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형이 인정한 '혁신 리더십', 휴젤 인수 통한 '바이오 진출' 시험대 올라
지난해 1월 취임해 올해로 2년 차를 맞은 허태수 GS그룹 회장이 비즈니스 모델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GS는 재계순위 8위인 기업집단이다. 에너지, 유통, 건설등 3개 핵심사업군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내실경영이 강점이지만 보수적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따라서 '패러다임 전환'은 허태수 회장의 숙명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4차산업혁명이 맞물려 글로벌 산업구조가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성장과 발전을 주도할 책임을 안고 있다. 온라인유통, 바이오 산업 진출 등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허 회장의 패러다임 전환의 현주소와 미래를 분석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보영 기자] 허창수(73) GS명예회장(전경련회장)은 2005년 취임해 2019년 연말에 물러났다. 15년 동안 매출액을 23조원에서 68조원으로 3배 가깝게 키웠다. 이런 경영실적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용퇴했다. 대신에 막내 동생인 허태수(64) GS홈쇼핑 부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추대했다.
그 뜻은 분명했다. '혁신'을 주도하라는 것이었다. 40년대생에서 60년대생으로 GS의 리더십이 이동하는 순간이었다.
허창수 명예회장은 2019년 12월 회장직 사의를 표명하면서 “지금은 글로벌 감각과 디지털 혁신 리더십을 갖춘 새로운 리더와 함께 빠르게 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해야 한다”며 “이런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우리도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는 절박함 속에서 지금이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할 적기”라고 밝혔다.
2년의 임기를 남겨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승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허태수 회장은 큰 형인 허 명예회장이 지목한 새로운 리더의 양대 덕목인 '글로벌 감각'과 '디지털 혁신 리더십'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허 회장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은 수재다. 그는 컨티넨탈은행, LG투자증권 런던 법인장, 국제금융사업부장 등을 거쳤다. GS家 3세 중에서는 유일한 ‘증권맨’이고 글로벌 경험이 풍부하다. 이후 GS홈쇼핑을 이끌면서 해외 및 모바일쇼핑 진출로 성공적인 리더십을 보여줬다.
■ GS스타일, 높은 재계 순위에 비해 신사업 진출 위한 대규모 M&A(인수합병)에는 소극적
GS는 계열사 수에서 삼성, 현대차, 포스코 등 보다 많다. 하지만 신성장동력 발굴면에서는 그동안 적극적이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8위라는 재계 순위에 비해 신산업 진출을 위한 대규모 M&A(인수합병) 및 투자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GS의 M&A 스타일은 보수적이다. 소액중심이었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10여년간 가장 큰 규모의 인수거래가 일어난 것은 지난해 12월 KB GwS 사모증권으로부터 GS파워 지분 50%(2700만주)를 7100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가장 큰 매각거래는 2016년 GS리테일이 보유했던 ‘평촌 G 스퀘어’를 매각해 약 8500억원을 확보했다. 재계 순위가 GS보다 낮은 기업들도 공격적인 조(兆)단위 M&A 거래를 체결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물론 대규모의 M&A가 기업 성장성과 수익성을 무조건 적으로 높여준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빠른 기술진보의 시대에 연구개발(R&D)만으로 신성장산업에 진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망기업을 M&A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 지난 1월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한 허 회장, 보톡스기업 '휴젤' 인수 통해 바이오시장 진출하나
허태수 회장은 취임 이후 다른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바이오’ 분야를 신성장동력으로 낙점하고 이를 주력 사업으로 키워내기 위한 허 회장의 투자행보가 눈에 띈다. 시장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기업들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GS는 벤처펀드 및 스타트업 지원 방식으로 바이오 산업 진출 기반을 다져온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GS그룹은 지난 5월 ‘더 지에스 챌린지’ 프로그램에 참여할 바이오 분야 스타트업을 모집했다. GS는 이 프로그램으로 신사업 추진을 위해 공동 협력할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육성할 예정이다. 그룹 차원에서 스타트업 발굴 및 육성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 지난해 8월 출범한 벤처투자 법인 GS퓨처스는 벤처투자 펀드를 운영하며 자회사와 시너지를 낼 기업들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허 회장이 강조한 ‘뉴투빅(New to Big)’전략과 직결돼 있다. '새로운 것'을 '주력'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GS그룹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 한 것이다.
허 회장은 지난 1월 GS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100여 명의 임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고 GS의 투자 역량을 길러 기존과 다른 비즈니스를 만드는 ‘뉴투빅(New to Big)’ 전략을 추진하자”며 ‘혁신’을 경영 화두로 제시한 바 있다.
