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49)] 안정적 조달 위한 ‘방산물자·업체 지정’ 방위산업 육성 제도로 전환돼야

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1.06.28 16:04 ㅣ 수정 : 2021.06.29 09:49

방산물자·업체 지정 확대 및 축소 논란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의 기술 환경에 맞도록 재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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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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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산업발전법과 국방과학기술혁신촉진법을 근거로 올해 1월 1일 설립된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지난 5월 21일 개소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방산물자·업체 지정, 방위산업 대표하는 제도로 자리매김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방산물자·업체 지정제도가 도입된 지도 벌써 반세기 가까이 흘렀다. 지난 1973년 시급한 안보적 여건으로 국내 방위산업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도입된 이 제도는 이제 국내 방위산업을 대표하는 제도로서 자리매김하면서 50년 가까이 별 문제 없이 시행돼 오고 있다.

 

무기체계 연구개발은 사실상 방산물자를 획득하는 것이고, 올해 4월 시행된 방위산업발전법에서는 “방산물자 등의 연구개발 또는 생산(제조·수리·가공·조립·시험·정비·재생·개량 또는 개조를 말함)과 관련된 산업”을 방위산업으로 정의하는 등 방산물자 획득은 국내 방위사업 제도와 방위산업 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방산업체로 지정되면 해당 지정업체가 생산하는 방산물자에 대해서는 방산원가 및 부가세 영세율 적용과 함께 수의계약으로 독점적인 생산 권한을 갖게 되고, 반면 방산물자 공급 등 다양한 의무사항이 부과된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등록된 87개의 방산업체가 총 1503개의 방산물자를 독점적으로 생산하도록 지정돼 있다.

 

일관성 있는 제도 적용 이뤄지지 않아 혼란 초래할 듯

 

지난 70∼80년대를 거치면서 민수 제조업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수출산업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지만 방위산업은 경쟁을 제한하는 이런 제도 등으로 인해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비판도 계속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방산물자·업체 지정제도와 함께 대표적인 보호 제도였던 전문화·계열화 제도는 지난 2008년 말 폐지돼 벌써 10년이 경과했다.

 

정부는 방산물자에 대해서도 지정 취소를 확대하거나 업체 간 경쟁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추진할 것임을 밝혀왔다. 일례로 ‘2013∼2017 방위산업육성 기본계획’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선진국에 특정물자·업체를 지정해 보호·육성하는 제도가 없다면서 1개 방산물자에 2개 이상의 방산업체를 지정(1물자 多업체 지정)하거나 방산물자 그룹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업체 간 경쟁을 확대할 것을 제시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제도가 본격 시행되지 않았고 ‘2018∼2022 방위산업육성 기본계획’에는 경쟁 여건이 조성된 품목은 1물자 多업체로 전환한 후 안정적 조달이 확인되면 방산물자 지정 취소를 검토하는 것으로 다소 수위가 조정됐다. 나아가 최근에는 소재나 4차 산업혁명 기술 적용 물자 등도 방산물자 지정 여부를 검토하는 등 오히려 방산물자 지정 범주를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19년 국정감사에서 김진표 의원은 국내 소재업체들의 방산 참여기회 확대를 위해 방산물자 지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방위사업법령에 제시된 방산물자 지정기준 등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음에도 얼마 전까지는 방산물자·업체 지정제도로 업체를 과도히 보호해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진단하더니 이젠 방위산업 육성 제도로 활용하고자 정책기조가 달라진 모양새다.

 

따라서 여기서 방위산업 육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발생된다. 방산물자·업체 지정을 확대하여 방산원가 적용과 수의계약 등을 통해 독점적인 생산 권한을 제공하는 것이 적절한가? 아니면 방산물자·업체 지정을 가급적 축소하여 보호보다는 경쟁을 더욱 확대시키는 것이 적절한가?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산업 육성 차원에서 바람직할까?

 

제도의 본질은 무기체계의 안정적 조달이지 산업 육성 아냐

 

이와 관련, 방위산업 육성 방안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수행해 온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은 “현재의 방산물자·업체 지정제도 운영 방식을 살펴보면 산업 육성 제도가 아니라 안정적 조달을 목적으로 한 무기체계 획득제도의 일환이기 때문에 방산물자 지정 여부는 산업 육성과 직접 연계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산업 육성의 기본 요건은 기업이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면 판로가 보장돼 수익이 창출되고, 다시 기술개발 투자가 이뤄져 글로벌 경쟁력을 계속 확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제도는 무기체계 조달원을 특정업체로 제한하는데서 야기되는 부수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방산업체의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제품 혁신을 유인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첨단소재나 신기술 적용 물자에 대해 산업 육성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방산물자로 지정할 경우 소기의 목적이 달성될지 의문이다. 안정적인 조달원 확보 및 엄격한 품질 보증이라는 현재의 방산물자 지정 기준을 고려하면 이들 분야는 워낙 민·군 겸용 성격이 강해 조달원을 특정할 당위성도 낮고 방산물자로 지정하더라도 산업 육성이 될지 미지수다.

 

이에 대해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선진국들의 방위산업 공급망 강화 추세와 첨단 민간기술의 국방 분야 적용 확대, 방산수출 산업화 정책 등에 따라 현행 방산물자·업체 지정제도만으로는 더 이상 부품의 안정적 공급과 품질 보증을 담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거에 방산물자·업체 지정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방산 전문가들은 협소한 국내 방산시장 규모와 글로벌 시장에서 저조한 방산 경쟁력 수준을 감안하면 오히려 현 제도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방산업체가 기술 역량을 축적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 축적형 제도로 재편하고 방위산업기반조사 통해 취약점 식별

 

이와 관련, 유형곤 센터장은 “내수조달형인 방산물자·업체 지정제도를 지속적인 기술 혁신을 유인하는 기술 축적형 제도로 운영 방식을 재편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방산원가를 적용하는 현 제도 외에도 기술의 혁신성 및 원천성, 군사적 유용성 등을 평가하여 개발업체에게 일정기간 동안 수의계약 혜택을 보장하는 새로운 물자지정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장원준 연구위원은 “향후 방산물자 지정 범위와 혜택을 단계별로 줄여나가면서 기술력이 우수한 민간업체의 방위산업 진입장벽을 획기적으로 제거할 수 있도록 신속시범획득 사업 등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진국 수준의 방위산업기반조사를 통해 취약점을 식별하고, 다양한 보완대책 마련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정부가 군용물자에 대해 수의계약 등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원천기술 개발 여부와는 무관하게 부품국산화율 기준을 충족하고 연구개발 확인서를 발급받은 생산국산화 부품 밖에 없다. 따라서 기술역량이 우수한 업체가 혁신적인 4차 산업혁명 신기술 품목이나 신소재 등을 개발하더라도 정부가 조달을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즉 첨단 신기술이 적용된 품목이나 신소재 등에 대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선 정부가 일정기간 동안 판로를 보장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굳이 방산물자·업체 지정제도를 적용하기 보다는 국가계약법 등을 개정하여 수의계약 혜택을 제공하는 등 별도의 보완대책  마련이 더 적합하다는 얘기다.

 

올해는 지난 1970년 방위산업이 본격 육성된 지 50년이 지나는 시점이고 마침 방위산업발전법이 시행되고 국방기술품질원 부설기관으로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신설되는 등 방산정책 기반이 크게 재편됐다. 이번 기회에 반세기 동안 시행돼 온 방산물자·업체 지정제도도 달라진 환경에 맞도록 재편하여 산업 육성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제도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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