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54)] ‘탄약 대란’ 부를 탄약지환통 납품 중단 조치, 합리적 해결책 모색해야

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1.08.24 15:23 ㅣ 수정 : 2021.08.24 15:59

개발 이후 첫 생산품부터 국방규격과 달리 제조…규격 변경 미반영 가능성 높고 결함 제기된 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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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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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최초 국방규격 제정 이후 지금까지 탄약지환통을 납품해온 한 업체가 생산한 제품들의 모습. [OO산업 홈페이지 캡처]

 

감사원, 48년간 국방규격과 다른 탄약지환통 납품 사실 밝혀내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감사원이 지난 3일 공개한 ‘탄약 조달 및 관리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군은 48년간 국방규격과 다르게 제작된 ‘탄약지환통’(이하 지환통)을 납품받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지환통은 40∼105㎜ 탄약을 장기 비축하기 위해 여러 겹의 종이와 아스팔트를 적층하여 만든 탄약 보관 용기를 말한다.

 

국방규격에 따르면 지환통은 방수·방습을 위해 알루미늄포일 1개 층, 이중크라프트지 2장, 아스팔트크라프트지 1장, 아스팔트 6개 층으로 구성해야 한다. 그런데 감사원이 감사과정에서 육군 탄약사에 의뢰해 최근 5년간 납품된 지환통 31개를 모두 절개해 검사한 결과, 이중크라프트지 2장 중 1장 또는 2장이 일반판지로 대체돼 규격과 다르게 제조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런 식으로 규격에 맞지 않은 지환통이 확인된 건 2016년 1월부터 2020년 9월까지 총 58건의 완성탄 구매계약으로 납품된 제품 191만1753개(95억원 상당)이다.​ 또 감사원이 지환통을 납품한 2개 제조업체에 확인한 결과, 이들은 지환통을 국방규격대로 제조한 적이 없었다. 이 중 한 업체는 1973년 국방규격 제정 이후 첫 생산품을 납품한 곳으로 알려졌다. 

 

군은 48년간 국방규격과 일치하지 않는 지환통을 납품받으면서도 이를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한화, 풍산, 삼양화학 등 4개 완성탄 업체들은 하도급으로 납품받은 지환통에 대한 품질보증 활동을 소홀히 했고, 국방기술품질원(이하 기품원)도 적층구조 확인 내용이 빠진 보증계획서를 그대로 승인하는 등 품질보증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국방부 장관에게 지환통에 담긴 탄약에 대한 방수·방습 강화 등 보완대책을 수립하도록 하고, 방위사업청장에는 완성탄 업체에 하자보증기간(5년) 내 물량에 대해 대체 납품 요구 등의 조치와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기품원장에게는 품질보증 업무를 철저히 할 것과 관련자들에 대한 주의를 요구했다.

 

제정 규격과 첫 생산품 다르다면 개발 과정에 변경 발생 의미 

 

이와 같이 감사결과가 발표되자 대다수 언론은 군이 48년간 불량 제품을 납품받고도 몰랐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방산업계에서 이상한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주관해 지환통을 개발하고 첫 생산품부터 국방규격과 다른 제품이 생산될 수 있으며, 48년간 별다른 이상 없이 그 방식대로 계속 납품이 가능했냐는 것이다. 

 

일반적인 연구개발의 경우 설계단계 제정한 규격은 시제품 제작, 시험, 초도양산 등을 거치면서 상당히 많은 내용이 변경된다. 국방규격이 제정되던 1973년 당시에는 통상 미군의 규격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했다고 한다. 즉 최초 제정된 규격과 1975년 초도 생산품의 형상이 다르다는 것은 개발 과정에 변경사항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초도 생산품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규격과 공정으로 지환통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기품원의 군수품 품질관리기본규정에는 개발 이후 초도 생산품에 대한 품질보증에 대해 개발과정에서 완성된 기술자료 묶음에 따라 개발 품질의 양산 실현 가능성과 적합성 평가를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초도 생산품의 품질보증은 양산품 품질보증에 비해 검사항목이 매우 많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며, 당시 품질보증 규정도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초도 생산품을 최종 개발품 규격과 다르게 만든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초도 생산품부터 규격과 달랐다는 것은 이미 규격이 변경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문제 해결될 때까지 최소 수년간 탄약 납품 완전 중단될 상황

 

게다가 48년간 똑같은 방식으로 제조한 지환통이 납품됐는데 별다른 결함이 제기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감사원은 감사보고서에 지환통 내부 습기 침투로 인한 탄약 오작용 발생 사례를 3가지 제시했다. 하지만 이 사례들이 지환통 자체의 품질 문제인지 탄약보관 환경 등 다른 이유로 생긴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초 규격 제정 당시부터 지금까지 지환통을 납품해온 한 업체는 20년 이상 장기 보관한 탄약의 지환통을 정비하는 사업도 5년째 수행하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탄약사에서 지환통의 외관이 훼손되거나 상태가 나쁜 것을 정비대상으로 선정하는데, 실제로 지환통을 교체하기 위해 개봉했을 때 탄약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지환통은 48년간 불량 제품이 납품된 것이 아니라 최초 규격 제정 후 개발과정에서 변경된 사항을 반영하지 않은 행정상 문제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너무 오래된 일이고 당시 근무했던 ADD 또는 제조업체 관계자를 찾을 수 없어 사실을 정확히 규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1973년 규격에 맞게 제조하라는 요구도 합당해 보이진 않는다. 

 

감사원이 이번 감사를 통해 지환통 업체들이 그동안 국방규격과 달리 제조해온 사실을 밝혀내고 품질보증을 제대로 못한 부분을 지적한 것은 타당하다. 또 감사 결과에 따라 기품원이 업체에 납품 중단을 통보한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는 매년 군에서 필요한 탄약의 납품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완전히 중단된다는 것이다.

 

관계기관 논의 거쳐 합리적 대안 마련하고 감사원과도 협의해야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국방규격을 충족하는 지환통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없으며, 규격대로 시험해 보면 기포가 생기는 등 오히려 불량품이 나온다고 한다. 게다가 새로운 규격을 제정하려면 시험평가와 양산체계 구축에 수년이 소요된다. 향후 수년간 지환통을 사용하는  탄약의 납품이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50년 가까이 납품하면서 성능에 문제가 없었던 지환통이 감사 결과 드러난 규격 상이 문제로 인해 탄약 납품을 장기간 중단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 사태를 자기 일이 아니라며 무책임하게 방치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방위사업청, 소요군, 기품원, ADD 등 관계기관들이 모여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고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은 탄약 납품이 장기간 중단되는 사태부터 막아야 한다. 방산 전문가들은 “기존 규격에 대한 검토 결과가 나올 때까지 현재 방식의 지환통을 사용한 탄약 납품은 계획대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규격에 대한 검토 결과가 나오면 그 때 필요한 조치를 하고, 감사원과도 관계기관 논의 결과를 갖고 협의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탄약 대란’을 부를 지환통 납품 중단 조치로 초래될 안보상 공백은 없어야 한다. 또한 탄약 제조업체들의 생산라인 유지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계획된 납품은 진행하되, 차제에 미군이 발전시킨 방식을 벤치마킹해 새로운 지환통 개발을 추진한 후 국방규격을 변경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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