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22)] K11 복합형 소총, 계약 해제 말고 다른 해결책 있었다

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0.08.20 08:44 ㅣ 수정 : 2020.08.20 10:02

방사청이 ADD의 설계상 결함 인정하고 ‘합의 해제’ 등 방식 취했다면 진화적 발전 모색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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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부터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세계 최초로 개발된 국산무기이지만 양산사업 과정에서 국방과학연구소의 설계상 결함이 드러나면서 사업이 좌초된 K11 복합형 소총. [S&T모티브 홈페이지 캡처]
 

방사청, 연구개발 주관한 ADD 대신 업체에 모든 책임 떠넘겨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이 지난해 12월 K11 복합형 소총 양산사업을 중단시킨데 이어, 지난달 31일 이 사업의 계약상대자인 ‘S&T모티브’에 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연구개발을 주관한 국방과학연구소(ADD) 대신 시제품을 제작한 업체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조치다.

 

이에 따라 방사청은 지난 3일 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 계약보증금 1039억여원을 청구했고, 4일에는 S&T모티브에 초도 양산한 914정의 물품대금 약 162억원과 나머지 계약물량인 3264정 생산을 위해 지급했던 착·중도금 250억여원의 납입을 고지했다.

 

방사청이 밝힌 계약 해제 사유는 S&T모티브가 계약물량 4178정 중 3264정을 납품기한 내에 납품하지 못했고, 납품된 물량 914정 또한 품질 및 안전문제 미해결로 사고발생 위험이 상존하는 등 운용개념 미충족으로 계약 목적 달성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ADD 주관으로 1998년부터 개념연구에 들어가 2006∼2008년 개발시험 평가와 운용시험 평가를 거쳐 2009년 연구개발이 완료된 K11 복합형 소총은 양산사업 과정에서 연구개발 당시 확인되지 않은 설계상 결함들이 나타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실패한 사업으로 남게 될 처지에 놓였다.

 

양산사업 과정에서 두 차례 폭발사고와 사격통제장치 균열 등이 나타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이루어진 30여 차례의 설계 변경과 양산 적용 과정에서 K11 복합형 소총 사업은 지체됐다. 이와 같은 기술 변경을 거친 다음 체계 수락검사가 진행되던 2018년 7월 악작용이 발생했고, 이후 방사청과 국방기술품질원(이하 기품원)은 품질보증 활동을 중단했다.

 

ADD 설계상 결함 공식적 확인…기품원·감사원·법원도 인정

 

K11 복합형 소총은 ADD가 연구개발을 주관한 사업이다. 이 경우 ADD가 탐색개발 및 체계개발의 주체가 되어 제반 개발업무를 수행하고 최종 결과물에 대한 책임도 부담하게 된다. 참여 업체는 ADD가 요구하는 설계대로 시제품을 제작해 납품하고 ADD의 연구개발 활동을 지원하는 보조적 역할을 수행한다.

 

게다가 이미 사격통제장치와 관련해 발생한 문제의 원인은 ADD가 수행한 체계개발 과정에서 소재 선택의 한계와 내구성 개발기준(사격충격값) 설정 미흡 등 설계상 결함이란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기품원과 감사원 그리고 법원도 이를 인정했다.

 

실제 감사원은 지난해 9월 ‘K11 복합형소총 사업’ 추진실태 감사 결과에서 사격통제장치 균열 등의 문제점들은 ADD 주관으로 수행된 설계상 결함이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법원 역시 양산계약의 납품 지체는 설계상 결함에 기인하므로 설계대로 제조해 납품해야 하는 업체의 귀책이 없다는 이유로 방사청이 업체에 부과한 지체상금 전액이 부당하다고 최종 판결했다.

 

특히 이번 감사는 국회 국방위원회의 감사 청구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서, 감사원은 방사청 업무 담당자들이 초도와 후속 양산물량을 구분하지 않고 4178정 전량을 통합 구매계약한 부분과 전력화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공중폭발탄 전량(750억여원)을 구매한 부분을 지적하면서 인사자료에 활용하도록 조치했다. 