허 회장은 바이오 진출을 위한 첫 대형 M&A 대상으로 보톡스 기업인 ‘휴젤’을 점찍은 것으로 관측된다. 일명 ‘보톡스’로 불리는 보툴리눔톡신 국내 1위 기업이다.
기존 석유대체연료 제조 중심 바이오디젤·바이오증유에서 완전히 다른 분야인 미용·의료부문에 해당하는 ‘보톡스’ 사업으로 진출하겠다는 의미다. 시장이 휴젤에 주목하는 이유는 수익 안정성과 성장성에 있다. 또 의료미용 분야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의 수요가 높아진 보톡스는 비교적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쉬운 분야다.
신세계·삼성물산, SK 등의 대기업이 휴젤 인수를 검토했으나, '높은 매각 가격'으로 인해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휴젤의 최대주주인 베인캐피탈은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44%의 가치로 2조원대를 부르고 있다.
■ 네이버 빅데이터 검색해보니 'GS 바이오' 검색량은 '0'… 바이오 진출 성공한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승부수
정확하게 말하면 GS그룹이 바이오시장에서 완전히 '초심자(novice)'는 아니다. 그러나 국내 소비자 사이의 인지도는 '제로(0)'으로 나타나고 있다.
GS그룹은 현재 GS칼텍스가 지분 100%를 보유한 계열사 ‘GS바이오’를 갖고 있다. 올해로 출범한지 12년차가 된 GS바이오는 △바이오디젤 △글리세린 △바이오중유 △보조사료 등을 주요사업으로 두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GS바이오는 2019년 매출 1046억7400만원, 64억700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은 1140억4300만원, 당기순손익은 53억400만원이다.
이처럼 GS 바이오는 1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인지도는 없다.
기자가 네이버의 검색어 트렌드 빅데이터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바이오'라는 단어와 연관되는 기업으로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꼽았다.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 GS바이오를 보유한 GS그룹과 바이오를 연관시키는 검색량은 제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허 회장이 인수를 타진하는 휴젤은 적지 않은 검색량을 보였다.
위 자료는 2020년 1월부터 2021년 7월까지 국내 대표적인 바이오기업(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과 GS바이오, 휴젤의 검색 빅데이터다.
한국인들은 ‘GS그룹’과 ‘바이오’ 사업을 연결짓지 못했다. 특히 허 회장이 지난해 1월 취임 당시 바이오 사업을 주요 신사업 부문 중 하나로 키워내겠다며 기업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빅데이터 집계 기간 내 GS 바이오 검색 비율은 ‘0’으로 나타났다.
물론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라는 거대한 바이오기업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한 수치이고 사업부문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시장에서의 우열평가로 바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허태수 회장이 휴젤 인수 등을 통해 바이오산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한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승부수를 성공시킨다는 의미를 갖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 다음 주중 휴젤 우선협상 대상자 발표될 듯...휴젤 인수하면 GS 최초의 '조 단위' M&A
물론 휴젤이 GS 품에 안길지는 아직 미지수다. 2조원대로 알려진 높은 매각가격이 걸림돌이다. 대주주인 베인캐피탈은 다음 주중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GS그룹이 추진했던 기업 인수작업이 수 차례 불발됐던 것도 변수이다. GS는 2005년 인천정유를, 2008년 대우조선해양·현대오일뱅크 지분, 대한통운 등 굵직한 M&A 인수에 뛰어들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 인수 당시 GS그룹은 포스코와 컨소시엄 구성 사흘 만에 인수 가격 조율에 실패하자 컨소시엄 파기를 선언했었다.
허 회장이 취임한 이후인 지난해에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에 GS건설이 관심을 보였지만 최종 인수자는 현대중공업-KDB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 됐다.
그러나 GS가 이번에는 세게 베팅을 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이라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만약 GS가 휴젤을 인수하게 되면 계열분리 이후의 그룹사 최초로 '조 단위'의 인수가 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허 회장은 취임 2년 차를 맞아 본격적으로 혁신 경영의 성과를 보여야 하는 시기인 만큼 ‘빅딜’을 통해 리더십을 입증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GS 관계자는 “휴젤 인수에 대해선 면밀히 검토 중이나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며 “다만 전사적 차원에서 스타트업 투자·벤처투자·M&A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바이오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워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라고 말했다.
설령 가격 부담으로 인해 휴젤 인수가 불발된다고 해도 허 회장의 바이오 진출 시도는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