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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의 공군(空軍) 이야기 (52)

작전통제부서 근무① 특별한 인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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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1.07.28 16:02 ㅣ 수정 : 2021.07.28 16:02

리더십의 표상이었던 J모 중령과 '외유내강' K모 대령에게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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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 예비역 공군준장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공군사관학교 졸업 이후 J모 중령은 팬텀기 조종사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박대통령이 팬텀기 기지를 방문할 때마다 J모 중령은 대통령을 맞이하는 대열에 서 있었고, 그때마다 부대장은 대통령에게 ‘이 장교가 그 장교입니다(대통령이 공군 참모총장에게 입학 허가를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던)!’라는 보고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 하사품’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하는데, J모 중령은 이 일화 뿐만이 아니라 군 생활 전체를 보았을 때도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J모 중령은 비행장에 배치되어 있던 육군 대공포 부대가 공군으로 전군할 당시에 필자와 같이 육군 방포교에서 특기 전환 교육을 받았고, 이때부터 J모 중령은 필자에게는 생도시절 훈육관/중대장이자 같은 병과의 선배 장교로서 한편으로는 어렵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깝기도 한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근무를 하게 되었다.

 

필자는 J모 중령을 직속상관으로 모시고 근무한 적은 없다. 그러나 J모 중령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강직한 성격으로 각종 업무처리는 물론 후배들을 지도하고 배려하고 이끌어 주었다. 그런 마음과 정성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필자와 J모 중령 사이에 강한 유대감과 신뢰감을 갖게 한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가 대위 시절에 민간 대학원 위탁 교육을 가게 된 것도 J모 중령의 적극적인 배려였고, 방포사가 공군으로 전군되던 초창기, 오공 장교들이 많이 힘들어 할 때 오공장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자신감을 심어주던 장교중의 한 명이 J모 중령이었다.)

 

한편, 필자는 J모 중령의 업무 능력이나 강직한 성격을 보았을 때, 방공포병에서 장군으로 진급하여 방포사를 한층 발전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존경해 왔던 선배 장교가 대령 진급에서 누락되는 것을 보고는 필자는 답답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어느덧 J 모 중령은 전역을 하게 되었고, 필자는 J 모 중령이 전역하기 전에 전화 통화만 하고 헤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필자가 대령으로 진급한 후,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J모 중령과 연락이 되었다. 전화로 서로 안부를 물었고, J모 중령은 전역 후에 외국에 나가 생활하다가 최근에 귀국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필자의 장군 진급이 발표된 직후 서울에서 J 모 중령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J모 중령은 마치 본인이 장군으로 진급한 것같이 기뻐하고 필자를 격려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필자보다 사관학교 9년 선배인 J 모 중령과는 지금도 가끔 만나 소주 한잔 기울이면서 덕담은 물론 지난 얘기를 하고는 하는데, 아직도 당신께서 지도하던 생도들(이제는 대부분 전역했지만)을 기억하면서 공군과 방공포병의 발전을 기원하는 모습에 필자는 J모 중령이 생도대 훈육관/중대장 시절에 ‘하노버’로 불리던 때의 기상이 살아 있음을, 또 팬텀기 조종사로서의 기백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한편, 합참대 교육을 마친 필자는 차기 보직을 받을 때까지 방포사 본부에서 수 주간 대기했고, 이때 ‘대단히 특이한 대령’을 상급자로 모시고 근무를 했었다. 이 특이한 대령은 몇 년 후에 다른 부대에서 필자의 상급자로서 ‘운명적인’ 해후를 하게 되는데, 필자가 대위 시절에 오산 기지에서 모셨던 ‘그 독특한 중령’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매우 특이한(물론 부정적인 의미로) 장교였다. 이 장교와의 관계는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악몽같은 시기였는데, 자세한 얘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즈음해서 다음 보직이 결정되었다. 군번이나 기수 등을 고려시에는 차기 보직은 대대장이어야 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후방에 위치한 ‘작전통제부서’로 배치되었다. 이 또한 운명이라 생각하고, 연말에 작전통제부서로 부임하였다. (대대장 보임은 작전통제부서 근무 이후에 이루어졌다).

 

필자가 부임한 작전통제부서는 그 즈음에 신설된 부서로서 아직 전투력이나 조직력이 미흡한 상태였고, 부서원들도 절반 정도는 작전통제 경험이 없거나 있어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이들을 기초부터 교육시키고 훈련을 시키면서 작전가능 수준으로 끌어 올린 몇 개월은 개인적으로 매우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필자는 여기서 평소 존경해왔던 또 다른 선배 장교(K모 대령)를 부서장(작전통제부장, 이하 부장)으로 만나게 되었고, K모 대령과 같이 근무한 1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배운 한 해였다(K모 대령과는 꽤 오래전에 타 작전통제부서에서 1년 정도 같이 근무할 기회가 있었다).

 

육사 출신인 K모 대령은 문무를 겸비한 장교로서 후배들이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장교였다. 필자도 군사적인 지식이나 작전계획 등에 대해서는 나름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K모 대령 앞에서는 늘 고개가 숙여졌다. 예를 들어 K모 대령과 ‘00 작전계획’에 대해서 토론할 때였는데, K모 대령이 작전계획의 어느 문장 하나를 가지고 이 문장이 생겨난 배경부터 그 기대효과, 그리고 관련 작계와의 관계, (작지만) 예상되는 문제점 등을 일사천리로 설명할 때는 존경심을 금할 수 없었다.

 

K모 대령은 평소 점잖게 행동함은 물론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도 깊었고,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있었으며, 부하의 계급고하를 막론하고 늘 정중하게 대해 주었다. 이런 선배 장교를 우리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이분은 법이 보호를 해주어야 한다.” 이 말을 자칫 잘못 이해하면 K모 대령을 나약한 장교로 생각할 수 있으나 ‘외유내강’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선배장교였고, 이런 장교라면 평생을 모시고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훌륭한 선배 장교였다.

 

필자는 부임 후 반년 정도는 조별 교대 근무에 투입되었으나, 가을이 되면서 작전통제부 선임장교(중령, 작전 및 행정 업무 총괄)가 전역을 하게 됨에 따라 조별 근무를 떠나서 그 자리를 맡게 되었고, 그때부터 연말까지 부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였다.

 

작전통제부서 근무 초기 몇 개월은 소령때 근무했던 오산 기지의 작전통제부서와 같이 필자도 조별 교대근무에 투입되었다. 그 당시 근무조원(주로 초급 장교 및 부사관)의 절반 이상은 작전 통제 경험은 거의 없었으나, 하고자 하는 의욕과 열정은 매우 높았고, 이 중 몇몇은 현재 영관장교로서 방포사 내의 핵심적인 위치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 여단장, 前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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