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에 AI 터 닦은 ‘딥 체인지 용인술’의 3가지 특징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시대의 ‘비즈니스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기존의 제조업 기반을 고도화시키는 한편 인공지능(AI), 플랫폼비즈니스(Platformbusiness), 모빌리티(Mobility), 시스템반도체 등으로 전선을 급격하게 확대하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를 선점함으로써 글로벌 공룡기업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대기업 특유의 ‘강력한 총수체제’는 이 같은 대전환을 추동하는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주요 그룹 총수별로 ①패러다임 전환의 현주소, ②해당 기업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③전환 성공을 위한 과제 등 4개 항목을 분석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새로운 가능성을 진단하고 정부의 정책적 과제를 제시한다. <편집자 주>편집자>
[뉴스투데이=이원갑 기자] SK그룹 내에서 SK텔레콤이 일으킨 ‘패러다임 전환’은 이동통신 사업으로 전격 진출한 데서 끝나지 않고 인공지능(AI) 산업으로 계속 이어진다.
첫째, AI 사업 진출 자체가 최태원 SK 회장의 ‘딥 체인지’ 이념에 충실한 패러다임 전환이다. 기존에 시도한 적 없던 사업영역인 점, 이에 따라 과감한 투자를 집행한 결과물이라는 점은 SK텔레콤의 이동통신업 진출과 공통된 혁신적 요소이다.
에너지 사업이 주력이었던 시절에 SK그룹이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했듯이, 주력사업을 따로 갖고 있는 SK주요계열사들이 AI라는 신사업 추진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지난 2014년 삼성전자 부사장 출신 AI 전문가인 이호수 사장(현 SK텔레콤 고문)을 SK그룹 SUPEX추구협의회 ICT기술전략담당 사장으로 영입하고, 이듬해에는 SK C&C(현 SK주식회사 C&C)의 ICT R&D센터장 사장으로 기용하면서 AI 개발투자를 본격화했을 때도 C&C의 주력 사업은 AI가 아닌 시스템통합(SI) 소프트웨어였다. 2017년 SK텔레콤이 조직개편을 통해 AI 사업단을 새로 만들었을 때도 그 해 1분기 기준 이통사업 매출이 전사의 63.43%를 차지했다.
그러나 "꼬리(AI)가 몸통(이동통신)을 흔들다(Wag the dog)'가 아니라 "꼬리가 몸통이 돼야한다"는 게 최 회장의 구상으로 보인다. SKT가 이동통신이 아니라 AI를 주력으로하는 기업으로 재탄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이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의 '사명 변경'을 화두로 제시한 것도 AI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둘째, '기업' 중심이 아니라 '인재'중심으로 AI산업을 공략했다는 점이다. 사실 거대한 단일 건축물과 같이 ‘기업’ 위주로 돌아가는 이동통신 사업과 달리 AI 산업은 ‘인재’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체와 같은 면모를 보이는 차이가 있다. 최회장의 AI전략은 이 같은 본질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다.
2014년부터 2017년 사이에 출발선을 끊은 AI 사업은 이동통신업 때와는 달리 특정 단일 계열사가 아닌 핵심 인재를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다. 순혈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과감하게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행보도 눈길을 끈다.
SK그룹의 AI 연구 조직은 이호수 사장이 영입되던 해인 2014년부터 SK C&C를 중심으로 꾸려지기 시작했지만 C&C에서 기술개발과 경영을 각각 책임지던 이호수, 박정호 두 사장이 2017년부터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기자 이번에는 SK텔레콤이 AI 연구개발 중심지가 됐다.
셋째, 단호한 '세대교체' 원칙이다. 격변하는 AI기술 경쟁 상황에서 승부처는 거대기업의 하드웨어가 아니라 필요한 인재의 민첩한 기용에 있다. 최 회장은 필요한 인재가 있으면 외부 영입과 소속 계열사 이동, 세대 교체를 빠르게 실행하면서 단기간에 SK텔레콤 내 AI 개발사업단의 모양새를 구축했다. 개발자가 끊임없는 자기학습을 강화해야 하는 AI 업계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용인술이다.
SK그룹에서 AI 사업의 기틀을 다진 이호수 사장은 1952년생이다. 그리고 그가 SK(주)C&C에서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AI 개발 현장 책임자를 물려받은 이상호 현 SK텔레콤 커머스사업부장은 1971년생, 애플에서 영입된 김윤 현 SK텔레콤 최고기술책임자(CTO)도 1971년생이다.
■ IBM·애플 출신 AI 전문가 영입하며 ‘인재 모으기’ 행보 계속
SK C&C에서 시작돼 SK텔레콤과 자회사 SK플래닛으로 중심이 옮겨가는 SK그룹의 AI 행보는 조직 개편과 인재 영입의 반복이다.
지난 2014년은 구글이 훗날 ‘알파고’ AI를 개발한 딥마인드를 인수한 시점이다. 그 해 11월 SK그룹은 AI 사업의 첫 발을 떼기 위해 삼성전자 부사장이던 이호수 사장을 영입해 AI를 비롯한 그룹의 ICT전략을 총괄하도록 했다.
