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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라는 자리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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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전문기자
입력 : 2020.07.14 05:05 ㅣ 수정 : 2020.07.14 05:05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잇달아 터진 거대 자치단체장의 성추문으로 엉뚱한 곳이 가슴앓이를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전국 20여 곳에 이르는 비서학과 개설 대학들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고 박원순 서울시장에 이르기까지 3년 사이에 무려 3명의 시·도지사, 광역단체장이 성추문 사건으로 처벌과 낙마는 물론, 비극적인 선택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들에 의한 성폭행과 성추문 피해자 3명 중 2명은 비서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 거대 자치단체장들의 비서 상대 성범죄는 한국사회에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 주었다. [사진=연합뉴스]
 

이같은 성추문 사건은 성범죄이며 가해자의 인성과 도덕성으로 야기된 것이다. 비서 본인은 힘있는 사람의 지근거리에서 일을 하다가 본의 아니게 당한, 그야말로 피해자일 뿐이다.

 

그렇지만 비서학과를 개설하고 신입생 유치 경쟁을 벌이는 대학들로서는 학생 모집에 악영향을 받지나 않을 지 조바심이 든다고 한다. 한 지방대 관계자는 "요즘 지방 사립대학은 신입생 모집이 전쟁이나 다름없는데 이런 일 때문에 30명 정원인 비서학과 학생들을 다 모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 이화여대 최초로 ‘비서학과’ 개설, 이미지 및 전문성 높이려 ‘국제 사무학과’로 개명

 

현재 우리나라에는 1967년 12월 이화여대가 최초로 비서학과를 신설한 이래 20여개 대학에 비서관련 학과가 개설돼 있다. 4년제로는 이화여대 등 3곳이 있고 나머지는 2년제 전문대학과정이다.

 

이화여대를 비롯, 각 대학이 앞다퉈 비서학과를 개설할 때만 해도 학과의 명칭은 주로 비서학과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이화여대가 학과 이미지와 전문성 제고를 위해 국제사무학과로 이름을 바꾸자 나머지 대학도 글로벌 비서학과, 사무비서행정과, 비서경영과, 비서인재과 등 다양한 명칭을 도입했다.

 

이런 비서학과들은 학과 커리큘럼상 비서행정에 특화된 행정학과에 가깝다. 그리고 사무, 비서행정, 사무조직 등을 배운다. 전문대에 개설된 비서과는 윗 사람을 보조하는 실무 위주의 교육을 받고 비서복을 교복으로 입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 원래의 비서(秘書), 특히 공산당 통치 시스템에서 비서는 최고위직

 

우리나라에서 비서는 주로 고위 공직자나 기업의 고위 임원의 부속실에 근무하면서 전화를 받고 차를 타는 등 잔심부름을 하는 직원으로 인식돼 있다.

 

하지만 영어의 Secretary를 번역한 비서(秘書),서기(書記)의 원래 의미는 “일부 중요한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직속되어 있으면서 기밀문서나 사무를 맡아보는 직위. 또는 그 직위에 있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서의 지위나 역할은 막중하기만 하다.

 

미국에서 장관은 ‘대통령의 비서’라는 의미에서 Secretary라는 명칭을 넣는 경우가 많은데 국무장관은  Secretary of State, 국방장관은 Secretary of Defense이다. 공산당 통치 시스템에서 비서와 같은 의미의 서기는 최고의 직위였다. 소련의 스탈린은 1922년부터 1953년까지 무려 31년 간 공산당 서기장(Secretary-General) 이라는 직함으로 절대권력을 휘둘렀다.

 

북한에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김일성이 소련군에 배속돼 있다가 북한에 들어온 직후인 1945년 12월 받은 직함도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의 ‘책임비서’였다.

 

피델 카스트로도 1961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50년 동안  사회주의혁명통일당 제1서기라는 직함으로 쿠바를 통치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권력자들이 비서 또는 서기라는 직함을 가진 것은 통치자가 아니라 ‘당과 인민의 일을 하는 봉사자’라는 의미였다.

 

■ 비서와 비서실의 권력은 영원할 것

 

사기업과 공공기관을 불문하고, 비서는 몸과 마음이 고달픈 보직이다. 최고의 권력을 가진 하는 조직의 수장(首長)을 보좌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비서실은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무실이다.

 

비서실의 힘은 막강하다. 조직 운영이나 회사 경영, 인사에 관한 최고급 정보가 비서실에 모인다. 그래서 조직내에서 가장 유능하고 믿을 만한 사람만이 비서실에 근무한다. 이병철 회장 시절의 삼성은 비서실이 최고의 의사결정 기구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비서실에는 의전 기능 뿐 아니라 재정과 인사 분야의 최고 엘리트들이 '회장님'을 보좌한다. 비서실 출신 대부분은 임원은 물론, CEO까지 승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청와대에서도 진짜 비서실은 대통령을 직접 모시는 부속실이다. 대통령의 동선과 만날 사람을 결정하는 이들이 진정한 ‘문고리 권력’인 것이다.

 

권력이 무거워지고,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일인자를 보좌하는 비서실의 영향력도 커진다. 최근 몇몇 권력자의 성범죄로 인해 이미지가 왜곡될 수는 있지만 비서실과 비서의 권력은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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