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종의 공군(空軍) 이야기 (49)] 한미 연합사⑥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합동참모대학에 입교하다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1.06.28 16:01 ㅣ 수정 : 2021.06.29 12:00

미군은 '가족의 날' 운영, 시간이 흐른 뒤 그 취지를 이해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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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 예비역 공군준장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한편 연합사에서 근무하면서 당시 한국군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미군들에게만 해당되는 몇몇 지시사항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가족의 날’이었다. ‘가족의 날’이란 매주 목요일 16:00(정규 근무 시간은 17:00 까지)에는 전 미군 장병이 업무를 마치고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연합사령관(또는 미 8군 사령관)의 지시사항이었다.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다. 왜 그렇게 해야 하지? 문화적인 차이일까?

 

우리 세대의 가장(남편)들이 그랬듯이 부대업무가 가족보다 우선인 경우가 많았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시해왔기에 미군 측의 ‘가족의 날’ 지시는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20여 년 전에는 그저 선진국 군대의 행복한 지시라고만 생각했었다.

 

필자가 미군의 ‘가족의 날’ 제도를 이해하게 된 것은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한국 공군도 언제부터인가 이런 개념을 도입해서 ‘가족의 날’ 같은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돌이켜 보면 필자도 아이들이 어릴 때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또는 운동을 하는 등등, 가족과 함께 끈끈한 유대감을 가졌던 시간이 별로 없었다. ‘부대업무가 바빴어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많이 가졌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시간은 화살과도 같이 흘러가 어느덧 연합사를 떠나갈 때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연합사에서의 2년간 근무는 필자의 ‘군(軍)과 군사전략에 대한 개념’을 몇 단계 향상시킨 시간이었고, 탄도탄 작전에 관한 개념 정립 및 실력을 쌓을 수 있었으며, 게다가 육·해·공군·해병대의 훌륭한 선후배 장교들 그리고 미군 장교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은 귀한 시간이었다. (방공처에서 맺은 미군 장교들과의 인연은 필자가 대령, 장군이 되어서도 이어졌고, 업무상으로 서로 긴밀하게 협조했다. 몇몇 미군 장교들은 필자의 전역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부임하는 첫날부터 밤을 꼬박 새우는 등 여러 가지 악전고투가 많았으나 아쉬움을 뒤로 하며 연합사 업무를 마치게 되었고, 이후 필자는 합동참모대학 정규과정에 입학하여 보다 수준 높은 군사 교육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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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사 임무를 마치는 날. 방공처 회의실에서 방공처장이 필자와 아내에게 방공처 근무 기념액자를 주며 필자의 무운장구를 기원했다.

 

합동참모대학(이하 합참대) 정규과정은 육·해·공군·해병대의 영관 장교(중령 또는 중령 진급 예정자)들이 입교하여 약 1년간 합동작전에 관한 교육을 받는 과정이다. 입교 첫날, 합참대의 교수 한분이 기억에 남는 말을 하였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여러분! 앞으로 1년간 합동작전에 대하여 많은 공부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학과 공부와 더불어서 사람(각 군 장교들)을 많이 사귀어서 실질적인 합동작전 전문가가 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해에는 합동작전에 관한 공부와 실전적인 토의를 많이 했다. 그리고  합참대 어느 교수님의 말대로 사람(각군 장교)도 많이 사귀었고, 이때 맺은 인맥은 후에 합동작전 업무를 하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 전역 이후에도 서로 소식을 주고 받으며 귀중한 인연을 지속하고 있다.

 

합참대에서도 공부할 내용이 엄청 많았지만 공군대학의 ‘지휘관 참모 정규과정’만큼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토론시간이 많았고, 이 토론시간에는 어떤 주제가 주어지면 각군 장교들이 그동안 배우고 경험해 온 ‘산 지식’을 바탕으로 서로 의견을 주고 받았기에 ‘살아있는 생생한 교육’이 되었다.

 

합참대 교육기간 중에는 약 일주일 정도 ‘해외 견학’이 있었다. 약 4~5개 지역으로 나누어서 해외 견학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필자는 러시아조에 편성되었다. 러시아는 연합사 근무 당시에 같은 사무실의 미군 장교들(해외 파견 근무 경험이 많은)들로부터 기회가 되면 꼭 가보라는 얘기를 들었고, 그 당시만 해도 가보기가 어렵다고 생각한 나라였기에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

 

러시아 견학이 결정되고는 러시아 역사책을 구해서 읽어보았고, 이때 러시아어도 독학으로 공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러시아’라는 나라는 구소련의 이미지(우리 세대의 머리에 각인된 구한말과 8.15 광복 후, 6.25 전쟁 때의 그 이미지)가 있던 터라 러시아 역사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한편, 연합사에 근무하면서 영어를 매일 접하면서 영어 이외의 외국어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연합사에서 2~3개 외국어를 할 줄 아는 미군 장교들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이다), 합참대에서 러시아 견학이 결정된 전후로 러시아어를 공부한 것이 제 3 외국어 공부의 시작이었다. (후에 일본어와 스페인어도 독학으로 공부했지만 어느 정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음이 아쉽다.)

 

초보자 수준에 맞는 러시아어 교재를 골라서 일과 후에 틈틈이 공부를 시작했다. 러시아어 알파벳을 읽고 쓰는 연습과 더불어서 기본 단어부터 외우기 시작했는데 여기까지는 쉬웠다. 그러나 기초 문법에 들어가자 그때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그래서 공부하는 범위를 줄였다.

 

단기간에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고, 러시아에 가서 최소한 인사말이라도 할 수 있고, 길거리에 있는 간판이라도 읽을 정도는 공부해서 가자고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공부했다.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러시아어 발음을 들어볼 수 있는 녹음 테이프나 MP3 화일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발음은 발음기호에 의존해야 했다.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 여단장, 前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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