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이바, 전략무기 부품 제작에 비정상 탄소섬유 사용 의혹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탄소섬유 관련 없는 회사 통해 구매 후 방산부품 제작에 일부 사용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해 5월 한국화이바 창업자인 조용준(88세) 전 회장이 회사 돈 80여억원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며 창원지검 밀양지청에 자수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그동안 검찰에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최근 자수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새로운 비위 사실이 검찰에 제출되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당시 조씨에 따르면, 한국화이바는 2010년 초부터 무기 부품 제작에 필요한 전략물자인 T700 및 T800 탄소섬유를 해외에서 구매하는 과정에 특정업체와 짜고 시장가격보다 높게 구매한 후 그 차액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원가를 인정해주는 방위산업의 특수성을 이용한 이런 방법으로 조씨는 수차례에 걸쳐 거액을 횡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 내막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한국화이바가 해외에서 구매한 T700 및 T800 탄소섬유는 비정상적인 유통경로로 구입하여 품질을 보증할 수 없는 것”이라며 “이런 탄소섬유로 제작된 방산부품은 성능 불량을 유발하여 설계 압력 이하에서 폭발로 이어질 위험이 상당하므로 성능을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화이바는 2012년부터 약 4년간 N사를 통해 약 100톤의 T700 및 T800 탄소섬유를 해외에서 구매했고, 이 가운데 20여톤을 이미 방산부품 제작에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N사는 한국화이바에 차량부품을 납품하던 회사로 탄소섬유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회사여서 정상적으로 해외에서 구매할 협상력이나 조달 능력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 Lot 번호 통해 성능·시효기간 확인 가능하나 기재부분 훼손된 듯
T700 및 T800 탄소섬유는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 T사 제품이다. 그런데 T사는 그 기간에 100톤 가까운 양을 한국화이바에 수출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한국화이바가 구매한 탄소섬유는 T사 제품이 아니거나 T사가 다른 곳에 수출한 시효기간 만료 제품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탄소섬유가 감겨진 실타래별로 이력을 추적할 수 있는 Lot 번호가 기재돼 있으니 이를 확인하면 된다.
그러나 웬일인지 한국화이바가 구매한 탄소섬유 실타래들은 Lot 번호가 기재된 부분이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Lot번호를 모르면 성능을 증명할 수 없는데다, 시효기간 만료 여부도 알 수 없다고 한다. 2012년 당시 탄소섬유의 국제 시세는 T800 탄소섬유가 ㎏당 약 5만원이었는데, 한국화이바는 ㎏당 20만원 정도에 구매한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2012년부터 2015년에 걸쳐 구매한 약 100톤의 탄소섬유는 실제 개발에 필요한 양보다 지나치게 많았고, 결국 70여톤 정도는 사용하지 못했다. 탄소섬유의 시효기간이 2년이어서 계속 사용은 어렵지만 한국화이바는 아직 남은 양을 보관 중이며, 이로 인해 2017년과 2018년 회계 결산 시 재무재표에서 80여억원을 손실 처리했다.
■ 한국화이바 “정상제품 구매했다” 반박…관련기관 조사해 사실 밝혀야
진짜 문제는 품질에 의문이 제기된 탄소섬유로 전략무기 제조에 들어가는 방산부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 부품을 사용한 전략무기는 양산 이후 실제 사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탄소섬유 전문가들은 실제 사격을 통해 확인하기 이전에는 비정상적인 탄소섬유로 만든 부품이 들어간 전략무기의 문제점이 노출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기자가 한국화이바 조영길 방산사업본부장에게 전화하여 ‘품질을 보장할 수 없는 탄소섬유를 T사가 아닌 곳에서 비싸게 구입해 사용했다는 제보가 있다’고 문의하자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T사의 정상제품을 구매했으며, 비싸게 구입한 이유는 내 소관이 아니라 모른다”라고 답했다. 또 많은 양 구입에 대해서는 “사업내용을 알 수 없어 과거 경험을 토대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화이바가 전략무기 분야에서 장기간 독점적 지위를 유지함으로써 생긴 부작용이라고 주장한다. 즉 경쟁 회사가 없으니 정부에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구조란 얘기다. 이를 빌미로 정부에 고가로 부품을 납품해 국고 손실을 초래하는가 하면, 성능이 입증되지 않은 소재 사용으로 전략무기 성능에 영향을 미쳐 국가안보까지 위태롭게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관련 기관은 지금이라도 자체 조사를 통해 한국화이바가 보관 중인 탄소섬유의 제품성적서와 Lot 번호 등을 확인해 정상 제품 여부부터 가려야 한다. 만일 품질이 보장되지 않은 탄소섬유로 부품을 제작한 사실이 드러나면 검찰에 고발하고 생산된 전략무기의 상태도 면밀히 점검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하며, 차제에 산업 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는 사업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