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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의 공군(空軍) 이야기 (46)

한미 연합사③ 다양한 분야의 군사지식과 문화를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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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1.05.11 09:54 ㅣ 수정 : 2021.05.15 21:45

연합사의 한국 육군 장군들은 선이 굵고 유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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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 예비역 공군준장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연합사 근무를 하면서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 수행 흐름(또는 개념)’을 배웠다는 것이다. 미군은 그동안 수많은 실전 경험을 거치며 독보적인 전투력을 건설해왔고, 각 전구(戰區)별로 그들의 작전계획(이하 작계)을 수립해왔다.

 

필자는 이들과 같이 근무하면서, 또 2년간 수없이 많은 연합 연습을 거치면서 그들의 전쟁 수행 개념을 배울 수 있었다. 정말 귀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군수(軍需)의 경우, 전에는 군수 분야의 중요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연합사에서 많은 연합연습을 거치면서 군수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손자병법 첫머리에도 군수의 중요성이 언급되어 있다).

 

연합사에서는 주기적으로 작전계획을 검토, 수정했고, 필자도 업무상 이 과정에 참여했다. 필자는 초급장교 때 상급부대 ‘작전계획 0000’을 처음 접하고는 과연 누가 이런 엄청난 작전계획을 만들었을까 하고 늘 궁금해 했었는데, 연합사에서 이 과정에 참여하고 난 후로는 그 개념이 머릿속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 덕분에 이후 공군이나 합참에서의 작계 관련 업무는 큰 무리없이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사관학교 졸업 이후 오랜만에 Jane 연감(Jane’s annual)을 보면서 각군의 무기체계를 공부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해당 무기체계를 운영하는 각 군 또는 미군 장교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니 연합사에 근무하는 동안 한국군, 미군 장교들은 모두 필자에게 훌륭한 선생님이 되었다.

 

한편, 필자가 연합사에서 접한 한국 육군 장군들의 이미지는 대체로 선이 굵고 유연성(또는 융통성)이 있었으며, 상황을 읽고 대처하는 능력과 사고의 폭이 필자가 그동안 방포사에서 겪었던 일부 육군 장군들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을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차 포대장 임무를 수행할 때에는 ‘최상의 전투준비태세 유지 및 실전적 훈련’ 관련하여 사령부에서 하달되는 각종 지시사항들은 군인으로서 수행하여야 할 당연한 내용이었고 이를 위해서 모두들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2차 포대장 임무를 수행하면서부터 상급부대에서 하달되는 각종 지시사항 중에 ‘최상의 전투준비태세 유지 및 실전적 훈련’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는 지시사항이 적지 않게 있었다. 가끔 답이 없는 ‘시범’을 하여야 할 때도 있었고, 군인으로서 받아들이기(이해하기) 어려운 지시사항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시범의 경우에는 연초에 각 대대별로 1개 포대씩을 선정하여 동일한 과제가 주어졌는데, 모두들 사령부에서 원하는 ‘정답(시범의 방향)’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염없이 헤매는 가운데 시범이 실시되었다. 육공 장교들도 답을 모르는 것 같았고, 꽤 시간이 흐른 후에 ‘(사령부에서 생각하는) 정답’을 알게 되었는데 꽤 허무한 내용이었다.

 

그런 내용이라면 사령부나 여단 차원에서 또는 방공포병학교 차원에서 교범을 보고 연구해서 장단점이나 개선 사항을 도출하라고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 시범을 준비하면서 많은 불필요한 노력과 예산의 낭비가 있었고, 예하 부대의 사정과 예산을 고려하지 않은 ‘이런 종류의 시범’은 예하부대에서는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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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사 부사령관에게 신고하는 필자(오른쪽에서 두번째). 필자는 연합사에서 선이 굵고 사고방식이 유연한 육군(타군 및 미군) 장군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음은 물론 열린 조직문화를 접하면서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최환종]

 

지시사항 중 군인으로서 받아들이기(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는 야외 훈련시의 지시사항이었다. 좋게 생각하면 부하를 아끼는 지시였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시 사령부에서 강조하던 전투 개념과 상반되는 지시사항이 적지 않게 있었기에 모두들 힘들어했다. 예를 들어 연초부터 강조되던 개념 중의 하나가 ‘경량화’였는데, ‘경량화’란 호크 부대가 타 진지로 이동할 때 어떻게 하면 전투력을 유지하면서 포대의 각종 장비 및 후방지원물자 등을 경량화(적재)하여 신속하게 이동 및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하는가 하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2차 포대장때 실시한 첫 번째 야외 전개훈련시 후방 지원 분야에서 ‘개념상’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한 예가 야외훈련 간에 식사는 땅바닥에 앉아서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즉, 모든 부대원이 반드시 식탁에서 하도록 식탁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는데, 당시에는 간편하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야전용 식탁이 별도로 없었다.

 

이에 따라서 포대 이동시에는 차량 적재공간에 크게 부피를 차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량의 식탁을 가지고 다니긴 했다. 따라서 식사시간에는 일부는 식탁에 앉아서, 일부는 야전 숙소로 사용하는 24인용 천막의 침상에 앉아서, 다른 일부는 각자 편한 위치에 앉아 식사를 했는데 땅바닥에 앉아서 식사한다고 불평하는 장병은 없었다. 모두들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사령부 지시에 따라서 부대 식당에서 무거운 식탁을 가지고 가거나 또는 야전용 식탁을 새로 만들거나 해야 했는데(별도의 훈련 예산도 없이), 이것은 포대 경량화와는 개념이 안맞는 지시사항이었다. 또한 동절기 훈련시에는 야외 훈련장(주진지가 아닌 타 진지)에서도 병사들이 더운물로 샤워를 할 수 있도록 샤워시설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오합지졸에 가까운 부대원들을 지휘해서 훈련준비를 하기도 힘든데, 그런 종류의 후방지원 시설까지 준비해야 하는 필자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훈련장을 호텔로 만들라는 것인가! 우리는 전투를 수행하는 군인이지 소풍가는 유치원 학생들이 아니지 않은가!

 

물론 2차 대전이나 한국전 당시의 기록을 보면 군인들이 식탁에 앉아서 식사하고 더운물로 샤워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최전선이 아닌 어느 정도 후방에 왔을 때 주어지는 여건이다.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 여단장, 前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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