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종의 공군 이야기 (34)] 조종사 자격증 시험③ 군산포대장 부임전 아내와 함께 비행을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0.10.02 09:37 ㅣ 수정 : 2020.11.21 16:04

한국 조종사의 점검표 외우기, 미국 시험관에겐 불만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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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지정된 공역에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왔다. 부드럽게 착륙을 하고 난 후에 유도로로 접어들면서 몇 가지 계기 점검을 했다. 이때는 모든 비행이 끝났으므로 여유를 가지고 점검표를 보면서 하나하나 점검을 했다. 이때 시험관이 ‘바로 그거야’ 하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 것이다.

 

시험관 얘기의 요점은 "당신이 비행은 잘 하는데, 각종 점검이나 시동을 걸 때 등등 전혀 점검표를 안보고 하더라. 한국 조종사들이 외워서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사람이 외워서 하다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는데, 비상절차를 제외하고는 지금과 같이 반드시 점검표를 보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하기 바란다." 그리고는 필자에게 "조종사가 된 것을 축하합니다!"하며 악수를 청했다. (그제서야 공중에서 뭔가 불만족스러하던 시험관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그 ‘점검표’ 때문에 불합격이 되었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비행중 멀미하는 아내(아내의 자존심을 고려하여 눈 주위를 검은색으로 처리했음). 예당 저수지 상공, 자동 카메라로 왼손으로 촬영했다 [사진=최환종]
 

시험관과 악수를 하는 순간, 하와이에서 그동안 쌓였던 긴장과 피로가 풀리면서 표현하기 어려운 뿌듯함과 만족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중등 비행 훈련 이후로 늘 필자의 마음 한구석에 있던, 마무리 하지 못한 숙제를 작은 부분이나마 이제서야 마무리 한 느낌이었다.

 

비행 클럽의 대표와 교관들이 축하의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는 교관들과 같이 늦은 점심을 같이 했다. 그날 저녁에는 그동안 친하게 지낸 젊은 비행교관과 같이 처음으로 호놀룰루 시내와 와이키키 해변을 돌아보았는데, 일몰 이후라 특별히 볼 것은 없었다.

 

비행교관과 간단하게 맥주 한잔 하고는 인근 상점에서 아이들에게 줄 선물로 작은 곰 인형을 구입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다음날 귀국할 준비를 했다.  (이때 화와이에서 비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미국에서 조종사 자격증 취득은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 것과 같이 상당히 대중적이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상대적인 개념이지만... )

 

■군산 포대장 부임 직전에 자가용 비행기 '첫 승객'으로 아내를 모셔

 

다음날 귀국 후,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고, 군산 포대장 부임일자는 다음해 1월 중순으로 하달되었다. 한편, 군산 포대장으로 부임하기 이전에 아내에게 군산 비행장과 포대, 비행장 안에 있는 포대장 관사를 보여주고 싶었다. 12월 중순의 어느 주말, 오산 비행장의 비행클럽에서 Cessna-152를 빌려서 아내를 조종석 우측에 태우고 군산까지 비행을 했다.

 

필자가 자가용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 아내가 필자의 첫 승객인 셈이었다. 그날 기상은 대체로 양호했으나 시정이 다소 좋지 않았고, 경로상에 약간의 난기류가 있어서 하와이에서와 같은 상쾌한 비행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내는 이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멀미 증세를 보이며 돌아가자고 한다. 귀밑에 멀미 방지약까지 붙였는데도...

 

아내가 힘들어 함에도 불구하고 이때가 아니면 언제 아내와 같이 비행을 할까 싶어서, 그리고 군산 비행장과 포대를 언제 공중에서 보여줄 기회가 있을까 싶어서 비행을 계속했다.

 

그날 비행을 하면서 아내는 멀미 때문에 너무 고생을 했고, 그래서 다시는 작은 비행기는 안타겠다고 불평을 했다. (아내의 심한 멀미 때문에 이날 이후로 아내와는 비행을 하지 못했다. 큰 아이도 소형 비행기는 무섭다고 해서 같이 비행을 못했고, 필자와 같이 비행을 즐기는 가족은 둘째 아이 뿐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필자는 가끔 아내와 동기들에게 자화자찬을 했다. “대한민국 공군 장교 중에 아내를 옆에 태우고 비행한 장교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오공'과 '육공' 갈등의 서막이 열리다

 

해가 바뀌었고, 1월 중순이 되었다. 군산 포대장 부임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필자는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고자 머리 스타일을 짧은 스포츠형으로 바꾸었다. 바짝 깍은 필자의 머리 스타일을 본 과장님 이하 선배 장교들이 ‘각오가 좋구만’하며 웃는다. 짧은 머리 스타일을 처음 본 아내와 아이들도 신기해한다.

 

공군본부 임무 종료 며칠 전, 처장님 주관으로 필자의 환송회식이 있었고, 선배 장교 모두들 필자의 무운장구를 기원했다. 며칠 후, 방공포병사령관과 여단장에게 보직 신고를 마치고 대대본부로 향했다. 사령부, 여단, 대대가 각각 다른 지역에 있어서 이동 소요가 만만치 않았다.

 

대대본부에 도착해서 대대장에게 보직 신고를 한 후, 대대장(육군에서 전군한 장교, 중령)은 필자와 차 한잔 하면서 포대 관리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포대장 임무를 잘 수행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가 핵심인데, 대화 내용에는 ‘유도탄 포대 근무 경험이 없는데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 기고문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당시만 해도 ‘육공(육군에서 공군으로 전군한 자원)’ 장교들이 ‘오공(오리지날 공군)’ 장교들을 은근히 무시하던 때이다. 즉, ‘대공포만 다루었던 오공 장교들이, 비행장에서 편하게만 생활하던 오공 장교들이 유도탄 부대에 잘 적응하고 잘 지휘할 수 있겠는가?’하는 육공 장교들의 오공 장교에 대한 왜곡되고 편협한 시각이 적지 않게 있었다.

 

실제로 한 두 명의 ‘오공’ 장교들이 유도탄 포대장으로 부임한 이후, 부대관리(지휘) 및 자기관리를 잘못하여 보직해임을 당한 사례가 있었다. 군산 포대의 전임 포대장 중에도 그런 장교가 있었던 지라, 대대장이 염려했던 것은 이해가 갔다. 그러나 그것은 보직해임 당한 당사자의 문제이지 공군 장교 전체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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