면 ESG경영 평가에서 벌점을 받는 구조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으로서는 가장 신경 써야 할 문제가 공정거래법 규제인 셈이다.
■ 일본 정부의 G부문 가이드라인은 ‘공격적 경영판단 뒷받침’에 초점 맞춰
그러나 G부문 글로벌 스탠다드는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외이사 비율을 높여서 경영의 건전성·투명성·효율성을 강화하도록 하는 데 주력하라는 것이다.
ESG경영시대에 성공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일본 정부는 ‘일본부흥전략 2014’에서 지배구조 개혁의 가이드라인의 화두를 ‘자본생산성(ROE)’ 향상으로 잡았다. 이를 위해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공격적 경영판단을 뒷받침하는 구조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일본기업이 공격적 경영을 하기 위해서라면 손발을 풀어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단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도 G부문 가이드라인으로 제시, CEO의 강력한 리더십을 견제하도록 했다. 그게 일본 정부가 추진하려는 강력한 지배구조 개혁으로 풀이된다. 한국정부가 기업의 발목잡기에 공을 들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로 일본의 미쓰비시 상사만 해도 강력한 사외이사 제도를 G부문 성과로 자랑하고 있다.
미쓰비시의 이사회는 지난 해 4월 기준 사내이사 6명, 사외이사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외이사 비율이 45%이다. 이사회가 ‘거수기’가 아니다.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경영상의 주요 현안을 결정하고 CEO에 의한 업무집행을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미쓰비시는 이같은 G부문 대응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 삼성전자 ESG경영이 한국에서 저평가되는 '모건스탠리의 역설', 산업부의 'ESG포털'에서 확인돼
반면에 글로벌 시장 서열에서 미쓰비시를 발밑에 두고 있는 삼성전자는 지난 해 G부문에서 쓴 맛을 봤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ESG평가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지난 해 7월 2분기 평가에서 삼성전자를 ‘투자할 가치가 없는 기업’으로 평가했다. 종합등급 B를 줬다. B등급은 그럭저럭 선방했다는 뜻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하위권이라는 소리이다.
기업지배구조원의 ESG 평가체계는 S, A+, A, B+, B, C, D 등의 7등급 체제이다. B등급은 5등급이다. 삼성전자가 ESG경영에서 실패했다는 판단인 셈이다.
화근은 G부문 평가이다. 기업지배구조원은 지난 해 4월 발표한 1분기 등급 평가에서 삼성전자의 G부문 등급을 기존의 B+에서 B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지난 1월 최순실 국정농단 항소심 재판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뇌물 공여 등의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된 데 따른 조정이다.
지난 해 7월 13일 발표된 2분기 평가에서 삼성전자의 G부문 등급은 B에서 C로 또 다시 한 계단 내려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해 6월 24일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삼성SDI 등 전자계열사 4곳과 삼성웰스토리에 과징금 2349억원을 부과하고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을 검찰에 고발한 사실을 감점 요인으로 계산했다. 삼성전자와 주요 계열사가 삼성웰스토리에 사내급식 일감을 몰아줬다는 게 죄목이다.
공정거래위가 사익편취 규제대상을 총수일가 지분 20%이상으로 확대함으로써 한국의 대기업은 삼성전자처럼 G부문에서 등급하락을 겪을 가능성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기업정책과 ESG정책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리딩기업의 ESG 경영은 중위권을 맴돌기 쉬운 상황이다. 정부가 자국 기업을 때리는 모습이다. 이 같은 자기모순은 ESG성공전략의 출발점이 정부 정책이 돼야 하는 이유를 웅변하는 사례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산자부가 올해 1월1일 출범시킨 ‘ESG포털’의 자료만 봐도 정부가 ‘자해행위’를 벌이고 있음이 확인된다.한국기업지배구조원보다 모건스탠리가 삼성전자의 ESG등급을 더 높게 매겼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는데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그렇지 않았다. 모건스탠리의 팔이 삼성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굽었다. '모건스탠리의 역설'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평가에 따르면 지난 해 4분기 삼성전자는 E부문 A, S부문 A+, G부문 B등급이다. 종합등급은 B+이다. G부문이 깎여서 종합등급은 7등급 체계에서 4등급을 맞은 셈이다.
하지만 ESG등급평가의 글로벌스탠다드인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종합등급은 A이다. MSCI ESG 평가 등급은 AAA, AA, A, BBB, BB, B, CCC 7등급 시스템이다. A는 3등급에 해당된다.
한국의 가이드라인을 적용해서 평가하면 4등급인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준인 MSCI 평가를 적용하면 3등급으로 한 계단 상승한다. 뭔가 단단히 잘못된 현상이다. 한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발목을 잡은 기업정책과 ESG가이드라인을 운용하고 있다는 가설은 ‘참명제’처럼 보인다.
우리 기업이 이 같은 정부의 발목잡기에 대응하다보면 ESG경영 시대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지난 해 6월 1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발표한 '일본 ESG 등급 우수기업 모범사례'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일 3국 100대기업의 MSCI의 ESG 등급을 비교하면, 3국 중 한국이 꼴찌이다. 상당수 한국인들은 “한국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날아다니는데, 일본 기업은 죽은 지 오래됐다”고 자부하지만 ESG경영에서는 다르다. 일본이 미국보다 우위에 있다.
2020년 MSCI ESG 평가의 상위등급(AA이상)을 받은 기업 수는 일본 23개(AAA등급 6개), 미국 15개(AAA 등급 2개), 한국 3개 등이다. 한국 기업 중 AAA는 없다.
■ 정부, ‘재벌규제’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글로벌스탠다드’에 대응해야
삼성과 현대차그룹은 지난 해 12월 초 공정거래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빠르게 대응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응은 글로벌 ESG경영 성공전략과는 무관해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공정위의 사익편취 규제 강화를 걱정한 결과물이다.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삼성생명 보유 지분 3.46%의 절반인 1.73%를 매각했다. 이로써 삼성생명의 총수 일가의 지분율은 20.82%에서 19.09%로 감소,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 규제대상에서 벗어나게 됐다. 삼성생명의 총수일가 보유 지분은 이재용 부회장이 10.44%,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6.92%, 이서현 이사장이 1.73% 등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도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 그룹에 매각했다. 정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은 23.29%에서 19.99%로 낮아지고, 정 명예회장의 지분율은 0%가 됐다. 현대글로비스와 그 자회사인 지마린서비스도 사익편취 규제를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같은 대응이 MSCI ESG 평가에서 등급상향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공정거래법의 강화된 재벌규제를 피하는 효과만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ESG투자를 주도하는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한국 정부의 ESG정책은 글로벌스탠다드에 대해 효과적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취약한 것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삼성전자가 KCGS보다 MSCI평가에서 더 높은 등급을 받는 '모건스탠리의 역설'을 깨려면, 정부의 기업정책과 ESG가이드라인이 변해야 한다. 재벌규제라는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의 큰 흐름에 올라타 이니셔티브를 행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