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ESG 전문가 문성후·현석 (하)] “미국과 EU의 ESG기본법을 참고하라”
임종우 기자 입력 : 2021.11.24 07:00 ㅣ 수정 : 2021.11.24 07:00
국회에 97개 ESG관련법 계류 중, 정부가 기본법 제정해 ‘큰 그림’ 그려줘야 / “‘CSO’를 사내 배치하지 않으면 ‘중대재해처벌법’ 등의 변화에 대한 효율적 대처 어려워
[뉴스투데이=인터뷰 이태희 편집인 / 정리 임종우 기자] “ESG는 국제적인 흐름이다. 결국 국제적인 ESG 경영의 판세와 입법 방향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국내 97개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있는데, 미국이나 유럽처럼 ‘ESG기본법’이나 ‘입법 체계도’가 없으면 ESG의 ‘큰 그림’을 보기가 어렵다. 기본적인 법안의 틀이 없으면 법안이 몇 개가 있든 국민적인 공감을 이끌기 어렵고, 기업들도 계속해서 혼란을 겪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들이 ‘최고지속가능책임자(CSO)’를 육성하지 않는 현실은 우려가 크다. ‘경영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의 사례처럼 기업 내부에 직접적으로 CSO를 양성하고 실제로 권한과 책임을 주어야 향후 있을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 '한국형 ESG'는 국제적인 흐름을 읽고 있는가?
문성후 한국ESG학회 부회장(현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초빙대우교수)와 현석 연세대학교 환경금융대학원 교수는 ESG인재 양성과 관련, 이처럼 국제적인 ESG 입법의 흐름을 파악할 것을 강조했다.
문 부회장은 “ESG는 국제적인 대세이기 때문에, 해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ESG경영을 반드시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만일 국내에서 추진되는 ESG 공시 관련 입법이나 'K택소노미' 등의 분류체계가 글로벌 추세를 읽지 않고 ‘독자적인’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국내와 해외의 ESG경영 간의 괴리가 생길 우려가 있다"며 "그렇게 된다면 국내 기업은 분명 ‘ESG 경영’을 하고 있지만, 국제적인 기준과 맞지 않기 때문에 해외 자본 유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는 ESG의 개념이 상당히 퍼져 있으니, 이제는 입법을 체계화해야 할 차례"라며 “해외 ESG의 주요 지역인 유럽연합(EU)와 미국의 법안을 참고 삼아서 국내 실정에 맞는 ‘ESG 입법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렇다면 글로벌 ESG의 주축이 되는 두 지역의 ESG 법안은 어떤 시스템을 추구할까. 문 부회장은 "미국은 ‘투자자 보호(Investor Protection)’를, 유럽연합(EU)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법안의 제목으로 설정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6월에 ESG 관련 법안이 미국에서 하원을 통과했는데, 그 법안의 제목에 ‘투자자 보호’가 들어간다”고 밝혔다.
문 부회장이 예시로 든 법안은, 올해 미국 하원을 통과한 ‘H.R. 1187’이다. 법안의 제목은 ‘기업 거버넌스 개선 및 투자자 보호법안(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 and Investor Protection Act)’으로, 제목에 ‘투자자 보호(Investor Protection)’가 포함된다. 문 부회장은 “해당 법안에는 ‘ESG 공시 간소화법’과 ‘기후 리스크 공시법’ 등을 포함하고 있다”고 밝혔다.
EU의 입법 흐름은 미국과 약간 결이 다르다.
문 부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EU의 분류체계 규정(Regulation (EU) 2020/852)의 명칭은 ‘지속가능 재정 분류법(Sustainable finance taxonomy)’이다. 또한, 그보다 앞선 지난해 4월에 제안된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 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과 지난해 3월에 시행된 ’지속가능금융 공시 규정(SFDR, 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 Regulation)‘에도 ’지속가능한(Sustainable)‘ 혹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가 계속해서 포함되고 있다.
