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종의 공군(空軍) 이야기 (45)] 한미 연합사② 고통의 시간을 넘어서 전문가의 길로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1.05.04 13:51 ㅣ 수정 : 2021.05.04 14:04
남산타워의 조명이 꺼지는 풍경을 처음 목격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연합사 근무는 연합연습의 지속이었는데,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몇 차례의 연합연습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연합작전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었으며, 탄도탄 작전에 관한 개념을 확고하게 할 수 있었다.
연합사 부임 첫날 퇴근 무렵, 많은 양의 브리핑 자료를 받은 필자는 황당했지만 임무는 수행해야 했기에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첫 번째 난관은 브리핑 자료가 PPT로 작성된 것이었는데, 그때까지 필자는 PPT를 사용해본 경험이 없었다. 다만 연합사 부임이 확정되고 난 후에 PPT를 잘 아는 후배 장교에게 PPT에 대한 개념 정도만 배웠을 뿐이었다.
필자는 그날 저녁에 직접 PPT 자료를 작성하면서 사용법을 익혀야 했다. (혹자는 묻는다. 병사에게 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나 연합사, 합참, 국방부는 병사가 거의 없다. 따라서 장교 본인이 직접 모든 것을 해야 한다. 문서 기안, 작전계획 작성 등등, 그리고 사무실 청소까지.)
다음으로 번역 작업이었다. 번역 업무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단순히 단어만 번역해서는 번역이라 할 수 없다. 전체적인 흐름과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파악해야 자연스러운 번역이 되는데, 필자는 연합작전에 관한 용어를 접해 본 적이 없기에 연합사 부임 첫 날 번역한 PPT 자료는 많은 부분이 글자 그대로 ‘번역’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답답한 상황은 H 모 소령의 영어 실력인데, 필자가 믿고 맡길만한 수준이 안되었다. 그래서 전체적인 번역은 필자가 하고, H 모 소령은 지상군 작전 등 자신이 익숙한 분야를 번역하기로 임무를 분담하여 작업을 했다.
이날 저녁에 번역을 하면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필자의 ‘상상력 풍부한 번역‘의 대표적인 사례는 ‘Counter Fire Operation’이다(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온다). 연합/합동작전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필자는 ‘Counter Fire’의 의미를 모르고 한참 고민하다가 우선 ‘맞불’로 번역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번역 초안이 완성된 후에 H모 소령과 최종 검토를 하면서 ‘Counter Fire’에 대해서 토의를 했고, 둘이 고민 끝에 혹시나 해서 연합작전 용어집을 찾아보니 정답이 거기에 있었다. 즉, ‘Counter Fire Operation’은 ‘대화력전(對火力戰)’이라는 의미였다. 이런 식으로 번역 및 PPT 작업을 하다 보니 작업 속도는 엄청 느렸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겨우 PPT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한편, 번역 작업 중간 중간에 사무실 밖에 나가서 신선한 겨울 공기를 마시며 머리를 식혔는데, 이때 남산 타워의 외부조명이 꺼지는 것을 처음 봤다. 그때가 대략 밤12시~새벽 1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어 시간 정도 숙소에 가서 눈을 잠깐 붙이고는, 아침 일찍 사무실에 가서 번역한 PPT 자료를 스미스 중령에게 넘긴 후, 필자와 육군 H모 소령은 브리핑 장소로 향했다. 이로써 연합사에서의 첫 임무는 일단락되었는데, 첫 을지연습을 마칠 때까지는 야근을 정말 많이 했다. (당시 남산 타워의 외부 조명은 대략 밤12시~새벽 1시 사이에 꺼졌고, 대략 새벽 5시 전후해서 조명이 켜졌다. 첫 해에는 을지연습이 끝날 때까지 남산타워의 조명이 꺼지고 켜지는 것을 수없이 보았고, 남산 타워 조명이 꺼지고 켜지는 것을 보면서 오늘도 이렇게 하루 일과를 다시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연합사 첫 해에 야근을 많이 한 가장 큰 이유는 ‘탄도탄 방어작전’을 포함한 연합/합동 작전 개념에 대한 공부 및 이와 관련한 각종 보고서 작성(번역)과 작전계획 검토 등이었다. 이중 번역 작업은 단순히 영어를 한글로(또는 한글을 영어로) 옮기는 작업뿐만 아니라 필자로서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공부였다.
그 한 예가 ‘탄도탄 방어작전’에 관한 ‘연합사 00시행 지침서(영문)’ 번역 업무인데, 이제까지 대 항공기 방어작전 개념에만 익숙해 있던 필자에게는 신세계를 공부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중학생이 대학교 수준의 공부를 하는 격이었는데, 이 지침서는 필자에게 ‘탄도탄 방어작전’에 관한 수준 높은 참고서였고, 용어 하나하나가 새롭기에 미군 장교들에게 그때마다 그 개념을 배워 가면서 한글로 번역을 해야 했다(수많은 전문 용어들로 인하여 번역 및 공부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영어를 잘 한다고 해도 절대로 번역할 수 없는 전문 용어들이 너무 많았다). 첫 을지연습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전반기는 이러한 업무 때문에 수없이 많은 야근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 고통스런 시간이 지나면서 필자는 ‘탄도탄 방어작전’에 관하여 전문가적인 지식을 쌓기 시작했고, 이때 쌓은 지식은 필자가 후에 대령, 장군이 되면서 ‘연합 및 합동 탄도탄 방어작전’에 관한 업무 수행시 정말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연합사에서의 첫 을지연습이 시작되었다. 봄에 한차례 실시했던 이런 종류의 연합 연습과 지난 몇 개월간 새로운 개념을 공부했던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을지연습에서는 그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연합작전에 관한 전반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실무에 적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연습기간 중 어느 날, 미 본토에서 을지연습에 참가한 미 야전군 부대의 방공참모(미 육군 소령)가 한국군 방공포병 장교를 찾는 전화가 왔었다. 필자가 전화를 받아서 얘기를 들어보니 특정 지역에 전개해 있는 미 야전군 부대에 대하여 ‘한국군의 방공우산’을 제공받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훈련 목적상 요청이다).
이에 필자는 미군용 비화 전화기를 이용하여 방공우산을 요청한 미 육군 방공참모에게 연합사 작계에 있는 관련 내용과 방공우산 요청 절차를 자세히 설명해주었고, ‘당신의 요청이 훈련 상황으로 처리 완료되었음’을 통보하고는 방공처장(미 육군 대령)에게 보고 후 상황을 종료했다. 일련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던 방공처장은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이러한 상황을 접하면서, 연합사 전입 첫날 ‘Counter fire’를 ‘맞불’로 번역했던 필자의 빈약한 연합/합동작전 지식(업무처리 능력)이 반년 사이에 부쩍 향상되었음을 느꼈고, 첫 을지연습에서 자신감을 얻은 필자는 이후 연합사 업무 수행시 탄력을 받으며 많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 여단장, 前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