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우주개발 성공 조건, 선장에게 키를 맡겨라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부터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편집자>
■ 비닉 사업인 국방 우주개발, 과기부의 ‘우주개발진흥법’ 통제 받아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7월 28일 부로 ‘한·미 미사일지침’이 개정돼 이제 우리나라도 우주발사체에 고체연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향후 민간 우주개발은 물론 국방 우주개발도 크게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8월 우주전 통합전투사령부로서 우주사령부를 재설립(1985년∼2002년 간 최초 설립)했고, 이어서 12월 20일에는 독립된 군으로서 우주군을 공식 출범시켜 존 W. 레이몬드 공군대장이 초대 참모총장으로 취임했다. 이렇듯 우주 영역 자체가 이미 새로운 전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우주의 지원 없이 군사작전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국방우주 분야는 감시정찰과 통신, 항법 등을 위한 군사위성의 구축은 기본이고, 우주에 배치된 우리의 자산을 보호하면서 필요시에는 선제 조치를 통해 우주의 위협 요인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각종 우주무기 개발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국방 우주개발은 민간 우주개발과 달리 공개되면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쳐 외교적 마찰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비닉(秘匿)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국방 우주개발은 2005년 당시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가 국정원의 지원을 받아 제정한 ‘우주개발진흥법’의 통제를 받고 있다. 즉 군사위성 개발도 과기부의 통제를 따라야 한다.
■ 425 사업, 국방부가 주관하되 관계부처와 협의해 추진하도록 법 개정
이와 같은 문제를 인식한 19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송영근 의원(예비역 육군중장, 전 국군기무사령관)은 순수한 국방예산으로 군 정찰위성을 개발하는 ‘425 사업’을 과기부가 아닌 국방부가 주관할 수 있도록 2014년에 법 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 국정원이 관여하면서 국방부가 주관은 하되 ‘관계부처와 협의하여 추진’하라는 단서 조항이 삽입된 개정안으로 최종 타협이 이뤄졌다.
425 사업은 고성능 영상레이더인 ‘사’(SAR)와 전자광학장비인 ‘이오’(EO/IR)를 탑재한 군 정찰위성을 확보하는 사업으로서, ‘사’와 ‘이오’를 숫자 ‘425’로 표기해 사업 명칭을 만들었다. 이 사업은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조 2,214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SAR 위성 4기와 EO/IR 위성 1기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과기부와 국정원은 개정된 법에 근거한 관계부처 협의 과정에서 425 사업이 군의 방위력개선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사업기본전략과 관련 계획 등을 국방부 장관이 주관하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 대신 과기부 장관이 주관하는 국가우주위원회에 상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워 사업 착수가 기약 없이 지연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 국정원, 정찰위성 운영권 두고 이견 주장해 사업 착수 지연 초래
국정원이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일부 언론의 보도로 드러났듯이 과기부가 군 정찰위성 개발을 주도해야 국정원이 위성의 운영권을 차지할 수 있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2016년 초에 정찰위성 확보의 시급성을 인식한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나서서 국정원을 설득함으로써 국방부가 획득절차에 따라 425 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관계부처 간 합의각서가 체결됐다.
이로 인해 국방부는 425 사업의 추진 동력을 얻었지만 이후에도 감사원까지 가세하여 계속 관여함으로써 2015년 착수 예정이던 사업은 2018년 말에야 착수됐다. 당시 감사원은 이례적으로 착수 이전인 425 사업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고 국정원 주장과 거의 동일한 내용들을 지적하면서 자료 제출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20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중로 의원(예비역 육군준장, 전 70사단장)이 2018년 초에 국방부가 독자적으로 개발을 추진할 수 있도록 ‘군사위성의 개발 및 운용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법제화되지는 못했다.
■ 현행 법규상 군사용 우주발사체와 우주무기까지 모두 과기부 주관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향후 위성개발 과정에서도 관계부처 협의를 이유로 국정원의 관여가 지속된다면 불필요한 행정 낭비와 사업진행 지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국방부가 425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는 이유는 현행 법규에 군사위성은 물론 군사용 우주발사체와 각종 우주무기들까지 모두 과기부가 주관하도록 규정화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 국방 우주력 발전을 향한 국가적 열망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국방부가 주도적으로 국방우주 분야를 추진해 나가도록 우주개발진흥법을 완전히 개정하거나, 국방 우주개발에 관한 새로운 법령을 제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처 간 소모적 논쟁으로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 생기지 않고 국방부가 획득절차에 따라 국방 우주개발을 추진할 수 있다.
아울러 국방우주 분야는 민간 분야와 달리 수출 통제 문제가 있어 핵심부품의 국산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 분야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과기부가 지난 30여년 동안 위성 개발에 4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대부분 해외업체에 지불하고 국내업체는 외면해 국내 우주산업 기반이 아직도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 국내 우주산업 기반 취약…과기부·국방부 함께 협력해야 극복 가능
그는 “핵심부품의 국산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원천적으로 우주무기의 개발이 불가능하므로 국내 우주산업의 취약한 기반은 향후 국방 우주력 구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면서도 “과기부와 국방부가 이른바 ‘2-Track’ 전략으로 민간과 국방 분야의 우주개발을 추진하면서 중복투자 방지와 시너지 효과 창출을 위해 상호 협력하면 극복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우리나라의 방위산업이 지난 50년 동안 국내의 척박한 환경을 딛고 일어서서 오늘날 세계 무기 수출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듯이, 425 사업을 시작으로 향후 각종 국방우주체계들도 이러한 방위사업 모델을 적용하여 개발하게 되면 국내 우주산업체의 역량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우주 분야는 인류의 새로운 경제 영역이자 미래 전장으로 점차 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부처 이기주의나 밥그릇 싸움 때문에 우주 개발이 더 이상 지체되어선 안 된다. 이제 국가적 우주개발 역량을 국방과 민간이 균형 있게 향상시켜 우주 분야에서도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준비를 서둘러야 할 때라는 의견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