문 부회장은, “둘의 방향성은 달라도 결국 각자의 일관적인 ‘큰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ESG 시스템 구축에 진척이 있는 것”이며 "우리도 나름대로 결과적인 방향을 만들어서 입법을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 문 부회장의 저서 '부를 부르는 ESG', "정부가 정리된 ESG 정책 메시지를 발신해야"
미국이나 EU등에 비해 우리 정부는 상대적으로 방향성 자체를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 부회장의 지적이다.
자신의 저서인 ‘부를 부르는 ESG(플랜비디자인 刊)’에서도 국내의 ESG에 대한 여론과 정부 간의 갈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 책에 따르면, 한국의 ESG 정책은 분야별로 갈등의 크기가 다르다. 특히 환경(E) 분야에서 여론과 정부 간의 간격이 가장 크다.
우리 정부는 탄소국경세 등과 같은 해외 국가들의 기후 변화 대응 요구를 국내기업의 위기로 간주하면서 동시에 ‘그린 뉴딜’, ‘녹색 성장’ 등의 이름을 내걸고 경제계획을 발표한다. 때문에 정부가 말하는 기후 변화 대응이 위협인지 아니면 기회인지 혼동된다는 의견이 있다고 지적했다.
문 부회장은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ESG에 대한 이견을 통합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라며, “정부는 이해관계자들에게 통합적으로 조정되고 정리된 ESG 정책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 문 부회장, "국내 ESG 관련법은 너무 '개별적'… 'ESG 기본법' 등 제정해서 기본적인 틀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적"
문 부회장은 “EU같은 경우에는 ESG 전문가 집단이 있고, 홍콩이나 싱가포르는 금융 허브이기 때문에 ‘ESG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용이하다”며 “근데 국내에서는 통일된 지침 없이 각 정부 부처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집단 지성’이 작동하지 않아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 부회장은 “국내 97개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있는데, 법안이 몇 개가 있든 미국이나 EU처럼 'ESG 기본법'이나 ‘입법 체계도’가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ESG 개별법들이 의원 발의로 논의되니 정리된 메시지를 통한 ‘큰 그림’을 보여주지 못한다”며 “그래서 국민적인 공감을 얻기 힘들고, 기업들도 헷갈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ESG기본법’ 같은 것을 만들어서 거기에 ‘탄소중립법’ 같은 법을 편입시키는 방식 등을 통해 정리된 ‘입법 체계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문 부회장, "글로벌 흐름 감안하면 한국 기업도 C(Chief)레벨의 ESG인재 '사내에 직접' 배치해야"
문 부회장은 “이제 각 기업은 내부에 ESG 관련 부서를 만들고, 거기에 사람을 배치해서 지금부터 ‘ESG’에 대한 학습을 시켜 향후 있을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며 “지금은 CEO와 ESG팀장이 직접 교류하는데, 빨리 ‘C레벨’ 수준의 ESG 인재를 배치해야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ESG경영과 입법 흐름을 감안할 때, 국내 기업들도 CSO(최고지속가능책임자)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제안인 것이다.
■ 올해 3월 기준 미국 상장 기업 중 CSO 임명한 기업은 95개 / 듀폰사는 2004년 세계 최초로 린다 피셔 전 미국 환경보호청 부청장을 CSO로 임명
문 부회장의 이 같은 조언은 글로벌 ESG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의 CSO 현황을 살펴보면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21년 3월 기준, 미국의 상장 기업 중 ’CSO’ 직책을 배치 중인 기업은 총 95개다.
지속가능경영 리쿠르팅 기업인 ‘와인렙 그룹(Weinreb Group)’이 발간한 보고서인 ‘The Chief Sustainability Officer(CSO) 10 Years Later’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20년까지 CSO를 임명했던 미국 기업 총 124개 중, 25%인 31개 기업이 지난해에 처음으로 CSO를 임명했다.
2004년 최초로 CSO를 임명한 기업은 라이터로 유명한 미국의 ‘듀폰’이다. 듀폰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 환경보호청의 부청장으로 재직했던 ‘린다 피셔(Linda Fisher)’를 세계 최초의 CSO로 임명했으며, 이후 2016년 2월까지 총 11년 8개월간 듀폰의 CSO로 활동하였다.
