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뒷북’ 샌드박스에 ‘마루타’ 된 '타다' 플랫폼 노동자들
[뉴스투데이=이원갑 기자] 차세대 모빌리티 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개혁이 굼뜨게 진행되면서 일자리 1만여 개가 증발했지만 사업에 관여했던 운영사나 사실상 사업을 중단시킨 국토교통부 모두 별다른 후속 조치 없이 침묵하고 있다.
VCNC가 운영하는 모빌리티 서비스 ‘타다 베이직’은 지난 4월 11일부로 영업이 중단되면서 전업 및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던 드라이버 1만2000여명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영업에 쓰인 기아자동차 카니발 1500대도 모두 매물로 나왔다. 이들은 어떠한 고용 보장도 없는 상태로 내몰려 전직을 하거나 법인택시 회사로 복직하는 것 같은 ‘자력갱생’을 강요받았다.
타다 베이직이 문을 닫은 건 지난 3월 6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 개정되면서 영업을 위한 법적 근거를 잃었기 때문이다. 타다가 기댔던 근거는 11인승 이상 렌터카에 운전기사가 딸려 올 수 있다는 이 법의 조항이었지만 개정안에서는 택시업계에 기여금을 내라는 부가 조건이 붙으면서 사실상 ‘타다금지법’이 됐다. 개정을 추진한 국토부와 손님을 뺏긴 택시업계는 법률 조항에 따른 VCNC의 선택을 요구했다. 기여금을 내고 영업을 하거나 아니면 사업포기였다. VCNC는 영업 중단을 선언했다.
문제는 칼자루를 쥔 핵심 주체들이 ‘플랫폼 택시 실험’에 소모된 노동자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대목이다. 국토부와 택시업계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편법 논란이 일던 타다 사업을 강행했던 VCNC나, 지난해 7월에 허울 뿐인 협의기구만 만들어 놓고 5개월간 손을 놓고 있다가 돌연 타다금지법을 추진한 국토부 등은 모두 비판을 면키 어렵다. .
이런 비극에서 기괴한 코미디로 장르가 바뀐 건 타다 베이직의 영업 중단 직후부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5월 13일 ‘제9차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를 열고 8건의 ‘규제 샌드박스 과제’를 통과시켰는데 여기에 ‘파파모빌리티’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파파는 타다와 동일한 사업모델을 가진 모빌리티 업체로 이날 2년간의 실증특례 사업 권한을 얻었다. 똑같은 규제가 샌드박스 시행 전후로 정반대의 처우를 받은 셈이다. 파파모빌리티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리 서비스는 교통약자에 대한 조항을 강조하고 있지만 모든 승객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고 밝혔다.
최적의 시나리오를 꼽자면 ‘타다’ 문제가 테이블에 올랐던 지난해 3월 사회적 대타협 합의와 7월 실무 협의체 출범 때 규제 샌드박스를 곧바로 적용하는 경우의 수다. 이를 위해 정부와 VCNC가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조기에 활용하고 실증사업에 기반한 관련법 개정 작업에 돌입했다면 양자간의 법정 대립이나 택시 기사의 분신, 타다 기사들의 대량 실업 사태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한 ICT 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시행되는 규제 샌드박스는 법을 개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간 법적 제약이 있었던 사업을 일단 한번 해 보고 (문제 없이) 잘 된다면 규제를 해소해 주겠다는 것”이라며 “법을 고쳐주지 않을 생각인데 규제 샌드박스에 넣어 줄 리가 없고 어차피 안 될 거라는 것을 전제로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간의 사태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해결할 열쇠는 이미 나와 있었던 셈이다. 무의미하게 방치됐던 ‘골든 타임’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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