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의 패러다임 전환(1)총론] SK그룹이 실현하는 '기업 진화론', 영업이익을 넘어선 '토털밸류' 추구
이원갑
입력 : 2020.07.15 07:17
ㅣ 수정 : 2020.08.24 19:59
기업의 개념, 비즈니스 모델, CEO의 역할 등에 대한 3가지 고정관념 파괴/영속하는 기업의 새로운 전형 제시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시대의 ‘비즈니스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기존의 제조업 기반을 고도화시키는 한편 인공지능(AI), 플랫폼비즈니스(Platformbusiness), 모빌리티(Mobility), 시스템반도체 등으로 전선을 급격하게 확대하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를 선점함으로써 글로벌 공룡기업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대기업 특유의 ‘강력한 총수체제’는 이 같은 대전환을 추동하는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주요 그룹 총수별로 ①패러다임 전환의 현주소, ②해당 기업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③전환 성공을 위한 과제 등 4개 항목을 분석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새로운 가능성을 진단하고 정부의 정책적 과제를 제시한다. <편집자 주>편집자>
[뉴스투데이=이원갑 기자]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꾼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현 경영 환경에서 변하지 않는 기업은 서든 데스를 맞게 될 수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4년 전인 2016년 6월 확대경영회의에서 이 같이 경영화두를 던졌다. 최 회장의 핵심경영철학인 '딥체인지(Deep change.근원적 변화)'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최 회장이 주문한 딥체인지는 비즈니스 모델이나 기업문화 등의 혁신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최 회장이 지향한 딥체인지는 문자 그대로 근원적인 변화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업의 개념','비즈니스 모델', '최고경영자(CEO)의 역할' 등 3가지 영역에서 통념을 파괴하는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냄으로써 새로운 총체적 가치(Total value)'를 창출하는 게 궁극적인 목적지이다.
■ 최태원의 ‘딥 체인지’는 고객과 파이낸셜 소사이어티를 정조준 / 계열사 CEO는 진화책임자
최태원 회장은 지난달 23일 확대경영회의에서 “우리가 키워가야 할 기업가치는 단순히 재무성과·배당정책 등 경제적 가치 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나 유·무형자산을 모두 포괄하는 ‘토털 밸류’”라며 “그동안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아 왔던 구조적 한계를 어쩔 수 없는 ‘주어진 환경’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이뤄져야 딥체인지도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최 회장은 "계열사 CEO들은 자신만의 성장 스토리를 만들라"고 주문했다.
기업이 단순히 영업이익을 극대화하는 이윤추구자라는 고전적인 시장경제의 관점에서 탈피, 새로운 진화를 완성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구조적 한계의 극복은 진화를 위한 선결과제인 셈이다.
동시에 CEO들은 이러한 진화를 주도할 총책임자임을 명확히 했다. 이는 다른 글로벌 기업들이 새로운 산업구조를 주도함으로써 매출과 영업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경영전략의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SK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스토리텔러가 되라는 주문은 특정 CEO에게 한 것이 아니라 모든 CEO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모든 CEO가 지속가능성, ESG(환경
·사회·지배구조), 고객신뢰 등을 합쳐 토털밸류로 키워나가야 할 가치를 만들어냄으로써 시장과 사회에서 신뢰를 얻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책임을 안게됐다"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개척도 고객을 감동시키면서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그래야 고객 뿐만 아니라 주주, 기관투자자, 연기금, 투자은행 등으로 구성되는 파이낸셜 소사이어티를 감동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 회장이 확대경영회의에서 토론을 주재하면서 구체적 숙제를 줬으므로 (CEO들이) 이러한 파이낸셜 스토리를 준비해서 이야기를 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요컨대 최 회장은 사회와 소통하면서 영속할 수 있는 기업의 '새로운 전형'을 창조하라고 CEO들에게 지시한 것이다.
따라서 SK 주요 계열사들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등과 같은 4차산업혁명 분야로 주력 비즈니스를 이동시키는 것만으로는 최 회장의 '진화'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사회적 가치의 계량화, 구성원의 행복 증진, ESG, 고객신뢰등과 같은 비재무적 요소와 영업이익을 중심으로 한 재무적 요소를 결합시키는 기업의 개념을 구현해야 한다. 그리고 CEO들은 이러한 개념의 진화를 매력적인 스토리를 통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최 회장 자신도 지난 4년 동안 딥체인지라는 경영철학을 감성적 스토리텔링을 통해 설명하고 전파해왔다. 최 회장의 카리스마도 친숙하고 감성적인 스토리텔링 능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계열사 CEO들에게도 동일한 리더십을 주문하고 있는 셈이다.
■ 딥체인지 ① 기업의 개념 진화,
사회적 가치와 행복경영 중시하는
‘더블보텀라인(DBL)’ 경영
딥체인지의 이념에 따라, SK그룹은 기업의 개념 자체를 혁신해왔다. 기업은 경제적 이윤을 극대화하는 존재라는 신자유주의적 기업관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지속했다. 즉 '사회적 가치'와 '구성원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을 기업의 새로운 성장철학으로 제시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사실 한 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발전과 퇴보를 체감할 수 있는 반면에 사회적 가치는 모호성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모호성은 신뢰를 주지 못한다. 최 회장은 이 점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계량화할 것을 주문했다.
SK텔레콤 1조8709억원, SK이노베이션 1717억원, SK하이닉스 3조5888억원.
이상의 수치는 재무제표에는 나오지 않는다. SK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2019년도 ‘사회적 가치’ 창출 규모를 수치로 환산해 자체 산출한 값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집계가 이뤄졌다.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는 각각 집계한 수치를 지난달 1일과 2일, 5일에 각각 발표했다.
