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시장 ‘허리’ BBB등급 회사채에 대한 투자심리가 싸늘한 까닭은
[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AA등급 등 상위등급 회사채를 중심으로 수요가 회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BBB등급 비우량 회사채에 대한 투자심리는 싸늘하다.
금융업계는 BBB등급을 포함한 저신용등급 기업은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추가 신용등급 하락의 부담이 있는 만큼, 회사채 수요가 저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BBB등급 이하 채권에 대한 투자기피 현상 역시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때문에 이달 출범하게 될 한국은행의 특수목적기구(SPV·special purpose vehicle) 역시, 비우량 회사채는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 2분기 BBB등급 회사채 발행…키움캐피탈·한양 단 2건 / 2019년 2분기 대비 발행규모 93.6%↓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 2분기에 BBB등급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는 단 2건(키움캐피탈·한양)이었다.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통한 발행을 제외한 발행 규모는 5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93.6%(7290억원)가 급감한 수치다.
키움캐피탈의 경우 지난해 공모채 수요예측에서 모집금액(300억원)의 4배가 넘게 주문을 받아 화제가 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지난 3월 미매각 사태가 발생, 500억원 모집의 절반도 안 되는 수요를 확보하는데 그쳤다.
결국 키움캐피탈은 모회사인 키움증권과 KDB산업은행의 지원을 받아 300억원 규모의 공모채(BBB+등급) 발행에 나섰다. 이에 100억원을 인수하겠다는 의지를 사전에 밝혔으며, KDB산업은행은 지난달 24일 100억원 규모의 수요예측에 참여했다. 조달금리는 3.05%에서 형성됐다.
한양이 지난달 모집한 200억원 규모의 공모채(BBB+등급)는 KDB산업은행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지난달 2일 수요예측에서 산업은행이 200억원 규모의 공모채를 전량 신청했다. 조달금리는 키움캐피탈보다 높은 약 4.00%에서 형성됐다.
사모채 발행도 세 차례나 이어졌다. 지난 5월 말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통해 조달한 250억원 규모의 사모채는 신용보증기금의 보증 덕분에 2.19%의 금리로 형성됐다. 지난달 25일에는 P-CBO를 통한 사모채 3년물 100억원을 발행했으며, 이어 5일만에 사모채 2년물을 100억원 규모로 추가 발행했다.
반면 조달금리는 4.45%로 부담이 커졌다. 같은 달 발행한 공모채 2년물이 대략 4.00%였던 것을 감안하면 금리가 무려 45bp(basis point)나 높아진 것이다.
업계는 키움캐피탈과 한양이 공모채를 발행하긴 했으나, 여전히 비우량채권에 대한 투심은 싸늘하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 A씨는 “6월 들어 회사채가 처음으로 국채 수익률보다 높아졌지만, 이마저도 AA등급이 대부분이다”며, “여전히 A등급 이하는 추가 신용등급 하락의 부담으로 수요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 국내 채권시장 ‘충격 흡수구간’, BBB등급 회사채 거의 사라져 / 시장 충격→고스란히 A등급으로
BBB등급 회사채는 국내 채권시장에서 ‘허리’에 해당한다. 한 단계 상승한 A등급부터가 우량 회사채에 해당하지만, 한 단계 떨어진 BB등급부터는 투기등급으로 전락하게 된다. 즉 발행 여건이나 가격이 급변하는 구간인 것이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채권시장에서 BBB등급은 공급과 수요가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이는 BBB등급 이하 회사채를 중심으로 투자기피 현상이 확대된 탓이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국내 채권시장에서 BBB등급 회사채는 5% 수준에 불과했다.
BBB등급 이하 회사채의 수익률이 낮은 것도 한몫했다.
업계 관계자 B씨는 “BBB등급 이하 회사채는 신용위험을 감안했을 때 수익률이 낮은 편”이라며, “상호금융기관 등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기관투자자조차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BBB등급 회사채의 공급과 수요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A씨는 “중간 밴드(band) 역할을 하는 BBB등급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시장의 충격이 고스란히 A등급으로 전파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BB+에서 BBB등급이 이 역할을 하지만, 국내의 경우 충격을 흡수해주는 구간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A등급에서 한 단계만 내려가더라도 비우량 회사채라는 낙인이 찍히고 투기등급과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충격까지 합쳐지며 시장은 A등급조차 기피하게 됐다.
이는 고스란히 신용등급에 따른 기업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B씨는 “BBB등급은 물론 일부 A등급 기업까지 낮은 수요 때문에 회사채 발행에 적극 나설 수 없다”며, “신용등급이 높은 대기업이 아닌 이상, 자금조달 창구가 거의 막혀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빠르면 7월 한은 SPV 출범, BB~BBB등급 매입은 ‘글쎄’ / 업계, 의지표명에 그치지 않은 적극 매입 당부
업계는 지난 3일, 3차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되면서 빠르면 이달 안에 한국은행의 SPV가 출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은의 SPV는 최대 20조원 규모로 편성됐으며 만기가 3년 이내인 회사채 중 AA등급부터 투기등급인 BB등급까지 매입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A씨는 “5월 한은의 SPV 설립 발표 이후에도 시장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며, “SPV가 본격 가동된다 하더라도 BB등급은 물론, 그보다 신용등급이 높은 BBB까지 적극 매입할 것이란 기대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B씨 역시 “A등급을 중심으로 발생한 미매각 물량을 소화하는 등, 역할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는 3분기와 4분기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BBB등급 기업은 AJ네트웍스·삼화페인트공업·대한항공·선진·한진·폴라리스쉬핑·두산중공업·한독·한신공영 등 9곳이나 된다. 하지만 한은이 이들 기업의 회사채를 적극 매입할 가능성은 낮게 점쳐지고 있다. 이는 7월 BBB등급 기업의 회사채 매입이 전무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업계는 이달 회사채 시장은 6월에 이어 상위 등급 중심으로 발행이 순조로울 것으로 보고 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이달 예정된 회사채 만기는 3조4000억원으로 지난 6월의 4조1000억원보다 약 17.1%(7000억원)가 감소할 전망이다. 채안펀드안정기금 등 정부의 지원으로 기업의 회사채 발행 여건도 개선됐다. 절대금리도 낮아져 기업 여력이 있다면 자금을 조달하기에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BBB등급 이하의 저신용등급 기업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7월에 공모 회사채를 발행했거나 계획하고 있는 대우건설·현대오일뱅크·HDC현대산업개발 등의 기업도 최저 A-등급에서 최고 AA0등급에 해당한다. BBB등급 기업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에 더해 A씨는 “코로나 충격이 2분기와 3분기 기업 실적에 본격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며, “하반기에 기업 신용등급이 지속적으로 하향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A- 등, 아슬아슬하게 A등급대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 다수가 BBB등급으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A씨는 “금융당국과 정부가 의지표명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비우량 회사채를 매입해 저신용등급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