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종의 공군(空軍) 이야기 (42)] 2차 포대장⑥ 두 차례 성공한 유도탄 포연 속에 사라진 '오합지졸'의 추억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1.03.30 11:24 ㅣ 수정 : 2021.03.30 11:24

관사 가족들이 사격대회 나가는 포대원 김밥을 준비했던 '정겨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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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 예비역 공군준장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유도탄 사격대회가 실시되는 00사격장은 포대로부터 상당한 거리에 있다. 00포대 입장에서 사격장까지 포대 전체 장비와 병력이 이동하는 것은 아마 포대 창설 이후 처음이라 생각했고(과거 팀 스피리트 훈련때 야외 기동훈련에 참가했었다는 말은 들었는데 확실하지는 않았다), 경험이 없는 만큼 위험 부담은 컸다.

 

단지 전반기에 야외전개 훈련을 한차례 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보강 훈련을 실시해야 했다. 야외전개 훈련을 소개하면서 잠깐 언급했는데 포대 전체 장비가 이동하려면 꽤 많은 차량이 필요하다. 1/4톤 지휘차량, 2.5 톤 트럭, 5톤 트럭, 급유차, 구난차 등등 수십 대의 대형 차량들이 움직인다.

 

글자로 표현하면 간단하게 ‘유도탄 사격대회’이지만 포대를 출발해서 사격을 마치고 포대로 복귀할 때까지 일련의 과정을 보면 ‘유도탄 사격대회’는 유도탄 실사격을 포함한 야외 기동훈련인 것이다.

 

작전팀과 정비팀은 사격장에서 실시하는 행동절차를 매일 연습하였고, 수송반 등 지원부서에서는 후방지원을 위한 준비를 계속했다. 또한 사전 정찰팀을 사격장에 보내서 행군 경로 파악 및 행군 간에 문제점은 없는지 등등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렇게 사전교육과 준비를 했음에도 사격대회가 진행되면서 가끔 엉뚱한 일들이 발생했다.

 

드디어 사격장으로 출발하는 날 아침! 새벽부터 출발준비를 마친 포대는 질서정연하게 00사격장을 향해서 출발했다. 한편, 그때만 해도 옛날인 것이, 집사람을 포함한 관사 가족들이 새벽부터 모여서 포대원들을 위해 정성껏 김밥을 준비했다. 힘들었지만 정감 있는 광경이었다.

 

포대는 사전에 도상 연습한 바와 같이 고속도를 이용해서 이동했고 예정된 두번째 휴식 지점에 도착했다. 이제 몇 시간만 더 가면 사격장에 도착하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차량을 정렬시키고 간부들을 소집해서 이상 유무를 파악해보니 차량 한 대가 보이지 않는다.

 

유도탄 사격대회에 참가하던 당시의 포대 분위기를 잠깐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즉, 신병 자해 사건과 야외 전개훈련, 작전도로 유실 복구 과정 등을 거치면서 포대는 필자가 부임할 때보다 군기, 사기, 단결 면에서 그 수준이 많이 향상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간부는 개인행동(또는 불군기 행위)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포대장이 지시하면 대답은 잘하지만 행동은 매우 엉뚱하게 하는 간부(이른바 고문관)도 있었으며, 거칠게 행동하는 간부들도 일부 있었다. 아직은 포대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야생마 같은 상태였다.

 

이날 두 번째 휴식 지점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은 간부도 그런 부류였는데, 무전기로 호출해서 알아보니 갈림길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들어서서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간부는 사전 정찰팀에 포함되었던 간부라 전체 행군 내용을 숙지했을 텐데 그러고 있었으니.......

 

게다가 그는 수송 전반에 걸친 임무를 맡은 간부였다. 다행히 즉각 이동경로를 변경해서 잠시 후에 본대와 합류했지만, 이 간부는 사격을 마치고 포대로 복귀하기 전에 실시하는 최종 군장검사 때에도 제 시간에 ‘제 임무’를 수행하지 않아서 포대 전체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었다.

 

또 다른 간부는 주요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도 입으로만 일하고 있던 간부가 있었다. 사격장에서도 본인의 임무보다는 다른 편한 임무에 관심이 많았는데, 결국 그 간부는 후에 여러 가지 물의를 일으켜서 강제 전역 조치되었다고 들었다.

 

새벽에 포대를 출발한 ‘사격대회 참가 제대’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해질 무렵에 사격장에 도착했고, 다음날부터 시작될 사격대회 절차를 준비했다. 다음날 오전부터 시작된 절차(진지점령, 장비점검 등)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물론 장비가 가끔 말썽을 부려서 정비사들이 밤새워서 정비를 했지만 사격에 지장을 줄 정도의 문제는 없었다.

 

이윽고 사격하는 날이 밝았고, 기상은 양호했다. 그러나 필자는 작년의 사격 실패가 생각이 나면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금년에는 멋지게 사격에 성공해야 할텐데...’

 

이날 우리 포대의 사격 순서는 타 포대에 이어서 두 번째였고, 타 포대가 장비 비정상 등으로 사격에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서 우리 포대가 예비 포대 임무를 수행했다.

 

표적기가 이륙했고, 첫 번째 사격포대와 같이 우리 포대도 표적기를 계속 추적하고 있었다. 첫 번째 포대가 사격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첫 번째 사격포대가 사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필자는 작년의 ‘군산포대 경험(사격 실패)’이 생각나면서 예비포대로써 사격버튼을 누를 준비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통제탑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첫번째 포대 사격 실패, 00포대에서 사격하라”

 

필자는 사격 버튼을 여유있는 마음으로 힘차게 눌렀다(작년에 이미 한번 경험을 했으므로). 사격회로가 작동하고 몇 초 후에 힘찬 발사음이 들렸다. 그리고 레이다 스코프를 주시했다. 표적기에 유도탄이 접근하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레이다 스코프에서 표적기가 사라지면서 추적병이 보고한다. “명중 했습니다!”

 

사격통제소 안에 있던 필자와 포대 작전팀이 환호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사격은 우리 포대 사격이다. 상기된 감정을 누르고 다음 사격에 대비했다. 다음 표적기가 포대로 접근했고, 포대 레이다는 추적을 계속했다. 표적기가 사격지점에 도달하자 통제관이 사격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필자는 다시 사격버튼을 힘차게 눌렀다. 그리고 또 들리는 힘찬 유도탄 발사음! 필자에게 그때 들린 유도탄 발사음은 단순한 화약의 폭발음이 아니었다. 마치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후반부에 나오는 대포의 발사음 같은 그런 우렁찬 소리였다.

 

잠시 후 레이다 스코프에서 표적기가 사라지면서 추적병이 보고한다. “명중 했습니다!” 작년에는 사격실패로 인해서 본인은 물론이고 포대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됨을 겪었는데, 오늘은 유도탄 사격에 성공했다.

 

그것도 타 포대가 사격할 것까지 포함해서 두 발이나! 우리 포대의 사격 성공은 물론 군산 포대의 사격실패를 멋지게 만회했음에 뿌듯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위장망도 제대로 설치하지 못하던, 야외전개훈련 조차도 버거워 하던 그 ‘오합지졸’들이 ‘큰 일(유도탄 사격대회)’을 해냈음에 커다란 성취감을 느꼈다.

 

유도탄 사격을 마친 다음날 아침, 포대는 사격장에서 본대로 복귀 출발했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과 난관을 극복한 끝에 야간 늦게서야 포대본부에 도착했다.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공군 준장 전역, 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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