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방향 잡은 과학화경계시스템 사업 신속한 재검토 필요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광망 센서 기능 점검 없이 감지유발기 문제로 인식해 보완책 마련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최근 군에서는 두 가지 과학화경계시스템 사업이 시작됐다. 하나는 지난해 11월 북한 남성의 ‘월책 귀순’으로 허점이 드러난 최전방(GOP) 철책의 과학화경계시스템 보완 사업(약 50억원)이고, 다른 하나는 ‘지능형 스마트부대’ 구축 시범사업(70여억원)의 일환으로 계획된 15개 사업 중 하나인 지능형 경계감시체계 사업이다.
GOP과학화경계시스템 보완 사업은 GOP 철책 상단의 감지유발기를 새로 달거나 교체하고 경계 사각지대에 근거리 감시카메라(CCTV)를 추가 설치하는 것이고, 지능형 경계감시체계 사업은 부대(총 4개)별로 별도의 감지시스템 없이 6대의 ‘라이다(LiDAR)’와 10대의 CCTV를 설치해 울타리 경계를 하도록 설계돼 있다.
현행 과학화경계시스템은 광망 센서로 작동하는 감지시스템, CCTV를 이용하는 감시시스템 그리고 통제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즉 센서가 작동해 물체를 감지하면 그 방향으로 CCTV가 회전해 확인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감지시스템이 주 감시장비이고 감시시스템은 보조수단이다. 전문가들은 “CCTV 운용도 문제가 있지만 감지시스템의 문제 해결이 급선무다”라고 말한다.
본지는 지난해 11월 월책 귀순이 발생했을 때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GOP과학화경계시스템의 근원적 문제는 감지유발기가 아니라 광망 센서에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시공된 ‘광망 센서에 의한 감지 방식’은 강풍과 혹한에 취약하고 동물 훼손 등으로 인해 2년 정도 경과하면 대부분 손상돼 최근에 새로 나온 장력기술을 활용한 감지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군은 기존 설치업체와 현장을 조사한 후 월책 당시 경보음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를 철책 상단의 감지유발기가 정상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했다. 광망 센서 기능의 점검 없이 감지유발기가 문제인 양 인식한 것이다. 결국 감지유발기를 전수 조사해 보완하고 취약지역에 감시카메라(CCTV)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사업은 추진되고 있다.
■ 광망 감지 방식 오작동 원인 정밀 진단하고 저가 제품 도입 막아야
광망 센서 기능을 점검하지 않은 이유는 일부 보도에 따르면 광망 자체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귀순자 진술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경우 외에도 매년 국정감사의 단골 메뉴로 감지시스템의 오작동 문제가 지적돼왔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근원적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밝혀 필요한 대책을 강구해야 함에도 현재까지 군은 미봉책으로 대응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감지시스템을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오경보율, 침입탐지율, 내구성 및 유지보수효율성 등 3가지다”라며 “특히 오경보율은 장비 신뢰성과 연관돼 최소한의 기준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군에서 장비 성능보다 도입 예산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기 때문에 기준을 무시하고 저가 제품이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이들은 덧붙였다.
현재 국내에서 운용 중인 감지시스템은 감지 방식별로 구분해도 10여 가지에 이르고 한 방식 당 최소 2∼3개 시스템이 있어 종류만 수십 가지이며 가격도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게다가 가격 위주로 선택된 저가 제품을 도입해도 매년 소요되는 유지보수 비용을 더하면 고가의 좋은 제품을 도입하는 것에 비해 예산 절약 효과가 크지 않다고 한다.
결국 사업예산 편성 과정에서 충분한 시장조사가 이루어져 성능 좋은 제품을 도입할만한 예산이 반영돼야 하는데 이 과정이 소홀히 다뤄져 부족한 예산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성능이 떨어지는 저가 제품이 도입돼 과학화경계시스템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22사단 사례처럼 경계 작전의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것이 현재 벌어지는 실상이다.
