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전쟁사(69)] 언어 장벽을 넘은 연합작전과 불사신의 곡예를 보여준 노리고지 전투(중)
김희철 칼럼니스트 입력 : 2020.12.09 19:52 ㅣ 수정 : 2020.12.10 09:40
협소한 공간에 과다한 부대투입은 회피하나 방어에 발판이 확보의 필요성 대두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노리고지 전투 당시 11연대 3대대장이 수립한 공격작전의 목표는 소노리와 대노리를 탈취하는 것이었다. 증강된 1개 중대 규모를 투입하되 양개 목표에 최초 1개 소대씩 배당하고 상황 진전에 따라 예비소대를 후속 투입하기 위한 준비를 갖춰 대기하도록 계획했다.
대대장은 협소한 공간에 과다한 부대투입은 회피해야 한다는 점과 방어에 발판이 되고 있는 노리고지 확보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사단장의 승인을 얻어냈다.
■ 불사신 곡예를 보여준 초인적인 전사 최종인 소위와 박관욱 일병
첫 번째로 불사신 곡예를 보여준 전사는 무서운 정신력을 지닌 1소대 소대장 최종인 소위였다. 적의 집중포화와 수류탄 세례에 직면하여 공격이 좌절될 즈음 최종인 소위를 비롯한 1소대는 소노리를 우회하여 쏜살같이 대노리 고지에 전진하여 돌격선에 도달했다.
당시 중공군은 소노리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 1소대의 접근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소대는 1시간 만에 경미한 적의 저항밖에 받지않고 대노리 고지에 대공포판을 설치하는데 성공했다.
다음은 9중대의 활약이었다. 12월 13일 동이 트자 목표에 돌진해 들어간 9중대는 백병전 끝에 적병 36명을 사살하고 2명을 생포하면서 드디어 소노리 탈취에 성공했다.
그런데 최고의 결정적 상황으로 10중대의 중앙 1소대에서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났다. 대노리를 향해 공격 중이던 10중대는 능선에 도달하였으나 적의 진지를 돌파하지 못하고 돈좌(기세 따위가 갑자기 꺽임)되고 말았다.
이렇게 좌절하려는 그 순간 7부능선에 엎드려 있던 한 명의 병사가 불현듯 일어나 재빨리 고지 정상으로 뛰어올라가 고지 너머에 대고 사격을 퍼붓고 나서, 뒤의 아군을 향해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이때 좌측방 닉키고지의 적이 기관총 사격을 가해오자 그 병사는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 병사는 다시 일어나 원위치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다시 한참을 엎드려있던 그 병사는 재차 일어나 전과 동일한 행동을 되풀이하며 고지 정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적은 측방과 후방에서 동시에 집중사격을 가해왔는데, 병사는 또 쓰러졌다. 대대장은 "이번에는 정말 죽었구나"하고 체념했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병사는 다시 일어나 제자리에 돌아왔다.
'불사신의 곡예'라고 할 정도로 당돌하고 대담무쌍한 용맹스러운 병사의 행동은 피아불문 숨을 죽이고 관람하는 이른바 한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당시 연대 관측소( OP)인 264고지에 있던 미 제1군단장 켄덜(John W. Kendall)중장은 그 병사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안절부절 하다가 "나의 군대생활 30여년에 저렇게 용감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 저 병사는 초인이다. 한국 군인은 강하다."라고 감탄했다고도 전해진다.
그 불사신의 전사는 11연대 10중대 1소대 2분대의 자동소총수 박관욱 일병이었다.
■ 이미 전사한 것으로 보고된 수색중대 1소대장 황병식 상사의 소노리고지 전투
한편 여러 차례의 공방전 끝에 많은 병력이 손실돼 11연대 수색중대가 공격 작전에 추가로 투입됐다.
너무 작아서 밥풀고지라고 곳에서 출발했는데 노리고지까지는 300m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그 사이는 완전히 벌판이라 그대로 가면 적에게 노출되고 마는 불리한 입장이었다.
수색중대의 3개 소대는 야음을 이용하여 일단 고지 밑까지 접근한 다음 1소대는 소노리를, 2·3소대는 대노리 고지를 공격했다.
황병식 상사가 지휘한 1소대는 소노리 고지의 교통 호를 타고 나가다 적의 포격을 만나 모두 전사하고 생존한 10명이 계속 전진해서 대노리 고지 우측으로 도달했다.
날이 밝았는데도 포격으로 먼지와 포연이 하늘을 덮어 좌우조차 분간할 수 없는 상황 이었지만 동굴 속에서 저항하는 적들에게 수류탄을 넣어 폭사시키고 올라가 굴속을 향해 “손들고 나와라..!”라고 소리를 치니까 아군 무전병 2명이 손을 들고나왔다.
알고 보니 이 고지 쟁탈전 중 후퇴를 못한 채 동굴속에 남았던 아군이 워낙 깊고 캄캄하니까 서로 분간을 못하고 중공군과 함께 이때까지 지낸 거였다. 이 동굴을 점령하고 인원을 확인해보니 소대장 황병식 상사를 포함해 4명밖에 안 남았다.
대노리 고지 좌측을 공격한 2, 3소대는 거의 전멸한 상태였다. 오전 10시쯤 되니까 중공군이 맹렬히 반격했는데 이때 생존 전우 3명과 같이 동굴 속에 들어가 방어를 했다. 수색중대 1소대장 황상사는 추가로 투입돼 고지로 올라온 2대대 6중대장 정대선 대위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고 12시쯤 내려왔다.
전사자들을 처리하고 있는 밥풀고지에 오니까 황상사는 이미 전사한 것으로 보고가 돼 있었다. 중공군은 물론 우리의 몇 배가되는 전사상자를 냈지만 11연대 수색중대가 거의 전멸되고 만 것은 너무도 처절한 희생이었다.
연대 수색중대와의 치열한 접전에서 전투력이 약화된 중공군은 임무를 교대해 올라온 6중대 전우들에게는 저항도 전혀 못한 채 참패를 당하고 퇴각했다. (하편계속)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