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종의 공군 이야기 (40)] 2차 포대장④무서운 방공포사령관이 '지적'보다 '격려'를 한 까닭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1.03.02 11:16 ㅣ 수정 : 2021.03.02 11:16

'오공' 장교를 무시하던 '육공' 장교들이 정작 예하 포대 실정은 몰라/'훈련감시'하고 난 뒤 실상 파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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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공군 준장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한편, 훈련 이틀째인 이날 오전에 ‘그동안 모래알 같던 포대원이 일치단결’하는 계기가 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날 오전에 대대장에게 금일 야간 훈련에 대하여 보고를 하는데, 대대장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다.

 

“사령부의 오전 상황보고 시간에 00포대의 야간 전개훈련 결과에 대해서 사령관에게 보고가 있었다. 사령관이 00포대의 이동시간이 이동거리에 비해서 왜 장시간이 소요되었는가를 질문했고 이에 대해 아무도 답변을 못했다. 결국은 00포대에서 야간 행군시 어떤 문제(사고 또는 의도적인 행군 지연 등)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므로 사령부 감찰참모 및 수송참모를 금일 야간에 현장에 보내서 야간 훈련 상태를 점검하라는 사령관의 지시가 있었다”

 

이 말은 사령부에서 필자의 포대를 믿지 못하여 일종의 ‘훈련 감시단’을 보낸다는 말이었다.

 

필자와 대대장은 어제 야간부터 오늘 아침 해 뜰 때까지 훈련 내내 같이 있었고 훈련 간에 어떤 문제점도 없었기에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잠시 말이 없었다. 포대원 모두가 죽을 고생하고 내려왔는데 ‘훈련 감시단’을 보낸다니...

 

사령부에서 필자의 포대를 믿지 못하여 일종의 ‘훈련 감시단’을 보낸다는 말에 필자가 느낀 것은 사령부 참모들이 현실(포대 실정)은 모르고 책상에서만 일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령부 참모라면 예하 포대의 현실(애로사항 등)을 알고 이를 필요시 적절하게 사령관에게 지휘조언을 해야 하는데, 오늘 아침 사령부 상황보고시 관련 참모의 행동을 보면 전혀 이런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된 참모라면 이렇게 보고 했어야 했다. 즉, ‘00포대의 경우 포대부터 훈련진지까지 거리는 00 km로서 정상 상태에서는 이동에 0시간이 소요되나, 00포대의 지형적인 특성에 따른 작전도로의 열악함과 야간 행군에 따른 여러 가지 애로사항(위험성 등)이 발생함에 따라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초과 된 것으로 판단합니다.’라고 답변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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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마치고 대대장, 포대원들과 함께 기념 촬영. 훈련진지에서

 

필자는 사령부 참모들에게 실망했다. 그리고 화가 났다. 평소에 ‘오공’ 장교를 그렇게 무시하던 ‘육공’ 장교들이 정작 자신들이 몸담아 왔던 예하 포대 실정에는 모르고 있었음에, 그리고 사령관에게 지휘조언을 제대로 못하여 마치 00포대가 엉터리로 훈련을 한 것처럼 보이게 하였음에 그러했다. (당시 사령부의 방공포병 방교들은 대부분 ‘육공’ 장교들이었고, 이날 저녁에 포대 훈련을 ‘감시’하러 오는 장교들 또한 모두 ‘육공’ 장교들이었다.)

 

필자는 오후에 포대 간부들을 집합시킨 후 군장검사를 실시하고, 야간 훈련에 대하여 강조사항을 전파하면서 사령부에서 ‘훈련 감시단’이 온다는 것을 알렸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포대 간부들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느끼는 감정은 필자나 포대 간부들이나 똑같았다. 그리고 오후 늦게 사령부 ‘훈련 감시단’이 포대에 도착할 즈음부터 포대원들의 얼굴에는 포대원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결의’가 나타났다.

 

이윽고 해가 지고 야간 행군이 시작되었다. 이날의 포대원들은 어제와 많이달라져 있었다. 필자는 포대원들이 똘똘 뭉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고,  이날 야간 훈련시에 필자는 포대원들에게 별다른 지시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필자는 2차 포대장 부임 후에 처음으로 포대원들과 강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각 부서장을 중심으로 포대원들은 어제보다 더욱 정밀하고 조심스럽게, 일사불란하게 야간 행군을 실시했다.

 

사령부에서 온 ‘훈련 감시단’은 처음에는 훈시 차원(?)에서 뭐라고 몇 마디 하더니 훈련 내내 조용하게 있었다. 아마 ‘훈련 감시단’의 두 중령은 00포대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이 분명했다. 이 자리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그리고 포대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훈련진지에는 어제보다 조금 늦거나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훈련진지에 도착하고 제한된 시간 내에 임무에 돌입하였다. 그때 사령부의 ‘훈련 감시단’이 한마디 한다. “수고했네. 정말 어려운 여건이네...”

 

새벽에 훈련진지 정리를 모두 마치고 나서 잠깐 눈을 붙였는가 싶었는데, 대대에서 연락이 왔다. 사령관이 다음날 훈련진지 순시를 할 예정이니 보고 준비를 하라고 한다. 당시 방공포병사령관(육사 출신, 공군으로 전군후 2성 장군까지 진급)은 규정파이면서 상당히 무서운 분으로 소문이 나 있었고, 사령관이 포대를 순시할 때 포대장에게 포대 작전이나 일반사항에 대하여 질문을 할 때 제대로 답변을 못하면 그 후폭풍은 엄청났다.

 

그런데 사령관의 갑작스런 우리 포대 순시는 필자가 판단컨대 포대 격려의 성격이 강했다(한편, 대대에서는 사령관에게 보고할 ‘보고 자료 준비’ 때문에 난리 법석을 피웠다. 왜 그렇게 형식에 얽매이는지...). 다음날 사령관이 헬리콥터 편으로 훈련진지에 도착하였고, 포대현황 보고를 받은 후 훈련장 및 포대 관사지역을 순시하였다. 역시 예상했던 바와 같이 ‘어려운 임무를 수행한 00포대를 격려’하는 성격이 짙은 그런 순시였다.

 

포대를 순시하면서 ‘지적’보다는 주로 ‘격려’ 위주로 얘기를 하였다. 이제까지 사령관이 타 포대를 순시할 때 했다고 들었던 그런 ‘무서운’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훈련 후에 들은 얘기로는 사령관 자신도 00포대에 예외조항 없이 전개훈련을 지시했지만, 나름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갑작스럽게 우리 포대를 격려차 순시한 것이리라.......)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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