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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인플레이션 공포 확산… 금리인상 압박 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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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하 기자
입력 : 2021.05.13 17:04 ㅣ 수정 : 2021.05.13 17:04

‘펜트업(억눌림) 효과’까지 더해지면 급격한 인플레이션 현실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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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4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투데이=고은하 기자]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가 4% 넘게 오른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국내에서도 다시 급격한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물가상승이 원자재·석유 등의 일시적 공급 부족과 ‘기저효과’ 때문이란 분석이 있지만, 경기 회복과 더불어 수요 펜트업(억눌림) 효과에 의한 보복소비’까지 더해지면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더 근본적으론 최근 물가상승이 지난해 초 코로나19 사태 이후 계속되는 완화적 통화정책의 결과이 만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받는 금리 인상 압박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3년 8개월 만에 소비자 물가 상승률 최고

 

지난 4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지수(107.39)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3% 올랐다. 이는 2017년 8월(2.5%) 이후 3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일 뿐 아니라 2%대 오름폭도 2018년 11월(2.0%) 이후 2년 6개월 만이다.

 

특히 파(270%), 고춧가루(35.2%), 사과(51.6%)등 농산물이 17.9%나 뛰었고, 국제유가 강세로 석유류(13.4%) 등 공업제품 물가도 2.3% 높아졌다.

 

앞서 한은이 지난달 21일 내놓은 3월 생산자물가지수(106.85)도 2월보다 0.9% 올라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째 상승세를 유지했다.

 

역시 국제유가 상승 탓에 공산품 물가가 1.6% 올랐는데, 특히 휘발유(12.8%), 경유(10.8%), 나프타(7.0%) 등 석유·석탄 제품 가격이 뛰었다.

 

품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생산자물가가 소비자물가에 보통 약 1개월 이상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는 만큼 소비자물가도 당분간 계속 오를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국제유가 급등이 물가 상승 부추겨/한은 관계자,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유가의 기여도는 0.5%포인트 달해“

 

최근 들썩이는 물가의 가장 큰 원인은 국제유가다. 지난해 1분기 배럴당 30달러대였던 유가는 현재 2배인 60달러대에 이르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한 유가의 기여도가 0.5%포인트에 이른다”고 밝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경우 전년 동기 기준인 만큼 분명히 ‘기저효과’도 있다. 지난해 1분기(1∼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기대비)은 1% 안팎에 머물렀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영향으로 외식 등 서비스 물가가 전체 물가를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기저효과와 아직 부족한 수요 등을 근거로 2%를 넘어선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2%를 웃돈 물가상승률의 상당 부분은 기저효과이고, 농축수산물의 상승률에 대한 기여도가 크기 때문에 계속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3분기, 4분기에는 지금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은의 물가안정목표(2%)를 넘어야 인플레이션인데, 올해도 내년에도 2%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과도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진행될 가능성은 작다”고 덧붙였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도 이날 TBS 라디오 ‘경제발전소 박연미입니다’에 출연해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가 2.3% 상승한 것과 관련해 “지난해 4월이 굉장히 (물가가) 낮아 기저 효과가 있었다”면서 경기가 과열됐다고 진단하거나 금리를 올리기에는 이르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아직은 우려단계?/한은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1.3%에 그쳐

 

실제 아직 경제·금융기관들과 한은은 올해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도 대부분 2%를 넘지 않고 있다.

 

앞서 지난달 15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물가와 관련해 “일반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대 초반으로 높아졌다.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월 전망(1.3%)을 웃돌아 당분간 2% 내외 수준에서 등락하다 다소 낮아지고, 근원인플레이션율은 점차 1%대로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한은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1.3%지만, 이달말 발표할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1%대 중반 이상까지 높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역시 기저효과가 나타나는 2분기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일시적으로 2%를 넘을 수 있지만 연간 기준으로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인 2%를 웃돌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

 

씨티, 바클레이즈,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 크레디트스위스, UBS, 골드만삭스, JP모건, HSBC, 노무라 등 세계 주요 투자은행(IB) 9곳의 올해 한국 물가 상승률 전망치 평균은 1.6%다. 유일하게 JP모건만 가장 높은 2.0%를 제시한 바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8%로 전망했고, 지난달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11월(1.2%)보다 0.5%포인트 높은 1.7%를 내놨다.

 

LG경제연구원은 올해 물가가 1.6%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여름에 일시적으로 2%를 웃돌 수 있지만, 하반기 들어 안정될 것이라는 게 연구원의 분석이다.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은 국고채 금리 등 시장금리를 끌어올리는 주요 변수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위험 요소들도 여전히 많다.

