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종의 공군(空軍) 이야기 (60)] 공작사 방공포병처 선임장교 시절, 방포사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1.12.17 14:22 ㅣ 수정 : 2021.12.17 14:22

방포사가 '우물안 개구리'라면 공작사는 '드넓은 태평양'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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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방포사와 공작사는 같은 기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 필자는 공작사에 부임하여 사령관에게 보직신고를 마치고 차하급 상관 및 타 부서장들에게 인사를 하며 업무준비를 하였다. 같은 기지 내에 있지만 방포사와 공작사의 분위기는 하늘과 땅 차이다.

 

방포사는 어딘가 모르게 경직되어 있고 무거운 분위기인 반면, 공작사는 공군의 원래 이미지와 같이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물론 업무에 들어가면 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하지만. (방포사는 공작사의 예하부대이다.)

 

필자의 임무는 방공포병처(이하 방포처) 선임장교로서 총괄업무를 겸해서 했다. 공작사 방포처의 업무는 현행 방공포병작전 업무와 한미 연합 방공포병 작전 업무가 주업무인데, 필자는 지난해에 방포사 작전처장을 수행했고 또 몇 년 전에는 연합사에서 방공처 부처장(한측 처장)을 했던 터라 비교적 수월하게 업무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해에는 대령 진급에 대한 부담이 있었지만 업무 자체는 매우 즐겁게 수행할 수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상식이 통하는 공작사의 업무 분위기와 미 7공군 및 주한미군 방공포병 부대와의 연합 업무, 그리고 비행단과 방포사의 방공포병 전력 운영에 대한 각종 규정을 현실에 맞게 검토 및 수정하여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업무를 소신껏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필자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던 것인데, 방포사가 우물안 개구리라면 공작사는 드넓은 태평양 같은 곳이었다.

 

또한 방포처는 매우 훌륭한 장교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필자로서는 업무에 있어서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더욱이 방포처장(대령)은 필자와 같이 ‘비행단 대공포 최초 인수요원’으로 선발되어 교육을 같이 받은 선배 장교이고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기에 업무하기가 더욱 용이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공과 사는 엄격히 구분했다.)

 

공작사 부임 후 첫 번째 연합연습은 3월 경에 실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습 기간 중에는 한미 장병들이 특정 장소에서 하루 24시간 주.야간 교대 근무하며 연습을 진행한다.

 

그런데 연습 전에 답답한 일이 발생했다. 연합 업무를 담당하는 장교(육군에서 전군한 중령)가 방포처장이 요구하는 연합업무를 수행할 수준이 못되는 것이 식별되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동안 연합업무 담당을 하고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장교가 수행해야 할 연합업무를 필자가 인계받아서 해야 했고, 필자는 연합사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첫 주에는 필자가 주간 조장으로서 연습 진행 상황을 보면서 美軍 측과 협조하여 한.미 사령관에게 보고하는 오후 브리핑 자료를 작성한 후 처장에게 보고하고, 브리핑 시간에는 한.미 사령관의 질문에 대비하여 처장 뒤에 위치하여 임무를 수행했다.

 

이때 美측은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 육군 방공포병 부대원 및 미 본토에서 증원되어 온 방공포병 부대원들이었다. (현재 패트리어트 등을 운영하는 방공포병은 한국군은 공군 소속이지만 미군은 육군 소속이다.)

 

이들과는 연습 시작 전부터 친해져서 긴밀하게 업무협조를 하였는데, 필자가 연합사에서 같이 근무했던 미 육군 방공포병 장교들을 그들도 알고 있었기에 동료 의식을 가지고 친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필자가 연합사에서 미 육군 E 모 대령을 상관으로 모시고 있었다고 하니까 어느 미군 중령이 말하기를 ‘E 모 대령은 내가 위관장교 시절 나의 대대장님이었다. 무척 존경하는 분이다.’라 하고, 어느 장교는 ‘E모 대령이 자기 옆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런 정도이니 필자와 미군 장교들 간의 긴밀한 유대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주간조 임무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처장이 필자에게 불만을 표시한다. ‘무슨 일입니까?’ 하고 질문했더니, 아침에 한미 사령관에게 보고하는 자료가 매우 불량하다(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아침 브리핑 자료는 야간조가 작성해야 하는 임무인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대략 상황을 눈치챘다.

 

야간조장은 앞서 언급한 원래의 연합 담당 장교이며, 이 장교는 영어 구사 능력은 물론이고 미측과의 업무협조 및 방공포병 연합작전에 관한 보고자료를 만들고 감독하는 능력이 부족한 관계로 처장 마음에 드는 수준 높은 보고서를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날 새벽에 일찍 연습 장소로 가서 그 장교 대신에 아침보고자료를 종합하고 정리하여 처장이 원하는 수준의 보고서를 작성해서 처장에게 보고했다. 이렇게 하여 필자는 약 2주간의 연습기간 동안 최소한의 휴식만 취하고 주야간 연습 조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비록 몸은 피곤하였지만 필자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게 되어 매우 유쾌한 상태에서 연습에 임할 수 있었다.

 

연합 연습 이외에도 공작사 방포처에는 보람있고 흥미로운 업무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방공포병 작전에 관련된 각종 작계, 예규, 규정 등을 검토하여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심층 검토 후에 현실에 맞게 개정안을 작성하여 공작사령관에게 보고후 승인을 받아 예하 부대에 수정지시를 하달하는 것이었다.

 

이는 작전 환경이 변함에 따라 각종 작계, 예규, 규정 등에 수정 요소가 발생하는데 실무부대에서는 이에 대한 수정요구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애로사항을 잘 파악하여 수정지시 하는 것도 공작사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데, 이러한 종류의 업무는 예하부대의 애로사항 해결이라는 뿌듯한 면도 있지만 결국은 ‘공작사 전력의 전투력 발휘 극대화’라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자부심에 그 업무가 비록 시간이 소요되고 힘들더라도 그 성취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시간은 흘러 여름이 되었고 을지연습 기간이 돌아왔다. 지난 봄에 증원되었던 미 육군 방공포병 부대원 대부분이 다시 한국에 전개하여 연합 연습에 임하였고, 필자는 봄의 연합 연습에 이어 을지연습 때에도 연습조장으로서 주야간을 넘나들며 임무를 수행했다. 을지연습이 끝나갈 즈음해서 어느 미군 중령이 필자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금년 가을에 당신이 꼭 대령으로 진급하기를 기원한다.’라고. ‘나도 좋은 소식을 들려주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 해에 한국에 증원되었던 미 육군 방공포병 장교(중령) 중에는 몇 년 후에 필자가 합참 방공작전과장(대령)으로 근무할 당시에 연합사 방공처장(대령)으로 부임한 장교가 있었다. 서로 반갑게 해후했음은 물론이고 이후 그 장교와 필자는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며 한미 방공포병의 전투력 극대화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 장교는 현재까지도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 여단장, 前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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