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후의 ESG 칼럼] ESG, 신발 끈 풀 때가 아니다

문성후 교수 입력 : 2021.10.29 09:02 ㅣ 수정 : 2021.10.29 09:02

팬데믹이 지나가면 ESG 기대수준은 높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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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문성후 한국ESG학회 부회장] UN이 1990년경부터 기후변화를 외치고, 각국에 인식을 제고한 덕분에 기후변화를 둘러싼 리더십은 서구사회에서는 일찍부터 형성되었다.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서구 선진국들은 선택적으로 기후변화 리더십을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교토 프로토콜’이었고, 이 역시 주도권 다툼의 산물이 되어 결국 제 역할을 못 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기후변화를 포함하는 ESG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인권 보호와 환경 보전을 비롯한 ESG 가치가 냉전 시대의 선과 악을 대체하는 개념으로 국제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외국 기업들은 국가 정책에 대비해야 했고, 국가는 냉정한 국제 경쟁 속에서 자국의 기업들에 다가올 엄격한 국제 질서를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정부와 기업은 혼연일체가 되어 ESG 생태계를 구축해왔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한국의 ESG는 경영적 측면보다 착한 기업이라는 개념으로 먼저 다가왔고, 글로벌 투자자들이나 연기금의 셈법은 아직은 먼 얘기로 들려왔다. 교토 프로토콜 시대 부속서 상 개도국에 속했던 한국인지라 기후 대응도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 ESG가 심지어 도덕적 가치 내지는 CSR과 같은 기부행위로 오해되기도 했다. ESG라는 개념이 한국에 도입되어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다소의 분장(扮裝)도 필요했다. 결국 한국에서는 ESG에 도덕적 가치가 과다 주입되면서 낭만적이고, 온화하게 포장되었다. 

 

정부도 ESG에 대해 초기에 충분히 안내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ESG는 단 1년 만에 우리 경제 깊숙이 파고들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말이다. ESG가 반영된 국제 협약이 개별기업의 경영에 영향을 주리라고는 한국 기업들은 상상도 못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은 자발적 감축 목표를 각 국가에 제출하게 했고, 우리 기업들은 국가의 감축 총량 속에서 자사의 기여분을 계산하며 수익과 직결해서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떤 에너지 정책이 옳은지 COP를 코앞에 두고도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팬데믹 속에서 우리는 방심했다. 시대가 바뀐 것을 몰랐다.  

 

ESG 경영은 원래 매우 독하다. 글로벌 기업들은 ESG 때문에 혼이 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노출(exposure)이 큰 만큼, 그 영향도 그대로 받고 있다. 해외의 정부들은 어떤가? 각국은 경쟁적으로 ESG 입법을 하고 있다. 미국, 영국, EU 모두 더욱 정교하고, 더욱 강력하게 ESG 법률들을 만들고 있다. 물론 기업의 자율성은 침해하지 않되, 이해관계자들에게 최대한 투명하도록 기업에게 요구하고 있다. ESG를 연구하다 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가 ‘공시(disclosure)’와 ‘보고(reporting)’일 정도다.

 

그런데 필자가 최근 국내 산업 현장에서 많이 느끼는 점은 벌써 ESG에 대해 기업들이, 기관들이 진부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ESG는 워낙 여러 지식과 정보가 넘쳐 이제는 새로운 경영 사조로 보이지도 않으니 더 그렇다. 학생이 공부 잘하고 모범생이어야 하는 것처럼, 운동선수가 운동 잘하고 자기관리 잘해야 하는 것처럼 기업에게 ESG는 당연해졌다. 여기에 ESG 전문가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논문 하나 ESG와 관련되어 쓴 적도 없고, 실무경험 1년도 없으면서 서로 ESG 전문가를 자청하고 있다. ESG 단어 세 개만 놓고 보면 개념적으로 ESG는 어렵지 않다. 얼핏 보면 실행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한번 냉정하게 따져 보자. CEO가 ESG가 무언지 알았다고 해서, ESG 조직이 있고, 지속가능보고서를 낸다고 해서 ESG가 다 된 것일까? ESG가 그렇게 만만할까?

 

ESG에 대한 국내 기업의 입장은 크게 세 가지로 보인다. 기업이 꼭 해야 하는 ‘필수 요소’, 시장에서 논의가 없어져야 할 ‘위험 요소’, 자기와는 상관없는 ‘부가 요소’로 말이다. 어차피 맞닥뜨릴 위험인데도 우리는 일시적인 현상이라 믿고 싶은 면도 있을 것이다. ESG란 ‘필수적인데 위험한 경영 요소’다. ESG를 시작하려면 돈이 들고, 문화와 의식이 바뀌어야 하고, 내외부적으로 돌봐야 할 이슈도 많이 생기며 소송이나 분쟁에 순식간에 휘말릴 확률도 높아진다. 기업도 ESG를 잘해서 이익을 보는 것보다, ESG를 잘하지 못해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더 많아 질 것이다. 그래서 ESG는 리스크로 시작된다. 그 위험을 기업이 제쳐야 뒤에 있던 기회가 손을 내민다.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는 거기까지 못 갔다.

 

팬데믹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국내 기업들은 고용과 성장을 간신히 유지해왔다. 그 와중에 팬데믹의 종료를 알리는 서막처럼 ESG가 우리 시장으로 오버랩되어 들어왔다. 숨돌릴 틈도 없이 글로벌 ESG 스탠다드가 로컬 스탠다드로 전환되고 있다. 앓아누웠던 환자보고 앉을 틈도 없이 일어나서 뛰라는 격이다.  ‘4차 산업혁명’ 개념은 2010년경부터 팬데믹 전까지 10여 년간 화두가 되어 왔다. 2019년 ESG가 등장했다. ESG가 오래갈까? ESG는 역사가 길다.

 

2004년 UN 보고서에 등장해서 약 20년 동안 계속 연마되어왔다. ESG 개념은 그 버텨온 시간만큼 앞으로 유지되고 확장될 것이다. 그러니 국내 기업들은 ESG가 진부하다고, 많이 안다고 벌써 자만해서는 안 된다. ESG는 정지된 개념이 아니다. 우리는 정상적인 경영환경의 ESG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팬데믹이 지나가면 ESG 기대 수준은 더 높아질 것이다. 본격적인 ESG는 2022년부터 시작이다. 깊이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에는 방심하면 안 된다. 

 

◀문성후 교수의 프로필▶'한국ESG학회 부회장, 미국변호사(뉴욕주), 경영학박사, 숙명여대 SBS 초빙대우교수, '부를 부르는 ESG'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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