이호수 사장은 과거 20년간 IBM에서, 10년간 삼성전자에서 몸담은 이력이 있는 ‘외부 인사’였다. 영입 당시 SK그룹 내부에서 ‘2차 검증’을 시도했지만 전문가들로부터 국내 최고의 AI 전문가라는 답변이 나왔다는 후문이다.
이호수 사장을 지원하고 손발을 맞췄던 ‘콤비’는 지난 2014년 12월 SK C&C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던 박정호 현 SK텔레콤 사장이다. 컴퓨터공학과 출신인 이 사장과 달리 박정호 사장은 경영학과를 나와 인수합병(M&A) 전문가이면서 비서실장을 지낼 정도로 최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최고경영자(CEO)이다. 지난 2012년 SK하이닉스 인수 당시 최태원 회장의 결정에 찬성 입장에 섰고 인수팀장까지 맡았다.
이듬해 정기 임원 인사에서는 지주사가 SK C&C를 병합한 법인 SK(주)C&C에서 AI 사업을 추진할 CEO 직속 ICT R&D 센터에 이호수 사장이 초대 수장으로 선임됐다. SK텔레콤과 커머스 플랫폼 개발 자회사인 SK플래닛, SI 계열사 SK(주)C&C 등에 걸쳐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를 총괄하는 ‘사령부’가 C&C 산하에 신설됐던 셈이다.
센터장 부임 다음 해인 2016년 이호수 사장은 곧바로 자신의 친정인 IBM의 AI ‘왓슨’을 SK(주)C&C에 도입해 한국어판 왓슨을 만드는 협업을 성사시켰다. 한국어판 왓슨용 개발 도구인 ‘에이브릴(AIBRIL)’도 이 때 만들어졌고 에이브릴을 통한 왓슨 AI 응용 소프트웨어는 지금도 계속 개발되고 있다.
2017년에는 박정호 사장과 이호수 사장 모두 SK텔레콤으로 옮겨가게 됐는데 2015년 당시 SK(주)C&C에서 일어났던 조직개편과 유사한 과정이 진행됐다.
SK텔레콤에 CEO 직속 AI 전담 조직인 ‘AI사업단’이 신설됐고 자회사 SK플래닛에서 음성인식 AI 플랫폼 ‘누구(NUGU)’를 만든 이상호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이 조직의 단장으로 배치됐다. 이듬해에는 미국 애플 출신으로 AI 음성비서 ‘시리’를 개발한 김윤 박사까지 AI리서치센터(현 AI센터)장으로 영입해 지금에 이른다.
■ 시장 현 주소=매년 커지는 AI 시장…음성인식 서비스 등 응용 단계 돌입
시장조사업체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츠의 지난달 28일 발표자료에 따르면 AI 시장은 이 같은 연평균 성장률에 힘입어 오는 2027년 약 2669억달러(한화 약 316조5900억원)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에 없던 기회가 AI 시장에 주어지면서 의료 분야에서의 AI 활용 도구의 사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한국IDC는 지난 3월 ‘국내 인공지능 2019-2023 시장 전망’ 보고서를 내고 국내 AI 시장 규모가 연평균 17.8% 성장해 2023년에는 6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집계했다.
이에 SK는 계열사 차원에서 활발한 AI 연구개발과 응용 사업이 전개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10일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등 국내 16개 대학에 자사의 AI 교육자료와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활용한 AI 인터넷강의를 공급하고 해당 강의를 정식 학점 인정 과목으로 등록하기로 제휴했다.
지난달에는 노인 특화 AI 응대 서비스 ‘누구 오팔’을 출시했고 6월에는 AI를 활용한 증상 감시체계 ‘누구 케어콜’이 258시간의 모니터링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 강점=‘최태원 리더십’/'정보 혈관' 구축 능력/빅데이터 구축 위한 무선가입자 기반
SK그룹은 최태원 회장 본인이 직접 나서 AI 사업을 ‘드라이브’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사업 추진에 있어서의 유리함을 갖는다. 최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실질적인 사업 추진 ‘야전사령관’을 맡고있는 점도 단기간의 수익성 여부에 연연하지 않는 투자를 가능케 하는 요소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5월 30일 SK텔레콤의 을지로 사옥 수펙스홀에서 타운홀 미팅을 열어 임직원 300여 명에게 AI, 5G서비스, 빅데이터 등 ICT 신사업 전반으로의 사업 영역 확장을 주문했다. 특히 급격한 시장 변화에 대비해 SK텔레콤이 기존 통신사업에 기반한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차별화된 ‘딥 체인지’를 실행할 것을 요구했다.
