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채용 전환 속 삼성만 정기공채 유지는 이재용의 경영철학?
[뉴스투데이=김보영 기자] SK그룹이 오는 2022년 100% 수시채용 전환을 선언함에 따라 국내 4대 그룹사 중 삼성만 정기공채 기조를 유지하게 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수시채용 및 채용방식 전환에 대한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수시채용에 대해선 검토하지 않았다"면서 "(올해에도)기존 채용방식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시채용은 공개 채용시 발생하는 대규모 비용을 줄이고 빠르고 효율적인 인재 등용이 가능함에 따라 기업들이 빠르게 채택하고 있는 채용 방식이다. LG그룹과 현대차그룹은 2019년 부터 수시채용을 진행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공채 기조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투데이 취재 결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철학이 정기공채를 유지시키는 원동력으로 분석된다.
■ 패러다임 전환에 따른 신사업 및 대규모 투자로 인한 고용창출 요인 지속
삼성은 이 부회장의 패러다임 전환에 따른 신사업 및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의 2030 시스템반도체 비전 수립을 통한 반도체 육성이 그것이다. 이미 메모리 반도체 부분에서 세계1위를 기록한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1위를 목표로 한다. 올해 반도체 시장의 슈퍼사이클(장기호황)이 예상되면서 삼성전자는 생산 인프라도 확대할 예정이다.
이날 진행된 지난해 4분기 컨퍼런스 콜에서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 특성상 고객 수요의 신속한 대응을 위해 캐파 확충 검토는 늘 진행하는 일”이라며 “기흥, 화성, 평택 뿐만 아니라 미국 오스틴을 포함해 전 지역 대상으로 최적의 활용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반도체 시장의 성장과 인프라 확대에 따른 인재 영입이 필수가 됐다. 게다가 대규모 투자와 M&A(인수합병)를 앞두고 있고, 5G·AI(인공지능) 등 신사업도 확장하고 있어 이 부문에 대한 인재도 많이 필요한 상태다.
최윤호 삼성전자 CFO는 이날 컨콜에서 “(삼성전자)는 보유한 재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략적으로 시설투자를 확대하고 M&A를 추진하겠다”며 “지난 3년간 지속적으로 M&A 대상을 매우 신중히 검토해 왔으며, 이제 많은 준비가 된 상태”라고 대규모 M&A를 예고했다. 지난 2016년 하만 인수 후 5년째 대형 M&A가 부재한 상태를 탈피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옥중 메세지를 통해 “투자와 고용 창출이라는 기업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업계관계자들은 이번 투자가 대규모 거래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향후 시장 흐름을 볼 때, 관련 분야 고용 창출 및 삼성의 대거 인재 채용도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삼성이 많은 수의 인재가 필요한 만큼, 아직까지는 대규모 공채가 더 효과적이라는 분석이다.
■ ‘삼성고시’라고 불리는 GSAT(삼성직무적성검사)로 인재 변별하는 삼성, 시험 축소 어려워
‘삼성고시’라고 불리는 삼성직무적성검사(GSAT)로 인재를 변별하는 입장에선 시험을 폐지하고 수시채용으로 전환하는 것도 하나의 부담이 될 수 있다.
삼성 측은 삼성직무적성검사응시자 수를 밝히고 있지 않으나 2019년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 5만~6만명이 시험을 치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연간 10만명이 넘는 지원자가 ‘삼성고시’를 치르는 것이다. GSAT의 합격률은 약 20%이다.
삼성 입장에선 인재 변별력을 가르는 시험을 축소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대규모 지원자를 걸러내는 방법이 사실상 현재 실시되는 삼성직무적성검사 외에는 대체가 없기 때문이다. 수시채용 외에 또 다른 채용 방식 개발 및 전환은 더 큰 비용을 발생시킬 우려도 존재한다.
■ 이재용의 ‘승어부’ 과제, 일자리 창출보다 선대회장보다 많이 해야
이 부회장은 지난달 30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최후진술에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에 집중하겠다”며 “중소기업, 학계 등과 유기적으로 소통해 산업 생태계가 건강해 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승어부(勝於父,아버지보다 나음)’라는 과제를 제시했다.
'사업보국'이라는 선대의 경영철학 중 핵심이 일자리 창출이다. 이 부회장이 '승어부'를 명심하고 있다면 선대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노력하는 게 순리이다. 그게 더 나은 삼성을 이끌기 위한 중요한 경영 과제이다. 더 나은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선 4차 산업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질 좋은 일자리 창출 등이 필수적이다.
앞서 2018년 8월 발표된 180조 투자 및 4만명 채용계획을 실행해왔던 삼성은, 이 부회장의 ‘승어부’과제에 따라 앞으로도 채용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삼성은 이를 위한 내수 경기 활성화 및 협력사 상생을 위한 생태계 조성에도 본격적으로 나선다.
27일 삼성의 11개 계열사는 협력회사 물품 대금을 조기 지급하고 반도체 협력사에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3조원 규모의 협력사 지원 펀드 운영과 국내 중소기업 2500여곳의 스마트공장 전환 지원, 산학협력에 매년 1000억원 투입, 혁신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1조5000억원 규모의 미래기술육성사업도 지원한다.
여기에 삼성청년소프트웨어아카데미(SSAFY)로 청년 1만명에게 소프트웨어 교육을 제공하고, C랩 아웃사이드 등으로 청년창업을 지원하는 등 인재 육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삼성 측 관계자는 “더 많은 협력사들이 더불어 성장할 수 있게 대한민국 선두기업으로서 몇 배 몇십 배 더 큰 책임감을 갖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