 

‘유가 등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약 1%에 불과하다’, ‘기저효과 때문이다’ 등의 분석과 관계없이 일단 수치상 물가 상승률이 계속 높게 나오면 우선 경제 주체들의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를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물가가 계속 뛰겠구나’라는 예상에 기업은 상품 가격을 덩달아 올리고 소비자도 물가상승에 대비하거나 적응한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은 국고채 금리 등 시장금리를 끌어올리는 중요한 변수다.

 

한은 ‘소비자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4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1%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향후 1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 값에 해당한다.

 

한은은 최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과정에서 “인플레이션 기대가 기업들의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최근 기대심리 상승이 물가에 미칠 영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금은 수요 측면의 물가 압력이 크지 않지만, 조만간 코로나19로 억눌린 소비가 터져 나오는 이른바 ‘펜트업(pent-up)’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대다수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감염 우려, 사회적 거리두기 등에 소비가 제약되면서 줄어든 민간소비 감소분(2019년 대비)은 약 4%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가 진정되고 보복소비(펜트업 현상)가 일어나 수요측이 견인하는 물가 압력까지 더해지면 그때는 (인플레이션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백신 접종이 어느 정도 끝나면 수요가 더 늘면서 물가가 더 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제유가뿐 아니라 재화의 원료가 되는 구리, 목재, 고무, 펄프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계속 치솟는 것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최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건축자재인 목재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비교해 75%나 가격이 상승했고, 구리 선물 가격의 상승률도 70%대에 이른다.

 

 지난 15일 열린 금통위 회의서 물가 걱정 내비친 위원들 증가

 

이런 국내외 심상치 않은 물가 움직임에 가장 큰 압박을 받는 것은 한국은행이다.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코로나19 충격으로 경기 침체를 예상하자 지난해 3월 16일 ‘빅컷’(1.25%→0.75%)과 5월 28일 추가 인하(0.75%→0.5%)를 통해 2개월 만에 0.75%포인트나 금리를 빠르게 내렸다. 이후 7차례의 금통위 회의에서 계속 금리를 동결했다.

 

이처럼 1년 가까이 ‘완화적 통화정책’이 이어지면서 시중에 많은 돈이 풀렸다. 풍부한 유동성이 결국 물가상승의 연료가 되고 있다.

 

2월 현재 광의 통화량(M2 기준)은 3274조원에 이르는데, 이는 코로나19 발생 이전 2019년 연 평균 2810조원보다 464조원이나 불어난 상태다.

 

한은(이하 한국은행)의 고민을 반영하듯, 지난달 15일 열린 금통위 회의에서도 물가에 대한 걱정을 내비친 위원들이 부쩍 늘었다.

 

의사록에 따르면 대부분의 위원이 물가 동향을 우려하며 한은 담당 부서에 물가 전망을 구체적으로 물었고, 기대 인플레이션을 줄이기 위한 ‘소통’을 강조한 위원도 있었다.

 

심지어 금융안정 차원에서 금리 상승을 고려할 때가 다가온다는 뜻으로 해석될만한 발언도 나왔다.

 

한 위원은 “1분기 중 금융권 가계대출이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금융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며 “정부의 가계부채 관련 대책을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겠지만, 금융안정 이슈에 대해 통화정책적 차원에서 고려할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금리는 금통위에서 결정할 문제지만, 한은 내부에서도 시점이 꼭 올해는 아니더라도 자산가격 상승, 물가 등을 고려해 다소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한은 금통위는 기본적으로는 국내 경기와 인플레이션 상황에 따라 기준금리를 조정하지만, 보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국내 기준금리를 따라 올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화폐)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만약 기준금리가 미국과 같아지거나 역전당하면 당장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유출 등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는 지금과 같은 인플레 속도가 지속되면 생각보다 빨라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한은은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하면 따라갈 것”이라며 “연준은 금리 인상에 앞서 올해 하반기, 연말쯤 양적완화 조절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 “미국도 기준금리 조기 인상 어려울 것" 관측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코로나19 타격에 따른 경기 불확실성, 서비스 수요 부족 등으로 한국뿐 아니라 미국조차 기준금리를 생각보다 빨리 올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은 제조업 수요와 서비스 부문 수요가 함께 회복하면서 물가 상승 속도가 빨라졌지만, 한국은 코로나19 이후 정상화가 미국보다 늦어져 물가 상승 압력도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라며 “연내 기준금리 인상 등 한은의 정책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원자재 가격도 오르고 기저효과도 있기 때문에 물가 압력이 조금 커질 수 있지만, 우려하는 만큼 물가 압력이 금리를 움직일 정도의 흐름은 아니다”라며 “미국의 물가 상승 역시 중고차 가격 급등 등 경기 재개에 따른 일시적, 과도기 현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경기 회복과 관련해 ‘수요 견인’ 물가 압력이 가시화하지 않았고 중국 등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 수준인 만큼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확산되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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