최 회장은 이날 “AI와 5G시대에 모든 기업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있는 만큼 초기에는 작더라도 성공의 경험을 쌓아서 역량을 내재화할 수 있는 ‘스몰 스타트’를 통해 고객 기대치를 맞춰나가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라며 “시대가 급변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이자 위협 요소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5G와 AI를 발판으로 기존 통신 컴퍼니를 넘어서 최고의 기업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AI 기반의 개인화 서비스에서 중요한 것은 공급자 관점이 아닌 고객 중심적 사고로의 혁신”이라며 “상품 출시 자체나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AI에서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은 고객과의 신뢰 관계 구축”이라고 강조했다.
SK그룹이 AI를 작동시키는 방대한 데이터를 신속하게 전송할 '정보혈관' 구축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상대적 장점이다. 이동통신 계열사 SK텔레콤은 초저지연 5G 통신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전국망 구축을 이미 진행중이다. 최 회장은 2012년에 2조3000억원을 LTE 통신사업에, 2018년에 5G 등 ICT영역에 11조원을 각각 투자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AI의 주요 응용 분야 중 하나인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AI를 통해 분석한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는 부분이 필수적인데 SK텔레콤은 AI와 결과적으로 연계된 통신 인프라를 이미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AI를 고도화하는 데 필수적인 천문학적인 규모의 빅데이터 확보에도 다른 기업들보다 유리하다. 무선가입자 1위 사업자 SK텔레콤이 올해 2분기까지 보유한 무선 가입자수는 3144만명, 유선인터넷 2위 사업자 SK브로드밴드의 유선방송 및 유선인터넷 가입자 수는 도합 1493만5000명에 달한다. 가입자의 동의만 이뤄진다면 전국민의 숫자에 필적하는 불특정다수로부터 빅데이터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셈이다.
■ 약점=AI 특허 및 인재 경쟁에서 존재감 적어…박정호 사장의 과제, M&A 통한 인재 영입?
문제는 SK의 AI 관련 특허 보유량은 아직까지 IBM이나 삼성전자 등 다른 글로벌 기업에 비해서 열등한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이 지난해 말 내놓은 보고서 ‘글로벌 인공지능 특허 동향과 시사점’에서 최근 12년간 AI 특허 취득 건수를 상위 19개 법인 순으로 제시했는데 1위는 1865건의 IBM, 2위는 1645건의 마이크로소프트, 3위는 1178건의 구글, 4위는 1030건의 삼성전자, 5위는 920건의 바이두, 6위는 700건의 인텔 등으로 나타났다. 한국 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유일한 가운데 SK그룹은 해당 순위권에 소속 계열사를 들이지 못했다.
이에 SK의 벤치마크 대상은 삼성이라고 볼 수 있다. 삼성 역시 SK와 마찬가지로 AI 후발주자임에도 세계 각국의 기술기업을 연달아 인수합병하고 기술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면서 선발주자들을 따라잡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우선 박정호 사장은 과거 SK하이닉스 인수를 주도했고 SK텔레콤에서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까지 인수한 이력이 있는 M&A 전문가다. SK텔레콤 역시 주주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 선에서 자금을 동원할 여력이 충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NICE신용평가가 매긴 SK텔레콤의 신용평가 등급은 ‘AAA Stable’이며 올해 1분기 기준 부채비율은 96.6%, 5개년 평균 연간 세전이익은 4조700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AI 사업의 총책임자격인 박정호 사장은 과감한 인수합병 등을 통해 인재영입 및 특허경쟁에서 두각을 드러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빛의 속도로 기술경쟁이 진행될 때 승리하는 법은 인재를 키우기보다 인재를 영입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 정부의 정책적 과제=대중적 AI교육정책의 한계 탈피해야/'특 A급 AI인재' 양성 위한 3각동맹 구축해야
SK그룹이 AI 사업을 확장하면서 최우선적으로 실행한 정책은 핵심 인재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관련 인력을 수급하는 문제는 AI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업계 전반의 고질적인 난관이다. SK텔레콤이 직접 나서 대학과 접촉해 인력 양성에 들어간 실정이다. 경쟁사인 KT마저 온라인 학습 콘텐츠를 개발해 직접 AI 교육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국내 AI토양은 척박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삼성전자도 AI개발 거점을 미국, 캐나다 등의 해외로 이동함으로써 글로벌 인재확보 및 특허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11일 ‘주요국 4차산업혁명 인력경쟁력 현황 및 전망’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인력경쟁력이 미국과 독일, 일본, 중국에 모두 밀리고 있으며 AI 분야의 인력경쟁력은 최하위, 오는 2025년 예상 인력부족률은 28.3%로 집계됐다.
AI라는 신산업에서 SK와 같은 국내기업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완화 및 예산지원 등과 같은 적극적 정책지원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지난 7일 제17차 전체회의에서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비롯해 전국민 대상 AI 및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 교육을 확산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기존의 직업훈련 시설은 지역 범위를 확장하고 AI 분야 교강사와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AI정책은 대중적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산업의 판도를 좌우할 '특 A급 AI인재양성'을 위한 정부, 기업, 대학의 3각 동맹이 구축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