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손자병법(孫子兵法)의 허실편(虛實篇)에 나오는 ‘선전자 치인이불치어인(善戰者 致人而不致於人)’이란 말은 “용병을 잘하는 자는 적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적에게 조정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형인이아무형 즉아전이적분 (形人而我無形, 則我專而敵分)’이란 “적은 형체를 드러내 보이나 우리가 실제로 형체가 보이지 않게 하면, 우리는 집중할 수 있고 적은 분산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 심야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불길한 소식의 신호탄
1987년 7월 어느날, 작전장교의 폭주하는 업무 속에 지쳐 깊은 꿈속에 빠져있던 심야에 아파트 숙소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하지만 잠이든지 몇시간도 안되는 시점이라 전혀 들리지 않았다.
가족이 놀라 필자를 흔들어 깨웠다. 졸린 눈을 비비며 수화기를 들자 당직 근무자의 전달에 눈이 번쩍 뜨여지며 토끼 눈이 됨과 동시에 주섬주섬 군복을 입으며 통화를 했다.
잠시 후 사단 상황실에는 사단장을 위시하여 모든 참모들이 모였다. 당직 근무자가 GOP 철책에서 초병근무 후 복귀하던 이진수 일병이 막사 앞에서 총기를 난사해 수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무장 탈영한 후 도주하여 행방이 묘연하다는 보고를 했고 이미 강화된 대침투작전 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상태였다.
이어 정보참모가 도주 가능 거리를 분석해 보고했고, 현장에는 연대의 정보분석조와 헌병 및 군의관 등이 이미 도착하여 사고 조사와 응급 조치를 하고 있었다. 또한 연대 자체 병력으로 차단선을 형성했다는 연대장의 상황조치 보고도 있었다.
무장 탈영한 이 일병의 도주 거리를 고려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참모들과 대책을 논의하던 김관진(육사 28기) 작전참모는 참모장과 상의 후, 신속하게 GOP 전초대대 상황실에 사단 전술지휘소를 설치 운용할 것을 민찬기(육사 16기) 사단장에게 건의했다. 그리고 각 연대장들에게 전화하여 기상과 동시에 가용 병력을 직접지원 포병부대의 포차를 활용하여 GOP 작전지역으로 이동시킬 것을 지시했다.
■ GOP철책 경계를 강화시키고 봉쇄선을 3단계로 형성하여 도주로 차단
가장 크게 우려되는 최악의 상황은 무장 탈영한 이 일병이 GOP 철책을 넘어 월북하는 것과 도심으로 빠져나가 일반 시민들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전방의 사단전술지휘소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작전참모는 단편명령 작성을 지시했다. 필자는 그동안에 작전참모가 각 부대에 지시했던 사항들을 되씹으며 단편명령서 초안을 구상했다.
전초대대 상황실에 도착해서 바로 책상에 앉아 초안을 작성하는데 참모의 독촉이 심해졌다. 결국 참모는 필자에게 다가와 작성 중인 초안을 보더니, 본인이 필자의 자리에 앉아 GOP 철책 경계를 강화시키고 봉쇄선을 3단계로 형성하여 도주로를 차단하라는 단편명령 초안을 직접 작성하여 필자에게 전해주며 신속하게 타자를 쳐서 사단장 결재 후 전문으로 하달하라고 지시했다.
필자는 창피했다. 사단작전장교이면서 단편명령서도 신속하게 제대로 작성 못해 참모가 직접 초안을 작성하게 만들어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참모가 직접 작성한 덕분에 시간이 단축되어 아침에 각 연대 병력들이 작전지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단편명령은 하달되었다.
이에 따라 포병부대 차량을 활용해 이동한 부대들을 신속하게 GOP 철책 무명고지 총기난동 원점지역을 중심으로 먼저 연대 자체 병력이 이미 운용된 차단선을 기준으로 1봉쇄선을 선정 배치하였다. 또한 원점을 중심으로 식별이 용이한 도로를 따라 2봉쇄선을, 민간인 통제선을 연하는 지역에 3봉쇄선까지 작전배치를 완료했다.
그리고 인접 및 후방부대에도 차단선 형성과 함께 검문 검색 및 주민신고를 강화하도록 협조했다.
이것은 손자병법(孫子兵法)의 허실편(虛實篇)에 나오는 ‘선전자 치인이불치어인(善戰者 致人而不致於人)’이란 말처럼 무장 탈영한 이진수 일병이 마음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작전부대가 그에게 조정 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마음대로 조정하려는 의도였다.(하편 계속)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