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포대장② 신병 자해사건으로 드러난 충격적인 조직문화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그러던 어느날, 포대로 전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병이 ‘자해’를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해’ 사고가 발생하자 필자는 즉각 해당 신병을 병원으로 후송하도록 조치하고 대대에 초도보고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원인’ 파악 및 후속 대책을 논의하기 위하여 포대 주요 간부들을 소집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신병의 ‘자해’는 외적인 요인(부대내 구타나 괴롭힘 등)이 아닌 자기 자신의 문제였는데, 수술이 끝난 후에 사령부 헌병대에서 조사한 결과 신병 본인이 ‘세상이 살기 싫어서 자해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병사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이로 인하여 전역 조치되었다.
한편, 간부들을 소집하여 원인을 파악해보는데, 아무도 확실한 원인을 알지 못하였고 ‘구타로 인한 자해’가 아닐까하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여기서 일부 간부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발언을 하였다.
내용인즉 ‘자해 사건을 상급부대에 보고하면 각종 조사 및 후속 조치로 포대가 피곤함은 물론 간부들이 징계를 받을 수 있으니 보고하지 말고 포대 자체에서 해결하자.’ 즉, ‘포대장이 책임지고 알아서 처리해 달라(포대장이 책임을 지고 가라)’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군인이라면 절대 생각할 수 없는 그런 말들인데, 이것이 당시 일부 몰지각한 포대 간부(준사관, 부사관) 들의 사고방식이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정식 처리보다는 편법을 통하여 당장의 위기만 벗어나면 그만이라는 너무도 근시안적이고 비상식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00포대가 유명(?)하다는 것은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로 수준 이하인 줄은 몰랐다.
게다가 어느 간부는 이런 조언(?)까지 한다. ‘금년에 포대장님이 중령 진급심사 해당자라는데...(그러니 자체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하는 식으로 필자를 배려(?)해주는 듯한 말도 한다. 이쯤되면 이건 정말 ‘포대장 길들이기’이다. 그러나 당시 포대 간부들은 나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너무 황당한 필자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잠시 후에 간부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포대 자체에서 처리한다는 것은 사고에 대한 은폐이다. 설사 포대 자체 처리로 끝난다 하더라도 자해 사건은 포대원 전체가 알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정상적으로, 또 떳떳하게 포대를 지휘관리 할 수 있겠는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포대가 어떤 조사를 받고 어떤 불이익이 있더라도 그것은 포대가 강해지고 거듭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다. 나는 규정대로 처리하겠다.”
필자는 그 해에 중령 진급 심사가 예정되어 있었던 바, ‘자해 사고’가 ‘포대내 구타 등’ 악성사고로 밝혀질 경우 진급 심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명예’를 생명으로 하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로서, 또한 포대 지휘관으로서 ‘진급’ 때문에 나 자신을 속이고 포대원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는 대대장에게 사고 내용을 유선으로 정식보고 했고, 보고를 받은 대대장은 필자를 엄청 질책했다.
다음 날부터, 사령부 헌병대와 감찰실 인원들이 포대로 나와서 조사를 시작했고, 2~3주일이 지나고 상급부대에서 조사결과가 하달되었다. 결론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병 본인의 문제’로 판명되었고, 이에 따라 사령부에서는 포대에 어떤 책임도 묻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일부 몰지각한 포대 간부들은 ‘언행에 조심’하기 시작했고, 필자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후 필자는 보다 확고하게 포대를 장악하여 지휘를 할 수 있었으며, 포대장 임무를 마칠 때까지 포대에 악성 사고는 없었다.
■작전 중 '레이다 비정상' 원인도 파악 못하는 정비 준사관들
한편, 그 해에는 유난히도 북한 공군기의 비행이 많았는데, 북한기가 특정 지역에 접근하면 포대는 즉각 대비태세에 돌입하고는 했다. 이때 작전팀은 여러 가지 악조건(불만족스러운 포대의 군기, 사기 등등)하에서도 무난하게 임무를 잘 수행했다. 당시 포대 여건에서는 작전팀이 포대의 1등 공신이었고, 이들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면 2차 포대장 임무는 실패로 끝났을 것이다.
작전 수행 측면에서 상급부대로부터 원인 분석 및 대책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한번 받은 적이 있다. 즉, 작전 임무 수행중 레이다가 비정상이었던 것으로 판단(그래서 임무에 실패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되는데, 이에 대한 ‘원인 분석 및 대책’ 지시였다. 해당 작전 수행 과정을 작전 통제소 안에서 지켜보았던 필자는 대략 어떤 사항인지를 판단하였고, 작전장교에게 걱정하지 말라 하며 정비 준사관에게 관련 기술도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포대장실에서 작전 장교, 정비 준사관들과 토의를 했다. 필자는 이미 강원도 부대 시절에 유사한 경험을 했고, 이론적으로 충분히 답변할 수 있는 사항이었기에 관련 간부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고자 했다. (이것은 레이다 원리와 해당 레이다의 기술도서를 충실히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쉽게 답변할 수 있는 사항이었다.)
작전장교가 개요를 설명하고 토의가 시작되었는데,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필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모두들 소극적인 태도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들(정비 준사관)의 실력을 대략 짐작한 필자는 관련 기술도서에서 ‘원인분석’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았다. 그 부분을 보여주며 설명을 하니(레이다가 비정상이 아니었던 것을 확인함) 그제서야 작전장교, 정비 준사관들이 안심하며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자는 정비 준사관들에게 점잖게 한마디 했다. “이 사항은 레이다 정비사라면 기본적인 사항입니다. 평소에 기술도서를 보며 공부하기 바랍니다.”
정비 준사관들의 얼굴이 붉어지며 그 중 한 명이 겨우 한마디 한다. “저희는 거기까지는 몰랐습니다.” 필자가 몇 년 전, 방공포병 여단에 최초로 배치 받았을 때 그 부서의 정비 준사관이 했던 말과 왜 이리 똑같은지... 정비 준사관이 모르면 누가 알아야 하는가 ???
아무튼 포대 레이다 성능에 문제점이 없다는 분석 결과를 상급부대에 보고하였고, ‘원인 분석’은 무난히 마무리되었다.
■ 오합지졸을 이끌고 사격대회에 나가야 하다니...
그러던 중, 어느덧 초여름이 되었다. 당시 방포사령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실전적 훈련’을 강조하였고 그에 따라 전에는 시행하지 않던 훈련이 추가 되거나 또는 강조되어 시행되었다. 그중 하나가 매 분기 실시하는 야외 전개훈련이 더욱 강화되었고,
또 다른 하나가 ‘유도탄 사격대회’에 여단별로 추가로 1개 포대씩을 더 선발하여 참가시키라는 것이었는데, 그 추가 1개 포대에 우리 여단에서는 필자의 포대가 선발되었다. 이때 필자의 심정은 참으로 답답했다. 이제 겨우 포대가 안정되는가 싶었는데, 이런 오합지졸들을 지휘하여 사격대회에 가야하니... ‘산 넘어 산’이라는 표현이 이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시 00포대원의 군기나 훈련 수준을 보았을 때 현진지에서의 작전임무 수행은 가능했으나, 00사격장까지 포대 병력과 전 장비를 이동하여 유도탄 사격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수준이었다. (다음에 계속)
◀ 최환종의 프로필 ▶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