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포사 생활①공군에는 4성 장군이 몇 명이냐고?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지난 기고문에서 육군과 공군의 문화적인 차이가 ‘상당기간 동안 육군에서 전군한 장병들과 기존의 공군 장병들 간에 많은 갈등을 야기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와 더불어 흥미로운 현상은, 몇 년 전에 비행장 발칸포대가 공군으로 전군한 후에는 기존 공군 병사들이 포대원들에게 일종의 텃세를 부렸는데, 방포사가 공군으로 전군한 이후에는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즉,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군한 장병들의 ‘필자와 같은 기존 공군 장병들에 대한 텃세’가 눈에 보였다.
때로는 공군을 무시하는 발언도 마다하지 않았고, 가끔은 경우에 맞지 않는 언행 내지는 상대방을 모함하는 장병들도 있었다. 같은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소인배 같은 행동을 하는지...(당시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군한 장병을 ‘육공’이라 불렀고, 기존의 공군 장병은 ‘오공(오리지날 공군)’이라 불렀다. 누군가가 재치있게 그런 명칭을 지었는데, 물론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한동안 자연스럽게 사용되었다)
방포사 전군 초창기에 필자가 겪은 “텃세나 사고방식의 차이 또는 문화적인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 보겠다.
필자가 방포사 첫 보직인 수도권 방공포병여단의 작전통제부서 선임 장교로 부임한지 하루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나이 많은 정비 준사관이 필자에게 질문했다. “공군에는 4성 장군이 몇 명이나 있나요?” 처음에는 왜 이런 질문을 할까 하고 생각했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고, 이내 필자는 이 준사관이 질문한 의도를 알아챘다.
즉, ‘육군은 4성 장군이 여러 명 있는 규모가 큰 군인데, (4성 장군이 한명인) 공군은 얼마나 규모가 작은가?’하는 의미였고, 육군과 공군의 인원수(규모)를 비교하며 은근히 공군을 무시하는 질문이었다. 말투는 존대말이지만 건방진 모습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공군, 해군에서 4성 장군은 각 군 참모총장 1명뿐이다.)
이에 필자는 모른 척하고 “전군한 방포사 장병 모두가 전군 전에 공군화 교육을 받았고 시험도 봤다고 들었는데, 공군에 4성 장군이 몇 명인지도 모르나요?”. 그러자 그 준사관은 당황한 듯 얼버무리며 대답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육군은 4성 장군이 여러 명이 있어서......”
다음날, 그 정비 준사관이 당당하고 자신 있는 표정으로 작전장비에 대해서 설명해 주겠다고 해서 작전장비로 갔다. “이 장비는 방공포병 작전통제 장비로서 언제 미국에서 도입했고, 도입가격은 얼마이고, 기능은 뭐고 등등”, 장황하게 설명한다. 설명을 다 듣고 난 필자는 가장 기본적인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이 장비의 프로그램 언어는 무엇인가? 소스코드는 보유하고 있는가? CPU의 1초당 처리능력은? 그리고 이 장비와 연동된 00 레이다의 품질관리(QC, Quality Control)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순간 정비 준사관의 얼굴이 약간 붉어지며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질문한 단어의 개념조차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그 준사관의 실력을 대충 파악한 필자가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 “이 장비는 작전통제장비로서 가장 기본은 ‘작전 통제용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소스코드를 알아야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레이다의 품질관리는 레이다를 운용함에 있어서 레이다의 신뢰성에 관한 문제이다" 등등.
설명하는 자(준사관)와 설명을 듣던 자(필자)의 입장이 바뀌었다. 그 준사관은 얼굴이 상기되어서 아무소리 못하고 듣기만 했다. 옆에 있던 다른 준사관도 마찬가지이고. 그러다가 한마디 겨우 한다. “저희는 그런 내용은 몰랐습니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비 준사관이 모르면 누가 알아야 하나?’
필자가 질문했던 내용은 레이다나 작전통제장비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기본중의 기본인 사항이다. 그런 기본적인 사항을 모르고 있었다니, 필자의 표정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고, 정비 준사관들은 필자가 또 다른 질문을 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공군에서 온 새파란 소령이 뭘 알아?”라는 식으로 필자를 대하던 정비 준사관들은 이날 오후부터 필자를 대할 때 무척 조심했고, 다시는 공군에 4성 장군이 몇 명이냐고 하는 ‘예의 없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필자가 언제 또 무슨 질문을 할까 은근히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였다.
이후에도 필자가 정말 몰라서 무엇을 물어보는데도 그들은 엄청 고민하고 답변을 했다. (전군 초기에는 정비와 관련한 기본지식이 조금 약한 정비 준사관들이 더러 있었는데, 이와 관련된 얘기는 후에 다시 하겠다.)
또 다른 예는, 마지막 팀 스피리트 훈련 때 필자가 훈련 통제관으로 파견 나갔을 때의 일이다. 이때 육군에서 전군한 어느 영관 장교의 독특한 사고방식을 경험했다. 물론 전군한 장교 중에 이런 장교가 많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팀 스피리트 훈련 때마다 방포사 예하의 0개 포대가 선발되어 야외 기동훈련을 실시했는데, 이중 한 개 포대에 필자가 훈련 통제관으로 나가게 되었고, 약 2주간 이들과 숙식을 같이 했다. 그때는 필자가 유도탄 포대 경험이 없던 때라 훈련 통제라기보다는 배운다는 자세로 임무에 임했다.
해당 포대에 가서 인원 및 장비를 돌아보는데 안면이 있는 중위 한명을 만났다. 그 장교는 포대 작전장교로서, 필자가 발칸 포대장일 때 인접 포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장교였다. 오랜만에 만나서 무척 반가웠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