공개된 집계 항목은 △납세, 고용, 배당 등 경제 전반에 대한 간접적 기여 성과 △동반성장, 삶의 질 향상, 제품 및 서비스, 환경 등 사업 과정에서 창출된 사회적 성과 △사회공헌 프로그램, 기부금, 봉사활동 등 사공헌 성과 등이다.
SK의 사회적 가치 수치화 집계는 최태원 회장의 2018년 2월 8일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GEEF)에서도 강조한 ‘더블보텀라인(DBL)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손익계산서' 아래 한 줄(보텀라인)을 더 그어 '사회적 가치'와 같은 별도의 가치를 표현한다는 의미에서 DBL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에 지난해 5월 21일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을 포함한 16개 주요 계열사가 1년 동안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가치 측정은 독일의 세계 최대 석유화학사 바스프(BASF)도 활용하고 있는 개념으로 올해 2월 20일 명문화 경영규정인 ‘SK경영체계(SKMS)’에도 등재됐다.
최 회장이 기업활동을 통해 구현하려는 또 다른 목표는 '이해관계자의 행복'이다. 지난 2월 SKMS 개정 선포식에서 그는 “SK경영지향점을 지속가능한 구성원 행복으로 정립하고 VWBE(자발적-의욕적 두뇌활용)를 통한 수펙스 추구로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SKMS를 개정했다”라고 밝혔다.
최 회장의 행복경영론은 딥체인지 이념이 처음 등장했던 2016년 당시 SKMS 개정안에 추가됐고 사회적 가치와 반드시 한 묶음으로 등장하는 개념이다. 사내에서 이를 설파하기 위한 최근의 ‘행복토크’ 간담회는 지난해 12월 통산 100회를 채웠다.
이와 관련 최 회장은 ‘딥체인지 이해하기’를 주제로 지난해 8월 열린 SK그룹 이천포럼에서 “AI, DT 등 혁신기술으로 사회적가치를 창출하고 고객 행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변화가 내 행복이구나’라고 생각하는 레벨로 치환할 필요가 있다”라며 “번지점프를 뛰어라”라고 주문했다.
■ 딥체인지 ② '사업모델 혁신'의 특이점, 기술경쟁력과 사회적 가치의 결합
SK그룹 계열사들에게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이란 단지 신기술이나 신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데 있지 않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를 많이 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업 구조를 과감하게 뜯어고치거나 확장하는 결단을 각 계열사에 요구해왔다. 최 회장의 의지를 전파하는 그룹내 컨트롤타워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도 이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사업의 성격이 친환경 분야로 바뀌는 경우가 늘면서 상호명도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작업도 논의 단계에 있다.
물론 신기술 경쟁력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조건이다. 조대식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올해 확대경영회의에서 “글로벌 선진 기업은 고유의 강점을 내세워 신성장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고 신생 스타트업은 획기적 신기술로 높은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반면 SK는 기존 사업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며 “유망사업을 발굴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해 가시적이고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빠르고 과감하게 만들어 나가자”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SK텔레콤 박정호 사장은 지난 1월 8일(현지시간) 미국 CES 2020 박람회에서 참석해 회사 이름을 공모 과정 등을 통해 바꾸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인공지능(AI)나 모빌리티 등 통신 사업 외 다른 ICT 분야에서 타 기업들과의 협력이 많아지면서 SK텔레콤과 그 자회사들이 아우르는 사업분야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에너지 분야 계열사들도 마찬가지다. 박정호 사장과 같은 날 CES를 찾은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전사적인 차원에서 기존의 정유나 석유화학 사업 대신 친환경 모빌리티 산업을 겨냥해 이차전지와 첨단소재 등 신사업에 공을 들일 것을 강조했다. 계열사인 SK종합화학의 나경수 사장 역시 지난 5월 ‘구성원과의 대화’ 행사에서 기존 20%인 경량화 플라스틱 등 친환경제품의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사업 전환 계획을 밝혔다.
■ 딥체인지 ③ CEO의 개념 진화, 오너보다 파이낸셜 소사이어티를 매료시키는 ‘스토리텔러’ 돼라
최 회장의 딥체인지는 결국 CEO에 의해 완성된다. 따라서 SK그룹에서는 CEO의 개념 자체도 혁신되고 있다. 최 회장은 계열사 CEO들이 각 사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를 극복할 방안을 찾아 ‘성장 스토리’를 만들라고 주문한 것은 한국적 기업문화 속에서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한국의 대기업에서 성공한 전문경영인이 되기 위한 자질로는 오너에 대한 충성심, 과묵함과 대조되는 탁월한 경영실적 등을 꼽는다. 하지만 최 회장에 따르면, 이러한 CEO의 개념은 진부한 통념이다. 기업의 진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CEO가 이야기꾼이 돼야 한다. 그래야 고객과 재무적 투자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CEO가 충성해야 할 대상은 오너가 아니라 고객과 재무적 투자자라는 논리이다.
최 회장은 앞서 지난해 10월 18일 제주에서 열린 SK그룹 CEO 세미나에서도 ‘딥 체인지 수석 디자이너’가 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그룹 내에서 CEO라는 존재가 조직 위계질서상의 결정권자 정도로 인식됐지만, 이제는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 모델과 업무 방식을 창의적으로 뜯어 고치는 주역이 돼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세미나 폐막식에서 “비즈니스 모델 진화·전환·확장, 자산 효율화, 인적자본 확보 등 딥 체인지의 모든 과제들이 도전적인 만큼 기존의 익숙한 생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라며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세우듯 행복을 추구할 때도 정교한 전략과 솔루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수석 디자이너로서의 창조성을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CEO의 능력이 바로 스토리텔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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