 

상세설계 담당한 업체 책임 있어 vs. 업체가 임의로 설계 못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사청은 기본 설계를 ADD가 했지만 상세설계는 업체가 담당했으므로 설계상 결함에 대한 책임이 업체에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균열의 근본적 원인은 ADD가 사격충격값을 잘못 설정해 충격 내구성을 갖출 수 있는 소재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기품원도 이 사실은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업체의 상세설계 도면은 ADD의 검토 및 승인 하에 국방규격 도면으로 완성됐으며, 이 과정에서 업체가 임의로 설계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즉 업체는 ADD가 제시한 기본설계 방향에 따라 상세설계를 했고, 2010년 12월 방사청은 연구개발 단계의 설계상 결함으로 불량이 발생하면 양산업체는 면책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양산사업 중단의 원인은 ADD 주관으로 수행된 체계개발 단계에서 설계상 결함으로 인한 것이어서 귀책사유가 ADD에 있는 것이지 업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업의 계약 일반조건을 보면, 계약상대자의 귀책사유가 명백해야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방사청은 업체가 기한 내에 납품하지 못했고, 운용개념 미충족 등을 사유로 계약을 해제한 것이다.

 

문제 개선돼 시제품 새로 만들어…개발 기술 활용할 방법 찾아야 

 

방사청이 이렇게 조치한 배경에는 ADD 책임을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 업체에 지급한 금액은 물론 업체가 양산 이행을 위해 사전에 부품과 소재를 구입하는 등 준비에 투자한 비용까지 모두 물어줘야 할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 사업 실패의 책임과 비용을 감당하지 않기 위해서 업체에 책임을 일방적으로 전가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K11 복합형 소총 사업은 계약 해제 외에 다른 해결책이 없었을까? 사격통제장치 균열은 소재 선택의 문제로 ‘피크’를 ‘알루미늄’으로 바꾸면 얼마든지 보완이 가능하다. 여타 제기된 문제들도 대부분 개선돼 이를 적용한 소총 시제품까지 새로 만들어져 있다. 여러 나라에서 구매의사도 표명해 양산에 성공하면 K9 자주포에 이은 대표적 수출품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계약 해제로 이 사업을 정리한 것이다.

 

안타깝지만 계약 해제 외에 방법이 없었다면, 방사청이 ADD의 설계상 결함을 인정하고 업체에 양해를 구해 최소 비용을 보전하는 선에서 합의를 보는 ‘합의 해제’ 방식을 취하는 것은 어땠을까? 이것이 어렵다면, 객관적으로 명백한 발주기관의 불가피한 사정이 발생한 때 적용하는 ‘사정 변경에 의한 계약 해제’ 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수는 없었을까?

 

이런 방식들은 적어도 ADD의 설계상 결함을 방사청이 솔직히 받아들이고 비용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책임을 인정하는 시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양산사업은 비록 중단되더라도 그동안 개발한 기술을 사장시키지 않고 새로운 사업으로 진화적 발전을 모색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정부, 명분과 실리 모두 잃어…업체, 생존 위해 정부와 소송해야

 

연구개발의 어려움을 감안해 방사청은 지난 2017년 방위사업법에 ‘성실한 연구개발 수행의 인정’ 조항을 신설했고, 문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ADD를 방문한 자리에서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 분위기를 만들어달라고 특별히 주문했다. 이런 환경에서도 방사청은 ADD의 책임을 면하고자 업체가 잘못하여 양산사업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사업의 내막에 정통한 한 방산 전문 변호사는 “모든 귀책사유를 업체로 돌리려는 방사청의 무책임성과 무모함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체상금 소송 판결에서 업체 책임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됐다”며 “결국 업체들은 소송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을 찾을 수밖에 없고, 개발된 기술은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고 안타까워했다.

 

K11 복합형 소총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문제도 식별됐고 관련 기술도 거의 개발돼 보완이 이루어진 상태다. 이제 방사청을 중심으로 ADD와 업체가 뜻을 모으면 세계 최초의 복합형 소총이 조만간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정부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고, 방산업체는 생존하기 위해 정부와 소송해야 하며, 개발된 기술은 사장될 위험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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