린다 피셔는 CSO로 재직할 당시, 듀폰이 추진했던 기업 인수 사업에 대해 지속가능한 사업이 아니라는 평가를 내리며 해당 사업 취소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친 적이 있다.
한 기업에서 8년 이상 CSO 직책으로 근속한 임원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총 14개 기업이다. 21년 3월 기준으로 재직중인 CSO 중 한 회사에 가장 오래 근속한 CSO는 ‘프랭크 오브라이언-버니니(Frank O'Brien-Bernini)’로, 글로벌 건축자재 제조기업 ‘오웬스코닝(Owens Corning)’에 재직한지 15년차가 됐다.
■ 현 교수 앞으로는 "녹색금융을 담당할 '최고지속가능재무책임자(Chief Sustainable Finance Officer)'도 필요"
자본 배분이라는 역할의 중요성과 CSO의 기존 역할을 감안하여 CSO 이외에 '최고지속가능재무책임자(Chief Sustainable Finance Officer)'를 임명하는 기관도 늘어나고 있다.
CSO와 CSFO의 임무는 상호 보완적이다. CSO와 CSFO 모두 지속가능성을 기업에 중요한 전략으로 확립하고, 그 전략을 실시해 나가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재구축하는 것이 주요 역할이다.
그러나 CSFO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지속가능한 금융을 실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에너지 시장이 기존의 '브라운(brown)'에서 친환경적인 '그린(green)'으로 옮겨가면서 상당한 자본의 재분배가 일어나고 있는 것 등이다.
은행, 보험사 및 자산운용사 모두 이런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관련 인프라와 데이터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일본 금융청(FSA)도 이런 흐름을 반영하여 2019년에 지속가능한 금융 추진에 관한 기획 및 입안에 참여하고 관계 업무에 필요한 조정을 담당하는 CSFO를 임명하였다.
현 교수는 “CSO의 임무는 계속 진화할 것으로 예상되며, CFO·CRO 및 CEO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위 책임자에게 지속가능성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요구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 미국 기업 CSO 중 52%는 ‘기업·정부·환경·공동체·법률 등’ 겸직 / 문 부회장, “내년부터 CSO 적극적으로 설치해야 ESG 인재대란 피할 것”
한가지 더 특이한 사실은, ‘21년 3월 기준으로 CSO들중 ’단독‘으로 CSO를 맡고 있는 비율은 48%이며, 나머지 52%는 CSO를 포함한 두 세 가지의 직책을 겸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겸직 CSO 중 약 25%는 △기업(Corporate) △정부(Government) △환경(Environmental) △공동체(Community)에 관련된 보직을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16%의 CSO는 법률(Legal)에 관한 직책을 맡고 있고, 4%는 회사의 비서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ESG’를 겸직하는 CSO의 비율이 4%라는 것인데, 이 비율이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4%의 CSO는 △다양성(Diversity role) △형평성(Equity) △포괄성(Inclusion) △소속감(Belonging) 등의 ‘비재무적’ 요소를 담당하고 있다.
CSO가 겸직하는 역할을 봤을 때, 앞서 두 사람이 말했듯 CSO가 맡을 역할은 단순히 ‘지속가능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정부 등 ‘재무적’ 관점도 조율해야 한다. 또한 앞으로 ESG경영이 이어져 사업상의 ‘비재무적’ 요소의 비율이 늘어난다면, CSO가 담당해야 할 분야는 계속해서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부회장과 현 교수 모두 “기업은 ESG 조직을 명시적으로 설치해서 전문인력을 키우고, 국가는 ESG 입법 체계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이제 기업들이 단순히 협약식 등으로 ‘선언’하는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기업들이 다가오는 2022년부터는 ESG의 최고책임자인 ‘CSO’를 적극적으로 임명해야 향후 있을 ESG 인재 대란에서 안전할 수 있다”라고 관측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