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업계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비해야 하는 4가지 이유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건설·제조·유통업체 등, 법 시행에 대비해 안전보건관리시스템 구축
[뉴스투데이=정원 율촌 변호사/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1월 8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후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1월 26일 공포되었으며,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다. 다만 개인사업자 또는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2024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은 중대재해에 대한 사회의 경각심을 높이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경영책임자에게는 종사자의 안전보건을 확보할 의무가 부여됐다. 이 법은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및 법인의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에 대해서 1년 이상 징역(해당 법인에 대해서는 50억원까지 벌금) 선고가 가능하다.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의무를 위반하여 재해가 발생하면 개인사업자, 법인 또는 기관은 실제 발생한 손해의 5배까지 민사배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이에 따라 현재 업종과 규모를 불문하고 많은 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시행에 남다른 관심과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이 법이 대표이사 처벌을 통해 사고예방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해 빈도가 높은 건설, 제조, 유통업체들은 발 빠르게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법 시행에 적극 대비하고 있다.
■ 방산업계 위기감 못 느끼는 듯…업체 대표와 발주기관장까지 처벌 대상
반면 방산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관련한 위기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기체계 연구개발 및 양산 과정에서 폭발, 추락, 끼임 및 유해물질 오염 등에 기인한 사망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어 방산업계 역시 법 시행에 대비해야 한다. 이에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하여 주목할 내용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중대재해처벌법상 처벌 대상(책임 주체)은 대표이사뿐만 아니라 공공발주기관장도 포함된다. 이는 2022년 1월 27일 이후 무기체계 연구개발 또는 양산계약 이행 간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할 경우 방산업체 대표이사는 물론 발주기관장인 방위사업청장, 국방과학연구소장 등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따른 형사피의자로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비하여 발주기관으로서 취해야 할 안전·보건 조치사항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예상해 볼 수 있는 내용은 ① 안전보건 조치의무 위반업체에 대한 입찰참가자격 제한 또는 낙찰자 결정 시 감점기준 확대, ② 안전서약서 징구, ③ 안전관리 특약, ④ 산업안전관리비 지출내역 관리감독 등이다.
방산업체 또한 하반기 제정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과 관계법규 개정 사항에 맞춰 내년도 안전보건 계획을 수립하고, 내년 이후 입찰참가 및 계약협상 과정에서 계약이행 기간과 대가가 보장되는지 잘 살펴 사업 수주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계약 체결 시 업무분장과 권리의무 관계를 구체적으로 정해 중대재해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책임 범위가 부당하게 확대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 실제 지배·운영·관리하는 범위서 발생하는 모든 중대산업재해 사고 적용
둘째,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이 작업 또는 업무로 인해 중대재해를 입는 중대산업재해와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발생한 중대시민재해로 구분된다. 방위산업의 경우 유해 화학물질, 폭발물 등을 다루게 돼 중대산업재해는 물론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할 소지도 상존한다.
이러한 상황은 방산업체뿐만 아니라 소요군과 국방과학연구소 등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각 기관 또는 기업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생산·제조·판매·유통 중인 원료나 제조물의 설계, 제조, 관리상 결함으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예방 및 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이라는 장소에 한정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범위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중대산업재해 사고에 적용된다. 이 법 4조는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종사자의 안전·보건 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안전·보건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제3자에게 도급, 용역, 위탁 등을 행한 경우 그 종사자에게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라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 조치도 취해야 한다. 따라서 자재공급, 운송, 하역 및 하청 관계 등과 관련된 계약을 체결할 때 구체적인 업무분장을 규정하고 계약 당사자 간 안전·보건 조치 의무사항을 분명히 정할 필요가 있다.
■ 사고 발생 시 면책 받으려면 중대재해 대비한 컴플라이언스 구축 필수
넷째, 2019년 1월 15일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개정에 따라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인 회사의 대표이사는 금년부터 매년 회사의 안전보건 계획을 수립하여 이사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사회에 보고한 안전보건 계획이 충실히 작성됐고 계획대로 실행됐는지에 따라 사고 발생 시 대표이사의 면책 가능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결국, 업체로서는 사고를 예방하고 사고 발생 시 면책을 받으려면 중대재해에 대비한 컴플라이언스 구축이 필수다. 컴플라이언스는 ① 예상되는 안전보건 리스크 식별, ② 식별된 리스크 평가, ③ 발생 가능한 리스크 선정, ④ 리스크 감소를 위한 안전보건 확보방안 수립, ⑤ 지속 점검 및 새로운 리스크 식별 등의 순서로 반복되는 지속적인 관리체계를 말한다.
실제로 전문 로펌의 도움을 받아 중대재해에 대비한 컴플라이언스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공공계약의 안전보건은 시간과 돈의 문제이며, 충실한 안전보건 조치아래 계약을 이행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계약이행 기간과 비용의 보전이 이뤄져야하기 때문이다.
■ 정부, 충분한 계약이행 기간과 적정대가 지급 기준 마련해 대비해야
한편, 대법원은 공공발주기관의 사정으로 전체공사 계약기간이 연장된 경우에도 장기계속계약에 있어서는 총괄계약의 구속력이 없다는 이유로 공공발주기관의 공기연장에 따른 추가 발생비용 지급의무를 부정하였다.(대법원 2018.10.30. 선고 2014다23518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이는 안전관리자 배치가 산안법이 정한 의무사항이지만 공공발주기관 사정으로 2년에 걸쳐 있는 장기계속계약을 10년으로 연장해도 안전보건관리비는 2년을 기준한 금액만 지급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안전보건 조치에 필요한 비용 부담과 사고 발생에 대한 책임이 계약업체에 일방적으로 전가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공공계약의 현실이다.
방산 분야의 경우 그동안 지속된 방산비리 프레임으로 인해 여타 공공계약 분야보다 합리적인 계약기간 연장 및 계약대금 증액에 지나칠 정도로 인색하다. 또 연구개발 기간 설정 및 방산원가 산정 같은 시간과 돈에 대한 객관적이고 분명한 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조달과 관련한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한다면 해당업체 대표이사는 물론 방위사업청장, 국방과학연구소장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국방조달 계약과 관련하여 충분한 계약이행 기간과 적정대가 지급 기준을 마련하고 방위산업의 구조와 특성을 고려한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정립함으로써 중대재해 사고 발생에 적극 대비해야 한다. 방산업체들 또한 정부가 기준을 정하면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사고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