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술 연합정밀 회장의 ‘도전’ 경영, 美 QPL 인증 획득으로 4조원 시장 정조준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40여년 간 3153종 부품국산화 개발 성공해 국방예산 992억원 절감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2일은 연합정밀 창립 4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80년 6월 창립한 연합정밀은 방위산업용 케이블 조립체, 국방규격 커넥터, 상호통화기 세트 등을 개발하면서 성장해왔다. 국내 방산중소기업 중 선두권에 있는 기업으로 국내 시장은 물론 매출액의 20%를 수출하여 해외 시장에서도 주목받는 기업이다.
방산부품의 국산화를 목표로 시작한 연합정밀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하며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왔다. 창립 이래 40여 년 동안 총 3153종의 부품 국산화 개발에 성공한 기업으로도 유명하며, 이를 통해 수입품 대비 992억원의 국방예산을 절감하고, 450여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했다.
연합정밀의 국산화에 대한 열정과 집념은 2018년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다. 10년간 도전 끝에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미국 국방부의 QPL(Qualified Product List) 인증을 획득한 것이다. QPL 인증은 미 국방군수국(DLA)이 군수물자의 품질, 신뢰성, 성능 기준을 제정하고 이에 부합한 제품만 국방 조달을 인정하는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운 품질인증제도다. 따라서 이 인증을 획득하면 전 세계에서 최고 품질로 인정받게 된다.
QPL 시험 및 인증은 DLA가 주관한다. DLA의 제조시설 심사 및 제품 시험을 통해 미 국방규격 및 요건에 적합하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인증 획득과 함께 인증품목 리스트(QPL)에 등재된다. 업체가 제품의 QPL 인증을 요청하면 DLA에서 업체를 직접 방문하여 제조시설을 심사하고 승인되면 이어 제품 시험을 실시한다. 제품 시험은 DLA의 승인을 받은 시험시설에서만 가능하다.
■ 2018년 1760종을 필두로 현재까지 5개 품목 6698종 QPL 인증 획득
연합정밀은 2008년부터 QPL 인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먼저, DLA의 제품 시험방법을 알아내 습득하고 이에 맞춰 제조시설도 변경했으며, 필요한 시험장비도 점차 구비해 나갔다. 이런 사전 준비 과정을 거쳐 2014년 10월 인증 절차의 첫 단계인 제조시설 심사를 신청했고, 이어 인증 절차에 따라 제품 시험까지 차례로 밟아 나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연합정밀은 커넥터 품목 중 하나인 ‘MIL-DTL-38999 Series Ⅳ’ 1760종의 QPL 인증을 2018년 3월 획득했다. 이 품목은 시험이 어렵기로 소문나 전 세계에서 4개 업체만 인증을 획득했다. 이 중 3개는 모두 미국 업체이므로 결국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연합정밀이 유일하며, 아시아권에서 최초로 QPL 인증을 획득한 업체가 됐다.
이로 인해 항공우주 및 유도무기를 비롯한 무기체계 전반에 활용되는 국방규격 커넥터의 수입 대체가 가능해져 연간 200억원 가량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연합정밀은 이후 지속적으로 QPL 인증 획득에 노력하여 2020년 8월 ‘MIL-DTL-26482 Series Ⅱ’ 3180종, 올해 3월 ‘MIL-DTL-83513’ 888종 등 커넥터 분야에서 5828종의 QPL 인증을 획득했다.
연합정밀은 커넥터 외에도 케이블 분야에서 2019년 4월 ‘SAE-AS22759 WIRE’ 940종, 2020년 6월 ‘SAE-AS81044 WIRE’ 230종 등 1170종의 QPL 인증을 획득했다. 이로써 현재까지 연합정밀이 QPL 인증을 획득한 제품은 총 5개 품목 6698종이다. 미국 외에는 국내외 어떤 기업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이다.
■ DLA, 연합정밀 시험 역량 인정…글로벌 시험기관으로 성장 계기
연합정밀은 QPL 인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제적 수준의 시험시설도 구비했다. 최초 DLA에서 제조시설 심사를 위해 방문했을 때 연합정밀이 보유한 시험장비들을 보면서 종류의 다양함과 높은 질적 수준에 놀라워했다고 한다. 특히 진동시험기를 보고는 “우리가 보유한 장비보다 10년 이상 앞섰다”며 “앞으로 연합정밀이 시험한 제품은 DLA에서 인정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이후 DLA는 연합정밀이 QPL 인증을 받는 과정에서 자체 시험장비로 평가한 시험성적서를 그대로 인정했다. 연합정밀이 현재 보유한 시험장비는 1711종에 이르며, 이 가운데 30여종의 장비가 현재 QPL 인증에 활용된다. 이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 DLA가 연합정밀의 시험장비로 시험을 거친 제품을 신뢰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가 QPL 인증으로 연결된다는 의미다.
연합정밀은 이외에도 국내 KOLAS 인증을 받으려는 업체들의 다양한 시험 요청에 수백 종의 장비들을 이용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지원하고 있다. 부품국산화와 해외수출을 위해 시험시설을 구비한 것이 이제는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하며 QPL 인증에도 활용돼 향후 연합정밀이 글로벌 시험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연합정밀 부품이 QPL 인증을 획득하자 한화디펜스·한화시스템·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대표적 체계종합업체들이 세계적 명품인 K9자주포,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등 주요 무기체계 제작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LIG넥스원에서 QPL 부품 40여종을 견적 의뢰했으며, 대만의 한 업체가 QPL에 등재된 품목을 보고 구매 의사를 밝혀 수출이 성사되기도 했다.
■ 김인술 회장, “기술력으로 도전해 성공…4조원 규모 QPL 시장 열려”
이처럼 QPL 인증 부품을 해외에서 수입하던 국내업체들도 점차 연합정밀 제품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분위기다. 게다가 프랑스 SOURIAU의 QPL 커넥터(D38999 Series Ⅲ)를 국내 위탁생산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QPL 인증 제품을 생산하던 미국업체들이 코로나19로 차질을 빚자 수십여 개 해외업체들이 국내업체를 통해 연합정밀 제품을 구매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방위사업청은 올해부터 군수품 획득 과정에서 국내 연구개발을 우선 검토하는 한국산 우선구매제도(BKD: Buy Korea Defense)를 도입하였고, 업체주관 연구개발도 활성화하고 있다. 또 올해 4월 시행된 방위산업발전법은 개발 및 양산 시 국산화개발 부품을 우선 적용하도록 했다. 이와 같이 국산품을 우선하는 각종 정책들도 추진되고 있다.
김인술 연합정밀 회장은 “다들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지만 국산화 개발을 통해 쌓은 기술력으로 결국 해냈다”면서 “QPL 품목의 세계시장 규모가 4조원이 넘는데, 이제 길이 활짝 열린 셈”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해외에서 QPL 제품을 비싸게 수입하는 업체들이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바로 잡아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연합정밀은 수많은 국산화 개발과 QPL 인증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도전하여 성공했고, 이제 정부도 국산화를 전면 지원하는 상황이다. 조만간 연합정밀 부품이 사용된 국산 무기체계들이 세계시장에서 명품으로 인정받으면서 한국의 방산수출을 견인하는 동력이 되리라 믿으며 향후 연합정밀 같은 기업이 계속 나타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