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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의 공군(空軍) 이야기 (59)

방포사 작전처장 시절, 고군분투하며 온갖 인간군상 겪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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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1.11.23 09:12 ㅣ 수정 : 2021.11.23 09:12

작전부장 등 직속상관이 공군본부로 차출돼...업무에 어려움 겪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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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 예비역 공군준장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연말에 즈음하여 방포사 작전처장으로 부임하였다. 방포사 작전처 업무는 전에 근무하였던 연합사 작전부(방공처)나 방포사 작전통제부(현행작전)의 업무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기에 처음 며칠 간은 업무 파악에 주력하였다.

 

이제까지 어떤 업무를 해왔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업무를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가운데 몇 주가 금방 지나갔다. 돌이켜보면 작전처장으로 근무했던 1년은 수많은 외적에 둘러쌓여 지원군 없이 첩첩산중에서 홀로 전투하는 것 같은 그런 시간이었다.

 

방포사는 공군으로 전군한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군 초창기와 같이 경직된 분위기였고, 당시 방포사 본부에서 근무하는 방공포병 장교의 경우 중령 이상은 육공 장교가 꽤 있었으며 이들이 일종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오공 장교는 상대적으로 적었고(방공포병 이외의 타 병과는 오공 인원이 대부분이었다), 대령 진급심사를 앞두고 있던 필자에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견제가 행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거의 6개월 정도 필자가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자세한 경위는 후에 기회가 되면 얘기하겠지만 아무튼 당시 공군본부에 ‘00 TF’가 구성되면서 필자의 직속상관인 작전부장과 작전처 선임작전장교가 공군본부로 차출되었고 이에 따라 필자의 업무는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되었다.

 

방공포병사령관의 지시의도와 작전 관련 업무를 적절히 파악하여 작전처장에게 업무지시를 하고 타 부서와 업무 조정 통제를 하여야 할 작전부장이 없다 보니 필자의 소관 업무가 아닌 업무도 필자에게 할당되는 일이 가끔 있었다. 물론 그런 경우에는 참모장에게 건의하여 그 업무가 소관부서로 가도록 했지만 그런 식으로 방포사 본부에서 필자의 입지는 많이 위축되고 있었다.

 

또한 선임작전장교가 없으니 업무에 많은 제한이 발생하였다. 당시 작전처에는 병과 별로 여러 명의 장교가 있었는데, 장교 중에 필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작전처 업무를 총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장교는 선임작전장교 한명이었다. 그런데 이 장교가 없으니 필자는 매우 제한된 조건에서 업무를 수행해나가야 했다. 실로 ‘고립무원’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작전부장과 선임작전장교가 없는 가운데 필자가 악전고투한 기간 중에서 특히 힘들었던 대표적인 경우는 을지연습이었다. 연합사 및 각 구성군사 작전계획 등을 포함한 을지연습 개념은 연합사 근무를 통하여 필자의 머리속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필자로서는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을지연습 준비를 하는 동안에 필자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선임작전장교가 없다보니 필자로서는 큰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을지연습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필자는 담당 장교들을 불러서 금년도 을지연습 방향은 이런 방향으로 파악이 되니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연습을 진행하겠다고 담당 장교들에게 개략적인 교육 및 지침을 주었고, 각종 작전계획을공부하라는 말과 함께 구체적인 보고서(주로 PPT 파일) 작성 양식 및 방향도 제시해 주었다.

 

을지연습 1~2주 전에는 연습 기간 중 매일 아침에 사령관에게 보고하는 상황보고 양식(PPT)도 자세하게 지정해 주었다. 상황보고 양식은 전개되는 연습 상황에 따라서 융통성 있게 작성할 수 있도록 거의 빈칸 채우기 수준으로 작성해 주었는데, 선임작전장교를 대신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어느 장교의 경우에는 이를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하였다.

 

작전처에 근무하는 장교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각종 ‘작전계획’ 공부를 그때 하고 있었으니... 마치 처장이 작성한 보고서 초안을 작전장교가 검토하는 듯한 황당한 상황이 된 것이었다. 이때부터 을지연습은 필자에게 악몽으로 변했다. 을지연습 기간 중 필자는 전체적인 을지연습을 진행하랴 실무자가 해야 할 업무도 수행하랴 수면 부족은 물론이고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바쁜 일과를 계속해야 했다.

 

이런 근무형태는 초가을까지 지속되었고, 본부에 구성되었던 ‘00 TF’가 종료되고 작전부장과 선임작전장교가 방포사로 복귀했을 때에는 그해의 주요 업무가 마무리되던 시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진급심사 시기가 다가왔다. 그런데 중령 진급 이후 그렇게 열심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건만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가 않음을 느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작전처장으로 근무했던 1년은 수많은 외적에 둘러쌓여 지원군 없이 홀로 전투하는 듯한 그런 시간이었는데, 특히 그해는 주위에서 필자에게 이런저런 시비가 많이 있었고, 게다가 신사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장교들이 더러 있었다. 중령 진급 심사 때와는 또 다른 상황이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몰려드는 가운데 진급심사 일정은 다가오고 있었다.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어느 가을날, 진급심사 결과가 발표되었고 필자는 대령 진급심사에서 누락되었다. 진급심사 결과를 듣는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실망한 아내의 모습이었다.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다.

 

진급대상자 발표가 있던 날 저녁, 방포사령관은 방포사 내의 진급 누락자들에게 격려 회식을 베풀어주었다. 그러나 진급 탈락자들에게 위로 회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필자는 다음날부터 심기일전하여 업무에 매진하였다.

 

그런데, 대령 진급에 누락되자 희한한 일들이 벌어졌다. 즉, 평소에 필자가 그렇게 아끼고 믿었던 후배 장교 일부가 필자를 무시하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작전처 내의 막내 장교까지 필자의 지시에 불복하고 대드는 상황까지 발생하였다. 그런 장교는 정당한 지시사항에 대한 불이행 및 상관 모욕죄로 헌병대에 통보하여야 마땅하나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헌병대에 통보할 가치도 못느꼈다. 세상인심이 그렇다고는 들었는데, 막상 필자가 그런 경우를 당하고 보니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에 듣기로는 그 당시 방포사에서는 ‘필자의 상위 계급 진출은 끝났다’고 소문이 났다고 한다. 소문의 진원지야 대략 짐작이 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후배 장교들이 그런 행동을 하다니! 그런 행동을 한 후배 장교들의 경박스러움이 안타까웠다. 그들 중 일부는 그 다음해에 필자가 대령 진급 예정자로 발표되자 즉시 찾아와서 사과하는 후배 장교도 있었고, 일부는 필자가 장군이 되었을 때까지도 나타나지 못한 장교도 있었다.

 

연말이 되어서 필자는 방포사 작전처장 임무를 마치고 공군 작전사령부(이하 공작사) 방공포병처 선임장교로 부임하게 되었다.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 여단장, 前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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