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법령 자문기구'에서 유리한 해석받은 '삼성생명', 향후 전망은
[뉴스투데이=고은하 기자] 최근 삼성생명 제재안이 금융위원회에서 장기간 지체되고 있어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가운데 금융위원회의 자문기구가 삼성생명과 관련해 유리한 해석을 내놓아 파장이 일고 있다.
13일 금융시민단체와 금융업권에 따르면 지난 8일 금융위 법령해석심의위원회는 보험사가 계열사와 관련 계약 이행 지연 배상금을 청구하지 않은 행위를 보험업법에서 금지한 계열사에 대한 '자산의 무상 양도'가 아니라고 결론내린 바 있다.
앞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6일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15년 삼성생명이 삼성SDS로부터 ERP 시스템 도입 지연에 따른 150억원에 이르는 배상금을 받지 않은 것은 명백한 계열사 부당지원이라며 금융감독원이 중징계를 의결했음에도 불구하고 10개월이 다 되도록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금융위가 결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2015년 삼성생명은 ERP 시스템 도입을 위해 계열사인 삼성SDS와 1561억원 규모의 용역을 체결했는데, 기한은 2017년 4월 30일이었다. 하지만 반년 가량 지연돼 2017년 10월에 완성됐다.
따라서, 삼성SDS가 시스템 구축기간 지연에 대한 지연배상금을 삼성생명에 지불해야 했지만 삼성생명은 150억원으로 추정되는 지연배상금을 청구하지 않았다.
이에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계열사 부당지원으로 판단하여 삼성생명에 대해 중징계 ‘기관경고’를 의결했다.
이용우 의원은 “받기로 한 돈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대방을 지원한 것”이라며 대주주나 특수관계인에게 자산을 무상으로 양도하는 행위 즉, 금전적 지원을 하는 행위 또는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보험업법 제111조를 들어 “삼성생명 역시 계열사인 삼성SDS를 부당하게 지원한 것”이라고 밝혔다.
보험업법 제111조(대주주와의 거래제한 등)에 따르면 보험회사는 직접 또는 간접으로 그 보험회사의 대주주(그의 특수관계인인 보험회사의 자회사는 제외한다. 이하 이 항에서 같다)와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고 기술돼 있다.
또 자산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무상으로 양도하거나 일반적인 거래 조건에 비춰 해당 보험회사에 뚜렷하게 불리한 조건으로 자산에 대해 매매와 교환, 신용공여 또는 재보험계약을 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앞서,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이슈가 있었다. 당시 삼성생명은 삼성생명공익재단에 해마다 수백억원씩 기부한 바 있다. 문제는 그러한 행위는 보험업법 위반에 해당한다. 자산의 무상양도금지 위반이기 때문에 기부를 중단한 바 있다.
이용우 의원은 “삼성생명공익재단 기부 문제가 있던 당시 제대로 된 징계없이 사건이 종결되어 삼성생명의 계열사 부당지원이 지속되는 것”이라며 “금융위가 삼성생명 봐주기라는 의혹을 벗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원의 중징계 의결에도 불구하고 10개월째 결정을 미루고 있는 이번 사안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촉구했다.
■ 금융위원회 vs 금융감독원, 갈등의 20년 史
올해 취임한 고승범 금융위원장과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두 기관이 "한몸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기조 아래 잦은 회동을 보이며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사실, 금융감독원장 수장과 금융위원장 수장이 대외적으로 갈등을 표출하지 않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표출하는 건 드문 일이다.
실제로 금감원과 금융위는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밥그릇 싸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금융위의 전신인 금융감독위원회는 1998년 4월 출범했고, 금감원은 1999년 1월 은행·보험·증권 감독원이 통합·설립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금융감독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2008년 금융위와 금감원은 분리됐다.
이 시기부터 금융위와 금감원 간 갈등이 촉발됐다. 역할과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 때문이었다. 2008년 두 기관 설립 당시 금감원 임직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금감원의 중립성과 독립성 확보를 위한 로비에 나섰다. 이에 금융위 관계자들은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며 로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2018년 5월 윤석헌 금감원장이 부임하면서 금감원과 금융위의 갈등이 수면위로 등장했다. 윤석헌 원장은 금감원의 독립성을 강조한 인물이다. 실제로 독립적인 행보에 나서기도 했다.
삼성증권 배당사고가 발생했을 당시엔 금융위와 금감원은 동일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삼성증권은 2018년 4월 6일 우리사주 배당금을 주당 1000원 대신 자사주 1000주를 지급하는 실수를 했다.
이에 따라, 지급된 자사주는 총 112조6000억원 규모였다. 일부 직원이 잘못 배당된 주식 중 501만주 가량을 급히 매도해 주가가 한때 11% 가량 급락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서 당시 금감원과 금융위의 입장은 엇갈렸다. 금감원은 삼성증권 직원들이 배당 실수를 인지한 이후에도 고의적으로 주식을 매매했다며 이 회사 직원 21명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해 금융위는 배당 실수를 인지한 이후에는 매매가 진행되지 않았다며 금감원과 다른 의견을 표출한 바 있다.
■ 향후 '삼성생명' 전망은…금융당국 양 수장의 손에 운명
따라서, 금융업권에서 발생하는 사고 및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금융당국의 입장차가 중요하다.
지난 20년간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의 양 수장은 갈등의 골이 깊었고, 사안에 대해서 다른 입장을 빈번하게 표출했다.
하지만 올해 취임한 정은보 금융감독원장과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한몸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며, 원활한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양 수장이 두 기관의 관계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배경으론 정은보 금융감독원장과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행시 28회 동기로 오랫동안 금융위에서 함께 근무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임 사무관 시절에는 재무부 국제금융국에서 함께 일을 했고, 그 후 한동안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국제금융을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정책 부서에서 일한 바 있다.
2010년에는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금융서비스국장,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2012년 금융위 사무처장을 지낼 당시에는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금융정책국장을 지냈고, 이후 사무처장직을 수행했다.
따라서, 현재까진 금융당국의 양 수장이 긴밀한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삼성생명'에 대한 제재가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6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삼성생명에 대한 '봐주기와 시간 끌기' 지적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일부러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쟁점을 보고 있다"며 "특정 회사에 대해 편견을 갖는 일이 없어 법과 원칙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삼성생명에 대한 제재 수위는 이르면 이달 중에 결정될 예정이다. 금융위는 안건소위에서 법령해석심의위원회의 해석을 기저로 삼성생명 제재안을 다시 논의하고, 이어 정례회의에서 의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