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1.06.11 13:44 ㅣ 수정 : 2021.06.11 13:44
배멀미의 고통 알고나니 첫 비행서 멀미했던 아내에게 미안함 느껴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연합업무를 하다보면 필자의 고유 업무인 방공포병 업무 이외에도 여러 가지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여기서 그 내용을 모두 언급하기는 어려우나 다양한 종류의 연합작전 업무를 수행하면서 필자의 안목은 많이 넓어졌다.
한번은 연합 업무 때문에 미군측 인원들하고 울릉도로 출장 갈 일이 있었고 그때 배멀미 관련한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울릉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녀오기가 쉽지 않은 것이 악기상에 따른 선박이나 항공기의 제한적인 운영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당시 출장 경로는 서울에서 출발하는 저녁 기차를 타고 포항에 가서 하루 밤을 보낸 후, 다음 날 오전에 여객선 편으로 울릉도로 향하는 것이었다.
울릉도에 처음 가는 것이라 잔뜩 기대를 가지고 서울을 출발한 필자는 포항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에 항구에 갔는데 기상 악화로 여객선 운항이 중지되었고, 할 수 없이 하루를 의미없이 소비하고는 다음날 다시 항구로 갔는데 다행히 기상이 좋아져서 여객선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배가 출발하고 잠시 후부터 배가 상하로 약간씩 흔들리더니 왠지 모르게 속이 불편해 오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이것이 멀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필자는 이제까지 멀미를 단 한번 했는데, 생도 시절에 목포에서 홍도 가는 여객선(옛날 통통배) 안에서 잠깐 멀미한 것이 그것이었고, 이후로는 어떤 환경에서도 멀미라는 것을 몰랐는데 갑자기 멀미라니 당황스러웠다.
멀미 원인을 곰곰이 따져보았다. 기상이 좋아졌다고는 했지만 아직 파도가 있던 관계로 배가 전진하면서 상하 운동(pitching)을 했는데, 이것이 필자에게 멀미를 유발시킨 요인이었던 것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전날 저녁에 같이 출장 간 인원들하고 저녁 먹으면서 소주를 여러 잔 했는데, 음주의 여파로 인하여 여객선이 상하 운동을 함에 따라 속이 불편해지고 멀미를 하게 된 것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멀미를 하게 된 필자는 눈을 감고 있다가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어느새 여객선은 울릉도에 거의 접근하고 있었다(잠들기 전까지는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주위를 둘러보자 옆자리에 있던 미측 인원들이 안보인다. 주변의 다른 승객들도 안보이고. 나중에 보니 많은 사람들이 멀미 때문에 의자에 앉아 있지 못하고 바닥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필자는 의자에 앉아 자면서 멀미를 이겨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미를 했다는 것이 매우 불쾌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내 체력이 이것밖에 안되는가 하고. (이날 멀미를 경험하면서 몇 년 전에 아내를 첫 승객으로 하여 비행을 할 때, 아내가 공중에서 멀미를 엄청 심하게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때는 멀미가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이날 멀미를 경험하고 보니 아내가 멀미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던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갔고, 그날의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미측 인원 중에는 미 해군 출신 엔지니어도 있었는데, 이 사람도 멀미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는 것은 배에서 내린 후에 알았다. 그 미군 엔지니어에게 농담조로 이렇게 물었다(난 마치 멀미를 안했다는 듯이 시침 뚝 떼고). “멀미 했다면서? 예비역 해군도 멀미를 하는구나!” 성격이 쾌활했던 그 사람 왈 “난 해군이었지만 지상 근무만 했어요. 배에서 근무한 적이 없어서 멀미는 익숙하지 않아요....” 그 친구를 놀리려고 한 말인데, 재치있는 대답에 할 말을 잊었다.
울릉도에 대한 신비함은 며칠 동안 임무를 수행하면서 조금씩 사라져 갔다. 유명한 나리분지를 포함하여 차량이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모든 지역을 가 보았다. 며칠이 지나자 갑자기 섬에 있는 것이 조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이 바다인지라 눈을 들어 보이는 것은 저 멀리 수평선만 보인다. 그제서야 임무를 도와주던 울릉도 현지 주민의 말이 이해가 갔다. “울릉도에 처음 오면 신기한 생각이 드는데, 며칠 지나면 답답한 생각이 들겁니다.”
임무를 모두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이 되었다. 날씨는 좋았으나 또 배안에서 멀미를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 울릉도 주민에게 멀미 얘기를 했더니 웃으면서 울릉도에 멀미약을 전문으로 하는 유명한 약국이 있는데 거기서 멀미약을 사먹으면 편안하게 포항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가르쳐준 약국에 가서 멀미약을 사먹고는 든든한 마음으로 배에 올랐다. 그런데...... 멀미약을 사먹은 보람이 없었다. 파도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바다가 너무도 잔잔하고 마치 유리 표면 같이 깨끗했다.
스쿠버다이버들은 이런 바다 상태를 ‘장판’ 같다고 한다. 바다가 이럴 줄 알았으면 멀미약을 안먹어도 되는데(그때는 스마트 폰이 없어서 실시간 기상예보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무튼 필자는 울릉도에서 포항까지 오는 배 위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멀미 걱정 없이 올 수 있었다. 이래저래 울릉도 출장은 임무도 임무지만 멀미에 대한 추억 때문에 더욱 기억이 난다.
연합사에 근무하면서 가족과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갈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군 예하부대에서 가족과 같이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좀처럼 생각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러나 연합사에서는 지휘부의 생각이 달랐다. 즉, ‘장교들의 견문확대를 위해서 해외여행을 장려’하고 있었다. 연합사는 당시 한국군 부대에 비하여 많이 열린 부대였다.
직속상관의 결재를 얻은 후, 필자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딸들과 아내와 함께 사이판으로 여행을 갔다. 처음으로 온가족이 같이 간 해외여행은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업무에 대한 부담 없이) 가족과 함께 마음 편히 쉬면서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 여단장, 前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