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68)] 직업군인이 전출·전역시에야 만끽하는 진짜 휴가

김희철 칼럼니스트 입력 : 2020.07.23 10:17 ㅣ 수정 : 2020.07.23 10:17

군인이란 ‘침과대적(枕戈待敵)’속에서도 망중한(忙中閑)을 즐길 줄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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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침과대적(枕戈待敵)’이란 창을 베고 적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항상 전투태세(戰鬪態勢)를 갖추고 있는 군인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이다.

따라서 군인은 어느 직책이든지 망중한(忙中閑)을 즐길 시간이 제한된다. 즉, 휴일이나 휴가중에도 부대에 비상이 걸리거나 급한 일이 생기면 망서리지 않고 부대로 복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 7월22일, 군 관계자 등에 따르면 경기도 포천에 있는 8사단 소속 모 부대에서 휴가를 다녀온 병사 2명이 지난 20일 오후 발열 증상을 보여 인근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다음 날 양성으로 판정됐고 최소 8명이 신종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자료출처 = 동영상캡쳐]
 

처음으로 마음 놓고 망중한(忙中閑)의 휴가 즐기다

육군소위로 임관해서부터 GP장과 대대작전항공장교, 중대장 근무를 하면서도 마음 놓고 즐기는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낸 적이 없었다. 친구를 만나거나 집안 행사에 참석하더라도 ‘침과대적(枕戈待敵)’의 마음으로 잠시 눈 도장만 찍고 부대로 복귀해야 했다.

심지어 결혼 휴가 때에도 부대 일정이 조정되어 결혼식을 마치고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바로 복귀해 훈련 평가에 참여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46) '스탭 꼬인 결혼식 날짜와 지휘관의 줄탁동시(啐啄同時)’ 참조)

그런데 이번에는 제대로 된 휴가를 만끽했다. 사단에서는 이취임식을 하고 바로 출근하라고 했는데 강호갑 대대장(육사31기)의 배려로 연대장 신고 일주일전에 중대장 이취임식을 하도록 조치하여 모처럼 여유있는 휴가를 출발했다. 

전방 근무를 시작하면서 친척 어른들과 친구들도 여유를 갖고 만날 수 있는 휴가를 보낸 적이 별로 없어 그들의 얼굴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따라서 이취임식을 마치자 바로 서울로 출발해 처가도 들려 중대장을 무사히 마친 인사도 드렸다.

이어서 이미 서울로 이동하여 근무하는 옛 선배와 동기들을 만나 소주잔도 기울였다. 또 작은 할아버지, 고모님들, 외삼촌….. 가능한 모든 친척을 찾아 뵙고, 고향집에서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제대로 못간 신혼여행을 보상하는 의미로 따뜻한 남쪽지방 여행도 갈 수 있었다. 연애시절 추억이 담긴 창원, 마산과 논개의 한이 서린 진주 진양호 등을 거치며 부부만의 알콩달콩한 시간도 가졌다.

이 모두는 당시 필자의 소속이 이임한 부대로 되어있으나 이미 임무를 교대했기에 부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후임자가 처리를 하고 본인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에서 망중한(忙中閑)의 휴가를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임무 교대후 전출 시와 전역할 때 뿐인 것 같다.

 
▲ 겨울철 폭설이 내린 강원도 눈길과 출근로인 다목리 대성산 입구에 위치한 대성산지구 전적비 [자료제공 = 김희철]
 

마음 놓고 즐기는 휴가를 당분간 포기한 사단작전장교 근무 시작 

휴가 복귀해서는 바빴다. 연대장에게 전출신고를 하고 아파트에 돌아와 이사짐을 싸기 시작했다. 결혼식 이후 3년4개월동안 벌써 6번째 이사이다. 

최초 육단리 관사의 신혼 살림을 시작으로, 6개월간의 고등군사반 교육을 받기 위해 광주상무대 백일아파트로, 교육 수료후 다시 육단리 셋방에서 중대장을 시작하고, 당시 6개월주기의 GOP부대 교대에 따라 적근동 관사, 또 다시 삼거리 아파트로 이동했다가 이번엔 중대장을 마치고 사단본부 아파트로 이사를 준비했다.

1987년 3월말 사단본부 첫 출근을 위해 새벽에 오토바이를 운전하여 삼거리 아파트를 나서자 늦겨울이자 이른 봄의 폭설이 내렸다. 약 1시간 거리의 사단본부를 향해 출발했지만 눈길은 미끄러웠고 눈발은 점점 더 강해져 앞이 안보일 정도였다. 결국 사단본부 앞에서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간신히 사무실에 출근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때마침 작전처 선임 대침투장교인 진종면 대위(삼사14기)가 축구경기 중 다리가 탈골되어 춘천으로 후송을 떠나 일손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 공백을 메우느라 고생하던 정규작전장교 염철한 대위(삼사15기)는 오토바이를 타고 오느라 손발이 얼고 눈사람같이 변한 모습의 필자를 너무도 반겨주었다.

다음날 가족이 직접 군 트럭에 이사짐을 챙겨 사단본부 아파트 503호로 이사를 했고, 그렇게 마음 놓고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휴가를 당분간 포기한 사단작전장교 근무는 시작됐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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