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포대장⑦ 얼굴색이 희어서 슬펐던 시절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유도탄 사격대회도 끝났고, 겨울에 접어들었다. 이 정도 시기가 되었으면 보다 마음 편하게 포대장 임무를 수행하면서 차기 보직 수행 준비를 해야 하는데 당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포대장 임무를 마칠 때까지 역시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물론 부임 초에 비해서는 포대가 많이 안정되었지만 강약의 차이가 있을 뿐,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한편, 연말연시에 즈음하여 필자에 대한 ‘웃지 못할 헛소문’이 포대장들 사이에 떠돌아 다녔다. 필자는 그 헛소문은 평소에 필자를 잘 따르던 육공 장교로부터 들었는데, 내용인즉, “00포대장은 얼굴이 하얗더라. 평소에 포대 순찰 등 포대 지휘관리는 안하고 포대장실 안에만 있는 것 같다.”라는 것이다.
대단히 악의적인 헛소문이다. 이 소문 이후, 많은 포대장들이 (그런 지적을 받지 않으려고) 일부러 얼굴을 햇볕에 그을리려고 한두 시간씩 매일 건물 밖에 나가서 운동 내지는 순찰을 한다는 것이다. (헛소문의 근거지는 대략 짐작이 갔다. 아마도 예하 부대를 다니며 검열했던 상급부대의 장교들 중 누군가가 그런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렸으리라).
그 말을 듣고는 하도 기가 차서 웃고 말았는데, 필자를 아는 공군의 선후배들에게는 절대로 나올 수가 없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아무리 야외에서 오래 활동해도 1~2주가 지나면 다시 하얀 피부로 돌아온다.
앞에서 많은 포대장들이 일부러 얼굴을 햇볕에 그을리려고 한두 시간씩 매일 건물 밖에 나가서 운동 내지는 순찰을 한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당시 방포사령관 지시 사항 중에 포대장은 ‘2.8 운동(3.1 운동이 아니고)’을 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대략적인 내용인즉, 포대장(소령)은 업무 비율을 ‘사무실 업무에 20%, 포대 순찰 등 건물 외부 업무에 80%’를 두고 하라는 지시였다. 열심히 하라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나이 어린 유치원생 다루는 것도 아니고, 그 당시에 필자는 참 한심한 지시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없다.)
포대장 부임 후에 보름동안 포대에 대기하는 제도나 ‘2.8 운동’이나, 필자가 보기에는 참으로 답답한 사고방식의 산물이었다고 본다. 부대 지휘라는 것이 그 부대가 처한 지리적인 환경이나 주어진 상황에 따라서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당시 방포사 지휘부의 사고방식은 매우 경직되어 있었고, 이런 지시사항을 빌미로 예하 지휘관들을 트집잡는 일부 몰지각한 참모들도 있었다. 아무튼 원래 피부가 하얀 필자는 ‘본의 아니게 사령관 지시사항을 따르지 않은 불성실한 포대장’이 되고 만 것이다.
필자의 얼굴색과 관련한 이러한 참신한(?) 헛소문을 들은 필자는 방포사의 몇몇 대령들에게 ‘공군 내부 이메일’을 보내어 헛소문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 했다.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원래부터 피부색이 하얗고, 햇빛에 타더라도 곧바로 하얗게 피부색이 돌아옵니다.
예를 들어 사관생도 시절에 낙하산 강하 훈련을 받고 얼굴이 새까맣게 탔는데, 1~2주 후에 다시 얼굴색이 하얗게 되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00포대는 고지대에 위치한 지역적인 여건상 1년 중 안개일수가 90% 이상입니다. 포대 내에서 아무리 돌아 다녀도 얼굴이 새카맣게 타는 일은 없습니다. 햇빛도 제대로 볼 수 없는 곳에서 제 얼굴이 새카맣게 탔다면, 그것은 제가 근무지를 이탈해서 태양 빛이 강한 전혀 엉뚱한 곳에서 근무를 했다(근무지 이탈)는 말과 같습니다....... ”
필자의 이메일을 읽고 단 한명의 대령이 답장을 보내왔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이해했다. 상황을 잘 몰랐다.’ 이후 헛소문은 유야무야 사라졌다. 필자가 중령, 대령이 되어서도 종류는 다르지만 악의적인 헛소문이 가끔 돌아다녔는데, 같은 군복을 입은 사람 중에 왜 이리 소인배가 많은지 안타까웠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할 생각은 안하고! 그런 악의적인 헛소문을 만들어낸 사람에게 과연 신사(紳士)의 영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정말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포대장 이취임식을 하는 날이 되었다. 이임식을 마친 후, 대대장 및 타 포대장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필자는 관사로 퇴근했고, 다음날 필자는 가족과 같이 설악산으로 여행을 갔다. 실로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조용히 휴식하며 시간을 보냈다.
며칠간의 휴식을 마치고 필자는 다음 임지로 향했다. 새로 부여받은 직책은 지금은 도태되고 없는 ‘나이키 대대’의 정보작전계장(대대의 선임 참모 격이다)이었는데, 나이키 대대본부에서 근무한 1년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기억나는 것은 “대대장이 저렇게 지휘를 해도 되는구나!”라는 것을 본 것 뿐, 큰 의미없이 지낸 1년이었다. 당시 대대장은 육군에서 전군한 장교였는데, ‘지휘’와 ‘지휘관’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그해 가을에 중령으로 진급을 했다. 중령이라는 계급의 무게감 때문인지, 계급장이 바뀌니까 사람이 확 늙어 보였다. 나는 언제까지나 ‘생도 4학년’ 같은 청춘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중령 진급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미연합사(이하 연합사)로 부임하였다. 그때가 크리스마스 전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합사는 위관 장교때 ‘교육’ 참석차 일주일 정도 파견 갔던 곳일 뿐, 구체적으로 어떤 임무를 필자가 수행해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단지 아는 것은 주한 미군 장병들과 같이 근무한다는 것, 영어로 업무(의사소통)를 해야 한다는 것 정도였다.
연합사에 부임하는 날 오전에 연합사 부사령관(한국 육군 대장) 및 직속 상관(한국 육군 소장)에게 보직 신고를 하고, 방공처 사무실에 와서 방공처 장병들(韓 . 美軍)에게 간단한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업무 인수를 시작했다.
연합사에서의 보직은 “방공처 부처장”. 한미 연합 부서인만큼 미군 장병들과 같은 공간에서 근무를 하였고, 처장은 미군 대령이, 부처장은 한국군 중령(필자)이 맡고 있었다(부서장은 각 부서의 업무 성격에 따라서 한국군 장교가 맡는 부서도 있고 미군 장교가 맡는 부서도 있다). 필자는 연합사 근무 기간 중 두 명의 미 육군 대령을 연이어서 상관으로 모시고 근무했다. 같이 근무하는 동안 이들은 필자에게 탄도탄 방어작전에 관한 뛰어난 스승이요 훌륭한 영어 선생님이었다.
연합사 부임 첫날, 업무 파악을 하며 퇴근 시간을 앞두고 있는데, 같은 사무실의 어느 미군 중령이 필자에게 오더니 ‘첫 임무’를 주었다. 전혀 예상 밖의임무를.......
아무튼 이날부터 연합사에서 근무한 2년간은 이제까지의 군 생활과는 차원이 달랐고, 이날부터 연합사에서의 험난한(그러나 보람 있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 여단장,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