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종의 공군(空軍) 이야기 (44)] 한미 연합사① 우물안 개구리에서 넓고 넓은 세상으로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1.04.21 13:27 ㅣ 수정 : 2021.04.21 13:27

연합사 부임 첫 날 부여받은 '잊지 못할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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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 예비역 공군준장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연합사 근무는 필자에게 ‘큰 행운’ 이었다. 연합사 근무 기간은 필자가 사관학교를 포함하여 이제까지 배우고 익힌 군(軍)과 군사전략(軍事戰略)에 대한 ‘지식과 개념’의 수준을 몇 단계 항상시킨 귀중한 시간이었다.

 

필자는 연합사 근무를 통하여 크게는 ‘연합 작전’과 ‘합동작전’을, 작게는 ‘탄도탄 방어 작전’에 대하여 폭넓게 배우고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2년 간의 연합사 근무 경험은 후에 ‘탄도탄 방어작전’을 포함한 ‘한·미 연합작전 임무’와 ‘합동작전 임무’ 수행’시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연합사에 부임하면서 많은 것이 생소했다. 부임 후부터 첫 번째 을지연습이 끝날 때까지 약 8~9개월 동안은 업무에 대한 개념(주로 연합작전 및 탄도탄 방어작전) 정립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고, ‘영어’도 큰 스트레스였다.

 

방공처의 주 업무는 ‘탄도탄 방어 작전’이고 ‘대항공기 방어작전’은 아주 작은 부차적인 임무에 가까웠다. 당시 한국군의 방공포병 전력은 육.해.공군.해병대를 막론하고 대항공기 방어 전력이었고, 탄도탄 방어에 대한 개념 정립은 이제 시작 단계였다.

 

그동안 필자의 업무는 대항공기 방어에 관한 업무가 주업무였으니, ‘탄도탄 방어 작전’에 관한 업무를 소화하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마치 중학생이 갑자기 대학교 공부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영어’는 미군 장병들과 같이 근무하면서 모든 회의, 대화가 영어로 이루어진다. 당연히 영어 사용은 필수였고 또한 스트레스였다.

 

연합사에서 영어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연합사로 부임하는 모든 장교들은 전입 후 몇 주일 이내에 ‘연합사 자체 영어 시험’을 치루어야 한다.

 

여기서 합격하면 연합사 근무 기간중 별도로 치루는 영어 시험은 없으나, 불합격할 경우에는 주 2~3회 실시하는 야간 보충수업(우리는 이 수업을 ‘연합사 봉숭아 학당’이라 불렀다)에 참가는 물론, 일정 기간 이후에 재시험을 치루어야 한다.

 

이 시험 결과는 연합사내 간부 식당 입구에 게시를 하는데, 소위부터 대령까지 실명과 함께 점수를 공개한다. 이러니 낙제 점수를 받은 사람은 얼마나 창피했을까?

 

다행히 필자는 부임 후 실시되는 연합사 자체 영어 시험에 합격해서 ‘봉숭아 학당’ 수업은 참가하지 않아도 되었다. (필자는 봉숭아 학당 수업 내용이 궁금해서 몇 번 참석했었다. 강사는 당시 국내에서 유명한 미국인 강사였고, 한국말도 꽤 잘했으며, 강의를 쉽게했다. 매우 재미있는 수업이었으나 의무적으로 참가하는 장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다가 그해 연말에 영어 시험 정책이 연합사 자체 시험에서 토익으로 변경되었고, 연합사의 모든 한국군 장교들은 기존의 ‘전입 장교 영어시험’ 결과에 관계없이 토익 시험을 치루어야 했다. 준비기간은 한달여 정도로 기억한다. 그 한달 동안 토익 준비한다고 모두들 난리였고, 필자도 처음 치루는 토익이라 당황했으나, 다행히도 합격 기준점을 통과해서 연합사 근무를 마칠 때까지 재시험은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아무튼 연합사 근무 2년간은 영어사전과의 씨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고, 매일 미군 장병들과 얼굴을 맞대고 근무하다보니 자연스레 영어 실력은 향상되었다.

 

특히 방공처장 및 방공처 미군 영관장교들은 필자에게 훌륭한 영어 선생님들이었고, 연합사 근무 2년째에는 비교적 여유있게 영어를 구사하며 연합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물론 통역장교만큼 화려한 영어 실력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필자의 업무분야에서는 무리 없이 임무를 수행 할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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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방공처장(미 육군 대령), 조종사 자격증을 가진 방공처장은 가끔 주말에 필자와 같이 비행을 하면서 가깝게 지냈다.

 

한편, ‘한미 연합 부대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편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미군들은 정시 출퇴근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을까? 물론 업무에 따라서 편하게 지내는 사람도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필자를 포함한 많은 장교들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필자가 부임할 때만 해도 연합사 방공처는 한직(閑職)으로 알려져 있었다.) 다시 연합사 부임 첫 날로 돌아가 보자.

 

부임 첫날 오후에 전체적인 업무 파악을 하는 동안 어느새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그때 같은 사무실의 어느 미군 중령(‘스미스 중령’으로 기억한다)이 필자에게 와서는 영어로 된 PPT 자료(두툼한 A4용지 묶음. 아마도 150장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를 주면서, 내일 아침에 연합사 지휘부에 브리핑을 해야 하니 아침까지 한글로 번역을 해달라고 한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하여 같은 사무실의 한국군 장교인 H 모(某) 소령(육군)에게 물어보니 ‘이 자료는 약 2주 전에 미군 측에서 번역을 의뢰한 것인데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하지 못했다. 내일  08:00 이전까지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2주간 뭐하다가 브리핑이 내일인데 오늘 저녁에서야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전임자(육공 중령)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미스 중령에게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그때부터(대략 17:00시 정도) 다음날 새벽 4시까지 H 소령과 같이 번역 작업을 시작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연합사에서의 첫 날 첫 임무는 잊지 못할 임무가 되었다.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 여단장, 前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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