■ CCTV의 좁은 화각 극복하고 오경보 발생 방지할 해법 찾아야
과학화경계시스템의 보조수단인 CCTV 운용도 문제가 있다. CCTV는 지능형 자동탐지 기능이 탑재돼 주 감시방향을 보다가 광망 센서가 물체를 감지하면 경보와 함께 그 방향으로 회전해 표적을 찾는 방식이다. 200m 거리에서 사람의 상반신을 자동 추적하는 것이 시험평가 기준이지만 시험평가를 통과해도 실제 설치된 최전방 환경에서는 오경보가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CCTV의 감시거리가 200m까지 늘어나면 화각(CCTV가 탐지하는 감시 각도)이 매우 좁아지면서 물체가 작게 보여 사람과 구별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m 정도 거리의 사람 상반신 크기는 CCTV에서 2∼3m 떨어져 날아다니는 작은 날벌레나 CCTV 앞에 쳐진 거미줄에 맺힌 물방울과 크기가 비슷해 오경보가 빈번할 수밖에 없다.
결국 오경보가 심하니 평소에 경보가 작동하지 않게 지능형 감시 기능을 꺼놓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난 16일 발생한 22사단의 일명 ‘잠수복 귀순’ 사건에서도 CCTV에 10차례 포착됐지만 8차례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오경보로 추정한 사실은 이와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오경보 없이 CCTV의 좁은 화각 문제까지 보완할 새로운 수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근거리 지상감시레이더를 CCTV와 연동해서 사용하는 추세이다. 지상감시레이더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150도 이상의 전 방향을 감시하다가 물체가 탐지되면 CCTV가 자동으로 추적하는 것이다. 지능형 스마트부대 구축 시범사업에서 이런 방향이 일부 고려되는 분위기가 보인다.
■ 라이다와 레이더 비교해 CCTV와 연동하면 유리한 방식 선택해야
그런데 이 사업에서는 CCTV와 함께 ‘라이다(LiDAR)’가 등장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라이다는 빛을 이용해 물체를 탐지하는 기술로 기능은 레이더와 유사하지만 3D 영상으로 복원할 수 있고 정밀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조도와 기상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내구성이 짧아 유지보수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장비 가격도 레이더보다 2배 이상 비싸다.
반면 레이더는 전파를 이용해 물체를 탐지하는 기술이어서 기상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유지보수 비용도 거의 들지 않으며 감시거리도 라이다보다 3배 이상 길다. 그럼에도 이 사업을 레이더가 아닌 라이다로 설계한 이유가 3D 영상 데이터 확보에 있다는데, 이 주장도 CCTV와 연동해 실제 영상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어 상당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제안요청서(RFP)에 따르면 지능형 경계감시체계는 라이다와 CCTV만으로 울타리 경계를 하기 때문에 라이다가 감지시스템 역할을 해야 한다. 2km 내외의 부대 울타리를 최소 20m를 감시하는 라이다 6대를 이용해 침입자를 탐지하고 그 위치를 CCTV가 자동 추적하겠다는 발상이다. 레이더를 사용하면 150m 이상을 충분히 탐지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시범사업에서 잘못된 방식이 걸러지지 않고 진행될 경우 향후 지능형 스마트부대로 구축될 모든 부대의 울타리 경계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설치된다. 그러면 2천5백억원 가까운 국가예산이 투입되고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운용 부대만 힘들어진 현행 GOP과학화경계시스템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이 광망 감지 방식 성능, CCTV의 운용, 라이다의 효율성 등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전문가의 시각에서 엄밀히 진단할 필요가 있다. 군은 지금이라도 광망 센서 작동 여부를 정확히 점검하고 CCTV의 좁은 화각도 실제로 확인하여 필요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라이다 도입 또한 레이더와 비교하여 CCTV를 연동할 경우 어떤 방식이 가장 나은 선택인지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