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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이슈 진단 (44)

소재 분야 중견기업인 ‘한국카본’이 절충교역을 간절히 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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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1.04.22 08:51 ㅣ 수정 : 2021.04.22 08:51

글로벌 항공기 제작사 소재 인증 획득해도 기존 공급자와 가격 경쟁에서 우위 점하기 어려워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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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한국카본이 구비한 국제인증규격의 화재안전성 시험설비에서 한 연구원이 미국 항공안전당국인 FAA의 항공 인테리어 화재안전성 시험을 하는 장면. [사진=한국카본]  

 

보잉, 항공기 소재 공급원 다변화 위해 한국 소재업체 접촉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2014년경 미국의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은 항공기 제작단가를 낮추기 위해 항공기 소재 공급원을 다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2016년 한국을 찾은 보잉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접촉했고, 당시 산자부의 소재업무 담당 과장은 한국카본 등 몇몇 소재업체를 소개했다.

 

2011년부터 글로벌 항공소재 시장 진출을 준비해온 한국카본은 보잉과의 만남이 새로운 기회로 여겨졌다. 보잉의 제의를 받아들인 한국카본은 연구소장 등 개발 관계자들이 몇 차례 보잉을 방문했고, 그들이 한국카본에게 원하는 소재가 항공기 내장재란 사실을 알게 됐다. 내장재는 구조재보다 부가가치가 작지만 여기서 성공하면 구조재로 확대될 가능성도 보였다.

 

미국 데이튼 대학에서 미 공군재료연구소 프로젝트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조정미 당시 한국카본 연구소장은 “한국카본의 소재 기술은 선진국 수준이었지만, 미국 항공기 제작사들은 기존 공급업체와 상의하며 설계에 필요한 정보와 시험 데이터를 공유하고 있어 다른 업체는 접근조차 힘들었다”며 “보잉이 글로벌 항공소재 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주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항공기는 안전 때문에 각 나라별로 항공안전당국의 인증을 획득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항공기 제작사가 항공안전당국을 대신하여 소재 인증을 추진·관리한다. 따라서 보잉으로부터 소재 인증을 획득하면 QPL(Qualified Product List)에 등재되어 항공기에 적용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한국카본, 3년에 걸쳐 83억원 투자해 내장재 소재 인증 획득

 

한국카본은 2016년부터 보잉의 내장재 소재 공급원이 되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먼저 소재 생산설비와 시험·평가설비를 갖추는데 각각 50억원, 20억원 정도가 소요됐다. 그리고 항공품질경영시스템 AS9100 획득·유지에 5억원, NADCAP(항공우주 특수공정 인증) 획득·유지에 3억원, 보잉에 지불하는 인증비용이 5억원 들었다. 

 

이와 같이 3년에 걸쳐 총 83억원의 비용을 투자한 한국카본은 2019년 보잉으로부터 내장재 소재(보잉소재규격 BMS 8-226) 인증을 획득했다. 이제 드디어 글로벌 소재 시장에서 항공기 내장재로서 경쟁할 자격을 얻었고, 보잉이 발주하는 내장재 부품 제작용 소재의 대량 구매 계약 입찰도 계획돼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보잉에 내장재 소재를 납품하던 기존 공급자가 경쟁자를 의식해 가격을 현저히 낮춰 제시한데다, 보잉도 새로운 공급자로 갑자기 바꾸기에는 부담을 느껴 한국카본의 제품은 입찰 참여가 어려웠다. 이렇듯 소재 분야에서 매출이 발생하려면 인증 외에도 제품 적용사례(reference)를 고객이 원하므로 본격적인 사업화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항공소재 분야에 500억원 투자…절충교역지침 개정이 성공 관건

 

한국카본의 조문수 회장은 이를 해결할 방법을 절충교역(산업협력으로 변경 중)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대다수 군용 항공기를 도입해왔고 이에 따른 반대급부로 미국 업체는 기술을 이전하거나 한국 제품을 도입하는 절충교역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은 소재 산업이 취약해 절충교역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게다가 내장재가 아닌 구조재의 경우 안전의 중요성이 더욱 커서 거쳐야할 시험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또한 항공기 제작사에 지불하는 인증비용도 한 품목 당 10억원을 상회할 정도로 높다. 그럼에도 한국카본은 2011년부터 항공기 내장재 및 구조재를 위한 생산설비 및 품질시스템 확립을 추진해왔고, 지금까지 약 500억원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조 회장은 이러한 어려움을 왕정홍 당시 방위사업청장에게 얘기하면서 절충교역을 통해 항공기 제작사의 소재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이 요청을 검토한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3월 절충교역지침의 일부 조항을 개정했다. 절충교역지침 제13조에 ‘국외업체에서 운영하는 품질인증(공정승인 포함)의 확보’가 협상방안에 추가됐다. 

 

하지만 이번에 개정된 지침에서는 품질인증의 적용 대상을 중소기업으로 한정했고 무기체계 개발이나 정비물량 확보 등 연관된 사업이 있을 경우만 가능하도록 규정됐다. 이로 인해 소재 업체가 중견기업이거나 연관된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절충교역을 통해 소재 인증을 받을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소재 인증 지원만으론 힘들어…소재 수출까지 절충교역 적용해야

 

즉 이 문제를 제기한 한국카본은 중견기업이라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런데 앞서 언급된 사례에서 보았듯이 시설 투자에만 70억원이 들어가고 인증 획득 후에도 가격 경쟁을 감당해낼 중소기업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따라서 이 지침은 중소기업을 우대하되 중견기업까지 포함하고 연관된 사업이 없는 경우도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방산소재 분야의 산업 육성을 최초로 연구한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은 “개별 부품과 달리 소재 분야는 개발, 인증, 생산에 워낙 막대한 자금이 투자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소재 분야에 한해서는 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품질 인증을 절충교역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한국카본의 사례를 보면, 인증을 획득하더라도 기존 공급자의 가격 전략에 뒤져 매출기회를 상실하고 레퍼런스를 만들기 어렵다. 따라서 인증비용만 지원해서는 산업 육성이 힘들며,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절충교역 적용 대상에 소재 수출을 포함시켜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항공기 제작사들도 자사 공급망에 한국 소재업체를 포함시킬 가능성이 생긴다. 

 

이렇게 절충교역 제도를 활용한 소재산업 육성에 정부가 관심을 가질 경우 한국도 소재 분야에서 글로벌 항공기 제작사 공급망에 포함되는 쾌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방위사업청이 하루빨리 절충교역지침을 재개정하여 국내업체가 개발한 방산소재가 해외로 수출되는 사례가 계속 만들어져 소재산업이 수출산업으로 본격 육성되는 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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