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포대장① 악명높은 '오지'에서 '오합지졸'과 만나다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할리우드 전쟁영화를 보면 가끔 특이한(?) 소재를 가지고 만든 영화가 있다. 그중 하나가 사고뭉치, 범죄자 등 군복은 입었지만 군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오합지졸로 구성된 부대가 우여곡절 끝에 강한 부대로 거듭 태어나고 임무를 완수한다는 그런 내용의 영화이다. 영화에서는 그런 과정을 낭만적이고 유쾌하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2차 포대장 임무를 수행하던 당시의 00포대가 그런 영화와 유사했는데, 영화와 달리 현실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지금이니까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2차 포대장 임무는 가혹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그러나 00포대에서의 ‘특별한 경험’이 없었다면 필자의 군 생활은 매우 평범한 생활이 되었을 것이다. 이때의 흔치 않은 경험은 필자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켰고, ‘지휘, 지휘권, 지휘관’이라는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사격대회도 끝났고, 겨울에 접어들었다. 2년에 걸친 1차 포대장 임무도 끝나가고 있었고, 이제는 다음 해에 2차 포대장을 어디로 지원할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2차 포대장 임무는 단순히 포대장 임무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2차 포대장을 수행하는 동안에 중령 1차 진급 심사가 있기 때문에 많은 심적 부담이 있었다.
2차 포대장은 중부 전선의 00포대(여러가지 목적상 00포대라 칭하겠다)로 결정되었다. 이 포대는 필자가 임관 후에 배치되었던 강원도 부대와 유사한 지형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 말은 작전 임무 수행 뿐 아니라 폭설, 혹한 등 자연과의 싸움도 같이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2년 여간 정든 포대원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며 포대장 이취임식을 마쳤다. 그동안 너무 정들어서 그랬을까, 이임사를 끝까지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후, 소속이 변경됨에 따라 해당 여단장 및 대대장에게 보직 신고를 하고 2차 포대장 임무를 수행할 포대로 향했다.
한편, 2차 포대장 임무를 수행할 이 포대는 방포사에서 육군 시절부터 유명한(?) 포대인데, 긍정적으로 유명한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이미지로 이름 있는 포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유명하면 얼마나 유명하겠어?’, ‘한번 부딪쳐 보자’하는 심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필자는 정말 자신만만했다.
포대에는 밤늦게 도착했고 ‘비어 있는 숙소’에서 첫 날 밤을 보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숙소 밖에 나와서 포대 전체를 바라보는데 필자의 몸과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 매우 좋지 않았다. 마치 사지(死地)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금년에 중령 진급은 고사하고, 포대장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내가 물리적으로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임하는 포대장과 인수인계 절차를 진행했다. 이 장교는 육군에서 전군한 장교로서(임관 년도가 필자보다 3년 정도 늦은 장교로 기억한다) 한시라도 빨리 00포대를 떠나고 싶은 눈치였다. 얼마나 힘들었기에 그랬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포대장 이취임식 다음 날부터 그 심정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필자는 취임식이 있던 날 저녁부터 약 보름간 부대 대기를 하면서 부대 현황을 파악했다.
당시 포대원 구성은 군산 포대와 유사하게 장교, 병사는 모두 공군에서 임관 및 신병 교육을 받은 자원들이었고, 준사관과 부사관은 90% 정도가 육군에서 전군한 자원들이었다. 그러나 포대원들의 자질은 군산 포대원과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오합지졸’이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취임식 다음날 아침, 야간 당직사관에게서 야간 근무 결과를 보고 받았다. 그런데, 첫 날 부터 야간에 ‘병사간 구타’가 있었음을 보고한다. 당직사관은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러나 이런 일은 이 부대에서는 가끔 있다는 식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보고를 한다.
서두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 포대는 육군 시절(또는 미 육군 시절)부터 유명했는데, 각종 사고사례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언젠가 어느 육군 부대에서 문제가 되었던 ‘소대장 길들이기’가 이 포대에서도 육군 시절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필자가 부임할 당시의 부대원 중에는 타 부대에서 처벌 받거나, 업무 미숙으로 방출된 자원이 적지 않았는데(전 계급에 걸쳐서),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공군 내에서 심각한 행위로 처벌을 받으면 00포대로 보낸다’는 것을 거의 당연하게 생각하던 때였다.
첫날부터 ‘구타’ 보고를 받은 필자는 곧바로 지시했다. “대대에 정식 보고하라!” 그러자 당직사관이 당황해 한다. “네???” 그 물음에는 포대장 취임식 후에 업무 시작하는 첫날인데 ‘구타 사고’를 상급부대에 보고해도 되느냐는, 마치 신임 포대장을 생각해주는 그런 배려(?)가 있는 물음이었다. 순간 필자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첫날부터 포대장 길들이기를 하는가?’
다시 강조해서 지시했다. “대대장에게 정식 보고할 테니, 행정 계통으로도 정식 보고하라.”, “네, 알겠습니다!.......”
아침 지휘보고 시간에 대대장에게 일반 현황을 보고한 후, 어제 야간에 포대에 ‘병사간 구타가 있었음’을 보고했다. 그러자 대대장은 어떻게 포대장 부임 첫날부터 그럴 수 있느냐며 질책을 한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구타 등의 불군기 행위는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다시피 했고, 그때마다 정식 보고를 했다. 대대장은 그때마다 질책을 아끼지 않았고, 이에 필자는 “이것도 포대 전통(?)인 것 같다. 조속한 시일 내에 평정하겠다.”고 보고했다.
당시 필자가 판단한 00포대의 군기, 사기 등은 매우 불만족스러운 상태였는데, 필자가 대대장에게 ‘조속한 시일 내에 평정하겠다’고 보고한 것은 군기, 사기를 정상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의미였다.
크고 작은 불군기 행위가 자주 발생하다보니, 포대장 입장에서는 작전 임무 수행하랴, 병력 관리하랴, 전반적인 부대 관리하랴 정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게다가 부임한 시기는 혹한기였다. 다행히 그 해에는 폭설이 별로 내리지 않았지만, 보통 영하 20도 내외의 강추위 속에서 작전장비 관리는 물론이고 병사들의 동계 피복이라던가 내무실 난방, 차량 관리, 급수관 관리 등등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시의 병력 구성, 간부들의 사고방식(또는 수준), 자연 환경 등으로 볼 때, 00포대는 포대장이 만기친람(萬機親覽) 식의 부대관리를 할 수 밖에 없는 부대였다. 덕분에 필자는 부대 지휘에 따르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무협지 표현을 빌리자면) ‘2차 포대장 임무 수행 기간 중 심각한 내상’을 입어서 2차 포대장 임무 종료 후에 ‘내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한동안 고생을 했다.
병력관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지속적인 정신교육과 신상필벌 등을 통하여 부대관리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부임 후 약 2개월 정도가 지나면서부터 포대내 불군기 행위는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포대는 비교적 안정되는 듯이 보였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왠지 모를 불안감이 지속되었다. 그런데... (다음에 계속)
◀ 최환종 장군의 프로필 ▶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