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원이 만들어낸 ’희망보루‘ 경기대리운전노조, ’갑질‘은 견디고 ’공제회‘ 만든다
4차산업혁명시대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워가고 있지만 동시에 ‘제3의 노동문제’를 잉태하고 있다. 플랫폼노동자, 배달노동자, 초단기계약직 노동자 등을 양산 중이다. 이들은 노동3권의 사각지대에 있다. 법적으로 개인사업자 혹은 특수고용직 노동자이다. 가장 힘없는 노동자들이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이들의 이익추구를 돕는 정책을 ‘취약노동자 조직화사업’이라고 명명했다. 자력으로 이익단체를 결성할 힘도 구심점도 없는 새로운 노동계층이 ‘이해대변 조직’을 결성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대기업 산별노조가 자생적 조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취약노동자 조직화사업은 실험적 노동정책이다. 그 실험의 현재와 가능성을 5회에 걸쳐 진단해본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민경식 기자] 경기지역대리운전노동조합 한기석(56) 위원장은 10일 뉴스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경기도의 취약노동자 조직화 사업은 ‘깜짝 놀랄만한 정책’이라고 자평했다. 하루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대리기사들로서는 조직화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생계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도가 지난 해 5000만원이라는 예산을 지원해주자 상황은 급변했다. 대리기사들은 “경기도에서 지원해준다게 사실이냐”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 위원장은 경기지역대리운전노조를 지난 2019년 1월 출범시켰다. 당시 조합원은 9명에 불과했다.
■조합원은 100명인데 준조합원은 600명 된 사연..."회비 자동이체 불가능한 신용불량자 많아"
경기도가 취약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벌인다는 소식을 듣고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지난 해 7월 15명으로 조합원이 늘어났다. 이후 지원대상 단체로 선정돼 5000만원의 지원을 받고 나선 폭발적으로 조직이 성장했다. 현재 CMS(자동이체)로 매월 2만원의 회비를 내는 조합원만 100여명에 육박한다.
비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는 준조합원은 600명에 달한다. 준조합원이 많은 것은 가슴아픈 사연을 담고 있다. 대리기사들 중에서 상당수는 신용불량자이다. CMS를 이용할 수가 없다. 하지만 현금으로 회비를 내고 참여하겠다는 대리기사들이 빠르게 늘었다. 그래서 나온 게 준조합원 제도이다.
지난 2일에는 경기지역대리운전노조 총회를 가졌다.9명의 노조원이 80배 가까운 700명으로 늘어난 셈이다. 이런 성과는 지난 해 경기도가 5000만원을 지원한 이후 불과 3,4개월만에 이뤄진 성과라는 설명이다.
한 위원장은 “대리기사들이 이 정도 조직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자평했다. 직장을 다니다가 해고된 사람, 자영업을 하다가 실패한 사람 등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대리기사들은 조직화 자체가 어려운 직업군이다. 아파트 경비원이나 청소원등만 해도 한 공간에 모이는 기회가 많다. 이에 비해 대리기사들은 하루 종일 콜을 받아서 이동하는 직업이다.
■“대리기사 직업 없었다면 한국 정부 붕괴했을 것”/“조직화는 활동가 일당 5만~8만원 지급해 가능해진 ‘놀라운 사건’”
한 위원장은 “관이 나서서 취약노동자를 조직화를 지원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나온 아주 뛰어난 정책”이라면서 “진심으로 아주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에 따르면 대리기사의 70~80% 이상은 50대 이상의 소위 ‘낀 세대이다. 자식을 키우고 부모를 모셔야 하는 데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생존현장에 내몰린 사람들이다.
한 위원장은 “대리기사 가족 100만여명에게 대리기사라는 직업은 사회안전망”이라면서 “대리기사나 퀵 서비스 같은 직업이 없었다면 한국 정부는 붕괴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시간을 내기가 불가능하다. 콜을 받아서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딜레마를 해결해준게 경기도의 취약노동자 조직화 지원예산 5000만원이다. 결코 큰 돈은 아니다. 하지만 대리기사들의 근본문제를 해결해줬다. 경기지역대리운전노동조합이 활동가들에게 5만~8만원의 일당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콜을 받는 대신에 조직화 사업에 시간을 낼 수 있도록 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 해 7월 15명이었던 조합원이 준조합원까지 합치면 700명으로 급증했다”면서 “5000만원이 지원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 자리에 모일 수 없었던 대리기사들이 5000만원이라는 예산지원 덕분에 조직화를 이뤄낸 것은 놀라운 사건”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대리기사업체 갑질 심각, 연간 48만원 더 비싼 단체보험 강요
한 위원장은 대리기사들의 가장 큰 고충을 묻는 질문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대리기사업체의 ’갑질‘을 꼽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해야 하는 대리기사들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콜을 배정한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이 끊긴 시간대나, 대중교통이 없는 지역은 인근의 대리기사를 불러야 하는 게 순리이다. 택시를 타고 가서 대리운전을 해주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대리기사업체들은 그런 배려를 하지 않는다.
한 위원장은 “대리기사업체의 배정에 대해서 항의하면 쌍욕을 듣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면서 “심지어 항의하는 기사들에 대해서 배정 코드를 빼버리면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토로했다.
대리기사업체들의 보험료 갑질도 심각한 문제이다. 한 위원장은 “대리기사보험은 대리기사업체가 지정해주는 보험회사에게 들어야 한다”면서 “단체보험인데 개인보험보다 비싸지만 울며겨자먹기식으로 가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의 경우 한 달 보험료만 13만원을 낸다. 개인자격으로 가입하는 방안을 알아보니 한달에 9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 대리기사업체가 갑질만 하지 않는다면 한 달에 4만원, 연간 48만원 정도가 절약되는 것이다. 대리기사들 입장에서는 큰 돈이다.
물론 전국의 대리기사들이 정부당국에 이 같은 부조리를 호소해, 금융감독원이 ’보험단일화‘ 라는 해결방안을 권고했다고 한다. 대리기사들이 보험사와 직접 단체보험 계약을 체결하라고 권한 것이다. 하지만 대리기사업체들은 일언지하에 묵살하고 있다는 게 한 위원장의 설명이다.
한 위원장은 “정부 당국은 우리보고 행정소송이라도 하라고 말하지만 대리기사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할 시간과 돈이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갑질 타파는 넘기 힘든 벽, 병원비와 경조사 돕는 ’공제회‘가 올해 목표
따라서 한 위원장의 올해 목표는 대리기사업체들의 갑질 타파가 아니다. 그 벽이 너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에 실현가능한 목표를 세웠다. 대리기사 공제회이다. 한 위원자은 “택시나 버스기사들은 공제회를 만들어서 경조사라도 돕고 있다”면서 “경기도 대리기사들만이라도 병원비 지원 부친상 지원 등을 실현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리기사들은 생계문제가 절박한 사람들이므로 삶의 작은 부분이라도 서로 도와가면서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는 설명이다.
한 위원장은 “경기도의 취약노동자 조직화 사업은 세상의 음지에 있는 대리기사들이 서로 보우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선물한 것”이라면서 “이재명 지사는 가슴이 따뜻하고 머리가 좋은 사람같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공장을 운영하다가 문을 닫고 13년 전부터 대리기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